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요한 12,1-11)

예수님께서는 마르타, 마리아, 그리고 다시 살려주신 라자로 3남매가 있는 베타니아로 가신다. 식사 중에 마리아는 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린다. 제자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핑계로 향유의 값을 계산한다. 예수님께서는 “늘 너희 곁에 있을 가난한 사람”을 언급하시며 당신의 장례를 암시하신다. 사람들은 예수님뿐 아니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 라자로도 보려고 밀려든다.

“몸을 굽히시어…땅에 무엇인가 쓰셨다”(요한 8,6.8)

요한복음만이 전해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목 중에 ‘간음하다 잡힌 여자’(요한 8,1-11)라는 소제목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이 복음은 여자를 고발하며 돌을 던지려는 이들에게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하시고, 홀로 남은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하신 예수님의 말씀들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 복음

“내어주는 내 몸”(루카 22,19)

성체성사의 제정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 대목은 마태 26,26-29 / 마르 14,22-25 / 루카 22,14-20 / 1코린 11,23-26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시며 말씀하신다.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은 “내 몸, 내 계약의 피” 코린토 1서는 “내 몸,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라고 하는데, 유독 루카복음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라 하면서 “내어주는”이라는 말씀을 붙인다. ‘내어주는’이라는 말은 성경의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어렸을 때 국어 시간의 평가는 흔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네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말이 이 네 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언어는 문법과 어휘를 넘어 문학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 비판과 해석의 힘, 담화와 소통의 감각까지 두루 갖추어야 비로소 품위를 얻는다. 그러지 못하는 말은 말이 아니라 소음이 되고, 뜻을

지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Piero del Pollaiolo, 1441~1496, Antonio del Pollaiolo의 동생)는 7가지 덕목(Seven Virtues: 지혜, 정의, 절제, 용기라는 네 가지 사추덕四樞德과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향주덕向主德)을 연작으로 그리면서 지혜(The Prudence, 신중함, 슬기로움)라는 작품에서 지혜를 의자에 앉아 오른손에 거울을, 그리고 왼손에 뱀을 쥐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그린다.(*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성을 내는 자”(마태 5,22)

‘성을 내다’라는 말에서 ‘성’은 한자어로 ‘성낼 노怒/분忿/분憤/개愾/에恚’와 같은 글자들을 사용한다. 이 글자들에는 모두 ‘마음 심心’이 들어 있다. 분노는 곧잘 나의 밖에서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마음에 품다가, 말로 표현하다가, 가혹한 비난과 비판의 행동으로까지 3단계로 표출된다(‘산상 설교에 관한 강론’ 참조)고 하였듯이 성이 나는 것은 마음에 응어리가 맺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므로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를 기본으로 담고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ask, seek, knock: ASK)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라는 말씀들을 영어 번역에서는 ‘ask, seek, knock’라 하므로 앞 글자를 따서 ‘ASK’로 기억하기도 한다. 이 기억법은 세 동작의 순서를 간결하게 붙들도록 해 준다.(*혹자는 영어 단어들의 마지막 글자만을 따서 ‘3K’라 하는 경우도 보았다)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인간의 행위는

사순 시기의 세 기둥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 곧 재의 수요일에는 ‘가’, ‘나’, ‘다’ 해 모두 마태 6,1-6.16-18에서 전례 복음을 취한다. 이는 이 복음에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자선, 기도 단식’이라는 사순 시기의 실천에 관한 세 기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세 기둥은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의 삶을 지탱하고, 개인적인 삶은 물론 교회 공동체의 삶을 쇄신하기 위한 기본 골격이 되어 왔다.

“큰 무리”(마르 3,7.8)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들고 따른다. 어떻게라도 그분 눈에 띄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어 밀려든다. 그것이 안 되면 그분 옷자락이라도 한번 스쳐보려 한다. 예수님께서는 급기야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고, 배에 올라앉으시어 군중은 호숫가 뭍에 남겨둔 채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신다.(참조. 마르 3,7-9;4,1-2) 예수님께 그렇게 몰려든 이들은 영적·육적

“손을 뻗어라”(마르 3,5)

주님께서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자 하실 때 당신 “손을 뻗어” 당신이 주님이심을 알게 할 것이라고(참조. 탈출 7,5) 하신 뒤, 모세의 형인 아론이 주님의 명에 따라 “지팡이를 든 손을 뻗어 땅의 먼지를 치자”(탈출 8,13) 이집트의 온 나라에서 땅의 먼지가 모기로 변하였다. 모세 역시 주님의 명에 따라 하늘로 손을 뻗자 “손으로 만져질 듯한 어둠”이 이집트 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