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벨로 주교와 함께 묵상하는 성모님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성인(1673~1716년)은 교회 안에서 성모님 공경에 관한 올바른 기초를 놓으신 분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뒤 돈 보스코(1815~1888년) 성인은 루도비코 성인의 성모님 공경에 관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미 성모님의 현존을 몸으로 체험하고 실제의 어머니로 모시며 살아 그 어머니의 도우심 아래 자신의 소명을 시작했으며, 청소년들의 아버지와 스승, 그리고 친구로서 수많은 젊은이와 살레시안들에게 성모님의 도우심을

세상의 미움과 박해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세상”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 안에서 살아갈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빛”(참조. 마태 5,13-14)이라 하시고,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마태 13,22 마르 4,19)이 말씀의 숨을 막는다고 하셨으며,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마르 8,36 루카 9,31) 하셨다. 또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마태 18,7)을 한탄하셨으며, “나는

성 루이 마리 그리뇽 드 몽포르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역의 몽포르쇠르므에서 태어난 성 루이 마리 그리뇽 드 몽포르(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1673~1716년)는 1700년에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오늘날 <마리아론>이라고 알려진 그리스도교 신학의 한 분야를 주창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저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과 <묵주 기도의 비밀>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천사들에 관한 깊은

먹다: 파게테 vs 트로곤(요한 6,53-54)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6장의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5천 명이 넘는 배고픈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다. 이에 군중은 환호했고, 급기야 예수님이야말로 민생고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여겨 임금으로까지 추대하려 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이러한 인간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다른 말씀을 하기 시작하신다. 사람들에게 육체적이고 세속적이며 지상적인

주님의 기도(마태 6,7-1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우리 아버지’ 기도는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올바른 기도’(마태 6,5-8)와 ‘올바른 단식’(마태 6,16-18)이라는 앞뒤의 가르침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앞에 있는 ‘올바른 기도’에는 절제에 대한 권고가 담겨 있다. 말을 아끼고 기도의 분량을 자랑하지 말라는 초대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신들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수많은 말을 쏟아부어 왔다.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고, 때로는 지치게 하려 했으며,

아나스타사(Ἀναστᾶσα)

루카 1,39은 “마리아는 (일어나서)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Ἀναστᾶσα δὲ Μαριὰμ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αύταις ἐπορεύθη εἰς τὴν ὀρεινὴν μετὰ σπουδῆς εἰς πόλιν Ἰούδα,)”이다. 여기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리아는 … 갔다’라는 사실을 묘사하면서 ‘아나스타사(Ἀναστᾶσα)’라는 말을 문장 서두에 놓는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일어나다, 일어서다(자동사)’ 혹은 ‘일으키다, 세우다(타동사)’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같은 동사가

사흗날의 여인이신 성모님

‘가경자’이신 안토니오 벨로(Antonio Bello, 애칭 토니노, 1935~1993년) 주교님이 성모님께 남긴 기도문 중에 성모님을 ‘사흗날(셋째 날)의 성모님’이라 호칭하며 드린 아름다운 기도문이 있다. 주교님은 이탈리아 분으로서 그분의 거룩한 삶을 기려 교회가 2007년에 공식적인 시복·시성 절차에 들어갔다. 그는 교회가 ‘앞치마 교회(the Church of the apron)’라고 불리기를 꿈꾸었다. 주교님께서 이렇게 독특한 듯한 용어의 교회상을 그린 것은 예수님 최후의 만찬에서

성 토요일

「형제 여러분,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습니다. 과연 엄숙한 침묵과 고독입니다. 이렇게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는 것은 임금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신 안에서 주무시고 옛적부터 잠자고 있던 이들을 깨워 주셨기에 땅은 공포에 떨어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신 안에서 돌아가시고 지옥은 잠 깼습니다. 주님은 마치 목자가 잃어버린

성주간 수요일(마태 26,14-25)

유다 이스카리옷이 수석 사제들로부터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노린다. 제자들은 파스카 축제 지낼 곳을 예수님께 여쭙고, 예수님께서는 ‘아무개 집’을 지정하신다.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며 근심한다. 유다 역시 예수님께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여쭙는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대답하신다. 1. 주님,

성주간 화요일(요한 13,21ㄴ-33.36-3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앉은 식탁에서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고갯짓하고 요한이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빵을 적셔서 주시고, 유다는 어두운 밤 밖으로 나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신다.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으며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라 답하신다. 1. 빛과 어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