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요한 6,51-5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로 먹이시며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셨다. 그리고 이제 신약의 시대에 이르러,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당신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먹이신다. 만나가 육체적 생명을 이어 주는 양식이었다면,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를 나누어 주는 양식이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이며, 우리는 이 신비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

1독서(민수 8,2-3.14ㄴ-16ㄱ)는 광야에서 굶주린 백성을 만나로 먹이신 하느님의 섭리를 기억하라고 초대한다. 그러나 이 만나는 단순히 배고픔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통해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곧, 육신의 생명을 넘어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으로 초대하신 것이다.

이 생명의 신비는 2독서(1코린 10,16-17)에서 더욱 깊어진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나누는 축복의 잔이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며, 우리가 떼는 빵이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성체를 나누는 우리가 비록 여럿이지만 한 몸을 이룬다고 역설한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동시에, 서로를 하나로 묶는 사랑의 성사이다.

복음(요한 6,51-58)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신비를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고 선언하시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나 은유, 상징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생명을 주시는 양식, 곧 예수님의 몸과 피에 대한 선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제의 말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그분의 실재적 현존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체성사를 “믿음의 성사, 일치의 성사, 사랑의 성사”라고 말한다. 베들레헴, 곧 ‘빵집’이라는 뜻을 지닌 마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한 양식으로 내어주셨다. 그분을 받아 모시는 우리는 서로에게 빵이 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년)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밥이 되어야’ 한다.

성체성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 되는 자리이다. 우리가 받아 모신 그 빵처럼, 우리의 삶도 예수님 손에 들어 올려지고, 축복받고, 쪼개어져, 서로를 위해 나누어져야 한다.(참조. 1코린 11,23-24)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또 다른 그리스도의 삶이 된다.

성체와 성혈의 신비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랑이며,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진리이고, 살아내야 할 부르심이다. 아멘!

***

– 나는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온전한 믿음으로 고백하는가?

–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지체들을 올바로 섬기며 사랑하는가?

– 성체를 받아 모신 다음 내 안에 오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드리는 나의 기도는 무엇인가?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요한 6,51-58)

먹다: 파게테 vs 트로곤(요한 6,53-54)

성 비오 신부님께서 영성체 후 바치신 기도문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