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와 와인

가톨릭 신자들이 와인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례적으로, 신학적으로, 그리고 수천 개 수도원의 지하 저장고(셀러)에서 와인을 가지고 행한 일들은 와인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와인은 그리스도교보다 수천 년이나 더 오래되었다. 코카서스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적어도 기원전 6,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 그리스인, 로마인 모두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기 훨씬 전부터 정교한 와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가톨릭 전통이 와인과 맺은 역사는 ‘발명’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한 결혼 잔치에서 시작된다.

1. 카나(Cana)의 기적과 성체성사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첫 번째 기적은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다. 잔치 도중 와인이 떨어지자, 성모 마리아께서 이를 알아차리고 아들에게 문제를 알린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정결례에 쓰이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각각 20~30갤런, 약 75~110리터 부피)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고, 그 물은 와인으로 변한다. 잔치 책임자가 그 맛을 보고 신랑을 불러 말한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그저 그런 와인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을 위해 아껴둔 ‘최고의 와인’이었다.

카나의 기적이 지닌 신학적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이 사건은 그리스도교와 와인의 관계가 마지못해 마시거나 단순히 도구로만 쓰는 관계가 아님을 처음부터 확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아낌없이 베푸는 넉넉함, 나아가 풍요로움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와인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그 순간부터 와인은 단순한 문화적 산물이나 음료가 아니라, 가톨릭 이해 안에서 그리스도교 전례의 핵심적인 행위를 이루는 질료가 되었다. 와인이 없으면 미사도 없다.

2. 수도원의 지하 저장고(The Monastic Cellar)

이러한 전례적 필요성은 유럽 농업의 역사를 뒤바꾼 실제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포도 재배(포도원)가 뒤따랐다. 성체성사를 위해 와인이 필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도자는 자기 손으로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베네딕토회 규칙을 수도 공동체들이 진지하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는 대를 이어 축적된 지식, 토양과 기후에 대한 세심한 주의, 그리고 수년 동안 인내하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수도원은 이러한 지식이 발전하고 보존될 수 있는 완벽한 조건, 즉 안정성, 기록 능력, 토지, 그리고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전쟁이 유럽 전역을 황폐화하던 12세기부터, 프랑스 전역의 베네딕토회와 시토회 수도원들은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와인 양조 지식의 파수꾼이 되었다. 특히 부르고뉴 지방의 시토회 수도자들은 토양, 기후, 포도 품질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오늘날 고급 와인을 이해하는 데 근간이 되는 ‘테루아(Terroir, 포도가 자라는 환경적 특성)’라는 개념을 낳았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피노 누아(Pinot Noir)를 생산하는 담장 둘러쳐진 부르고뉴의 포도밭,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는 12세기 시토회 수도자들이 직접 돌담을 쌓아 만든 곳이다.

4세기 로마 군인 출신의 주교이자 루아르 계곡을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 포도 재배를 전파한 투르의 성 마르티노(St. Martin of Tours)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스 와인의 영적 아버지로 공경받고 있다. 그가 세운 마르무티에(Marmoutier) 수도원은 중세 초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 양조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3. 돔 페리뇽(Dom Pérignon)

이 역사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프랑스 북동부 샹파뉘(Champagne) 지방 에페르네의 언덕 위, 오트빌레(Hautvillers) 수도원의 지하 저장고에서 정점을 찍는다. 1668년, 피에르 페리뇽(Pierre Pérignon)이라는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수도원의 와인 생산과 막대한 부채를 책임지는 셀러 마스터(저장고 책임자)로 부임했다. 당시 이 지역은 부르고뉴나 보르도의 묵직한 레드 와인을 선호하던 프랑스 왕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던 저급 와인 생산지에 불과했다.

프랑스 베네딕토회 수도자에게 붙이는 경칭인 ‘돔(Dom)’을 얻은 돔 페리뇽은 오트빌레 수도원에서 47년 동안 두 가지 문제에 매달렸다. 하나는 ‘품질이 일정한 맑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장고에서 병을 폭발하게 만드는 2차 발효를 제어하는 법’이었다.

그의 해결책은 체계적이었다. 그는 서로 다른 포도밭의 포도를 블렌딩(혼합)하여 맛의 조화를 이루는 기술을 개척했고, 스페인에서 수입한 코르크 마개를 실험하여 병이 깨지지 않고 스파클링 와인의 강한 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맛보고 “빨리 와보세요, 제가 지금 별을 맛보고 있어요!”라고 외쳤다는 유명한 일화는 사실 후대에 지어낸 전설(Apocryphal)에 가깝다. 분명한 것은 돔 페리뇽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샴페인을 직접 발명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블렌딩과 발효 공정을 정립하여 지금의 샴페인을 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1715년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수도원의 포도밭 규모는 두 배로 늘어났다. 그는 오트빌레 수도원 성당에 묻혔으며, 오늘날에도 수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그의 제자이자 후계자인 돔 티에리 루이나르(Dom Thierry Ruinart)가 그의 가업을 이었고, 그의 조카는 1729년 그의 가문 이름을 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샴페인 하우스(Ruinart)를 설립했다.

4. 수도원 문을 나선 와인의 미래

프랑스 혁명은 이 위대한 전통의 매개체였던 수도원 대부분을 해산시켰고, 포도밭은 세속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수도자들이 수 세기에 걸쳐 발전시킨 포도 재배 지식만큼은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밀라노 북서부의 유명한 스파클링 와인 지역인 이탈리아의 프란차코르타(Franciacorta) 역시 이 역사와 맞닿아 있다. 프란차코르타라는 이름 자체가 ‘세금이 면제되는 법정(Franca corta)’을 뜻하는데, 이는 11세기 이곳에 설립된 클뤼니회 수도원들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가장 훌륭한 프란차코르타 와인 중 일부는 로바토(Rovato)에 위치한 안눈치아타(Annunciata) 수도원의 주님의 종(Servite Friars) 수도회의 수도자들을 비롯한 수도 공동체들에 의해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가톨릭 전통 안에서 와인은 순전한 음료 그 이상으로 남아 있다. 와인은 성사의 물질이며, 결혼 잔치에서 처음 베풀어진 선물이고, 최후의 만찬에서 흘려진 계약의 피다.

수 세기 동안 와인 생산을 완성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수도자들은 단순히 사치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거룩한 사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세심한 공경과 정성을 다해, 자신들이 신성하다고 믿는 무언가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물이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들로 남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번역글: 글쓴이-다니엘 에스파르자Daniel Esparza, 번역 원문과 이미지 출처-https://aleteia.org/2026/07/19/a-very-short-catholic-history-of-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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