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세메이온, σημεῖον)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사도 2,22)는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기적’, ‘이적’, ‘표징’이 함께 등장하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신약성경의 원어인 그리스어에서는 이를 각각 δυνάμεσι(← δύναμις, dynamis), τέρασι(← τέρας, teras), σημείοις(← σημεῖον, sēmeion)로 표현하며,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miracles, wonders, signs로 옮긴다. 이 세 용어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면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뒤나미스’는 사건 안에서

자비(Ἔλεος)

예수님께서는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하시며 “나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마태 9,13;12,7)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마태오 복음에서 두 차례 반복된다. ‘자비’라는 말은 공관복음에 주로 등장하며, 특히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서 두드러진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표현이 직접 나오기보다 ‘사랑’이라는 말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맥락은 분명하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트집 잡으려 할 때였다. 마태오 9장에서는

손을 대다(합토마이 ἅπτομαι)

마태오 복음 9,18-26에서 회당장은 예수님께 “손을 얹어” 딸을 살려주시기를 청한다. 한편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것이라 믿고 다가가 실제로 그 옷자락에 “손을 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어 다시 살리신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는 ‘손을 댐’, 곧 접촉이라는 행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여기서 “손을 대다”라는 표현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사도

요한복음에는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라는 똑같은 표현이 세 번 등장한다.(요한 11,16;20,24;21,2) 우리는 그의 출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어쩌면 갈릴래아 호수의 어부였을지도 모른다.(요한 21,2참조)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주로 요한 복음서에서 온 것이다. 공관 복음서(마태오·마르코·루카)에서 그는 그저 열두 사도의 명단에만 등장할 뿐이다.(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5) 그의 이름인 토마스(Thomas)는 ‘두 배(더블)’ 또는 ‘쌍둥이’를

“눈을 들어”(에파이로, ἐπαίρω)

성경 안에서 “눈을 들어”라는 표현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시선의 이동을 넘어, 인간 존재가 어디를 향해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몸짓이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눈을 드시어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신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들어 올리다”, “높이다”를 뜻하는 ‘에파이로(ἐπαίρω)’는 이러한 움직임을 잘 드러낸다. 물론 성경은 이와 유사한 여러 표현을 함께 사용하지만, 그 핵심은 하나로 모인다. 곧, 인간의

참새(스트루디온, στρουθίον)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οὐχὶ δύο στρουθία ἀσσαρίου πωλεῖται; καὶ ἓν ἐξ αὐτῶν οὐ πεσεῖται ἐπὶ τὴν γῆν ἄνευ τοῦ Πατρὸς ὑμῶν.)”(마태 10,29) 모세오경처럼 다섯 개의 큰 설교로 구성된 마태오 복음에서, 제10장은 이른바 ‘파견 설교’에 해당한다. 이 설교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대속代贖의 신비(La mistica della riparazione)

* 디보 바르소티((Divo Barsotti, 1914~2006) 신부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가톨릭 사제이자 영성가, 수도승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신비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첫 자리에 두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데 헌신했다. 1947년경 ‘하느님 자녀들의 공동체’를 설립했다. 선종 후 15년이 지나면서 2020년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고, 2026년 피렌체 대교구에서 진행된 그의 시성·시복 조사가

사도使徒(αποστολοs)

‘사도使徒’는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s)에 해당하는 우리말이다.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포스텔로(αποστελλω)’의 명사형이다. 아포스톨로스는 원래 ‘사절, 특사, 소식의 전달자’ 같은 일반 용어였는데, 신약성경에 80여 번이나 등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파견된 사람’이라는 성경의 언어로 굳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선택하시어 파견하신 사도는 열둘이다.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꿔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인 야고보와

안토니오 벨로 주교와 함께 묵상하는 성모님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성인(1673~1716년)은 교회 안에서 성모님 공경에 관한 올바른 기초를 놓으신 분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뒤 돈 보스코(1815~1888년) 성인은 루도비코 성인의 성모님 공경에 관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미 성모님의 현존을 몸으로 체험하고 실제의 어머니로 모시며 살아 그 어머니의 도우심 아래 자신의 소명을 시작했으며, 청소년들의 아버지와 스승, 그리고 친구로서 수많은 젊은이와 살레시안들에게 성모님의 도우심을

세상의 미움과 박해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세상”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 안에서 살아갈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빛”(참조. 마태 5,13-14)이라 하시고,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마태 13,22 마르 4,19)이 말씀의 숨을 막는다고 하셨으며,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마르 8,36 루카 9,31) 하셨다. 또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마태 18,7)을 한탄하셨으며,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