무례함

무례함은 말투와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뿔을 쳐들고 고개를 치켜들며(시편 75,6 참조), 때에 맞지 않는 말을 끝없이 지껄이는 무지입니다(집회 20,19 참조). 식탁 위 빵 위에 팔꿈치를 올리듯 선을 넘고(집회 41,19 참조), 제 이익만 추구하며 성을 내고 앙심을 품습니다(1코린 13,5 참조). 무례함은 퉁명스럽고 빈정거리며 냉소적입니다. 말없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나를 순식간에 압도하여 휩싸이게

돈 보스코의 편지(9)

9. 토리노 시장 펠리체 리뇽 귀하 EX, 4658 오라토리오 내 추가적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 그는 오라토리오 작업장의 다양한 용도에 필요한 30마력의 동력 제공을 요청하며, 해당 프로젝트는 현재 스페치아 기사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보증금을 납부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다. 토리노, 1874년 12월 존경하올 시장님께, 지난 19일자 서신으로 요청하신 상세 설명을 다음과 같이 보고드립니다.

신애론(2-14)

제14장 신앙을 통해 받을 수 있는 하느님 사랑의 감정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실 때에 그는 우리 영혼에 들어오시어 우리의 정신에게 강연하는 형식이 아니라 영감으로 말씀하시니, 특히 아주 달가운 방법으로 우리의 지성에게 믿을 바를 제시하시면 의지는 여기에서 아주 큰 회열로 받아들여 지성으로 하여금 아무런 의심이나 불신 없이 진리에 동의하고 굴복하게끔 충동시키는데, 여기에 경이적인 사실이

세 가지 회개

※ 다음은 2007년 4월 22일 비제바노와 파비아 사목 방문(이탈리아) 시 파비아의 ‘오르티 보로마이치’ 광장에서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 부활 제3주일 미사 중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이다. 이 강론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통해 조명해 본 우리 신앙인들의 가야할 평생의 여정인 ‘회개의 여정’이 담겼다. 곧 첫 번째 회개: 그리스도교 신앙과 세례를 향한 내면의 여정, 두 번째 회개: 사제직

연중 제24주일 ‘가’해(마태 18,21-35)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라는 라멕의 선언처럼, 피의 보복을 무한대로 이어가던 구약의 옛 전통은 시대가 흐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보복법으로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폭력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을 뿐, 참된 용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세 율법은 주로 공동체 안에서의 용서를 강조하였고, 예수님 시대의

달리기, 훈련, 그리고 몸 신학

※ 다음은 D.R. Esparza라는 분이 https://aleteia.org/에 2026년 8월 31일자로 기고한 글의 번역본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첨가된 부분이 있으며, 이미지는 AI 생성으로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이미지이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칼로카가티아(καλοκαγαθία, kalokagathia)’라 불렀다. 이는 신체적 아름다움(외적인 미美)과 도덕적 선(내적인 선善)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인간상 및 교육이념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자아 통제(자기 절제,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 마태오 복음은 모세오경처럼 다섯 개의 큰 설교로 복음을 구성한다. 그중 제18장은 이른바 교회에 관한 설교, 곧 공동체의 삶에 관한 말씀이다. 연중 제23주일 ‘가’해에 듣게 되는 복음은 마태 18,15-20인데, 이는 공동체의 삶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죄를 짓는 형제를 만날 때 이를 어떻게 교정할 것인가에 관한 규범이다. 특별히 이 대목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 슬기롭게 그 형제를 교정하려고

만날 봉逢

전날 밤, 내 마음에는 자꾸만 ‘만날 봉(逢)’이라는 글자가 맴돌았다. 십 년도 넘게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면서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찾으려 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만나야 할 때가 되어서일까,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처럼,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설렘 속에 다시 마주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연중 제23주일 ‘가’해(마태 18,15-20)

오늘 말씀의 전례는 공동체 안에서 죄와 허물에 빠진 형제자매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형제의 허물 앞에서 선 나의 태도: ① 회피·직면 ② 비방과 험담·적대감 ③ 형제를 얻으려는 간절함) ※ 함께 읽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삼종기도 훈화 –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오늘 제1독서(에제 33,7-9)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우신다. 악인이 죄를 지을 때 그에게

중세의 ‘작은 길’

중세의 ‘작은 길’(The Little Way of the Middle Ages) ※ 역자 주: 역자의 소개 글 다음의 번역 글은 토마스 J. 크론홀츠(Thomas J. Kronholz)라는 분이 2026년 8월 11일 wordonfire.drg에 기고한 글이다. 번역 본문 앞에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개관을 약술하였고, 다소 생소한 노리치의 율리아나(Julian of Norwich, 1343~1416년 이후)이라는 분을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베네딕토 1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