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루카 1,39-56)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1637년, by Guido Reni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포된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영광속으로 들어가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며, 모든 이가 도달해야 하는 삶의 최종 목적지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는 축일이다. 승천하신 성모님은 인류의 운명을 보여주는 예표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축일에 관한 묵상, 가톨릭교회교리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성모 공경> 한 대목과 “승천하신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수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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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축일 묵상

한여름의 한가운데서 교회는 동정 마리아를 기리는 축일 중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축일인 성모 승천, 즉 마리아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심을 기념하도록 우리를 부른다.

초 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분을 낳으셨고 피조물 전체를 대표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맞아들이셨던 마리아 안에서,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기다리는 목적지, 곧 인간적인 것, 그리고 인간의 모든 것이 하느님 안으로 올림을 받는 사건이 미리 형상화되었음을 직감했다.

마리아는 “딸 시온”, 곧 메시아가 태어난 거룩한 이스라엘이자(참조. 스바 3,14-15 즈카 9,9 미카 5,1-2),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을 향해 자녀들을 낳는 공동체인 교회(참조. 요한 19,25-27)이기에 신자들의 백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집단 인격이다. 이 때문에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그녀를 이스라엘 부족들을 뜻하는 열두 개 별의 면류관을 쓰고 태양을 입은 채 메시아를 출산하는 여인(묵시 12,1-2 참조)으로 관상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후손인 교회의 어머니(묵시 12,17 참조)로 관상했다.

이는 창조주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자신의 모든 것과 함께 구원의 완성에 먼저 이르신 피조물은, 인간 안으로 파고드는 신성에 동의했던 분이기 때문이다. 땅이 하늘에 바친 생명의 공간인 동정 마리아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지극히 인간적인 만남 속에서 이미 엘리사벳에 의해 “복되다”고 선언되었으며, 변모된 피조물의 씨앗이자 첫 열매가 된다.

교회는 마리아께서 이제 죽음과 심판을 넘어, 우리가 오직 ‘하늘’이라고만 부를 수 있는 존재의 다른 차원에 계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땅과의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땅과의 포옹이 담겨 있다. 실제로 자기 안과 주변을 바라보거나 지평선을 둘러보면서 어디서 땅이 끝나고 어디서 하늘이 시작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늘은 저 먼 곳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숨 쉬는 생명의 차원이며, 성모님의 승천은 땅이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는 사건이다.

하느님 안으로 승천하신 마리아는 무한히 인간적인 분으로 남으시어, 영원한 어머니로서 땅을 향해 계시고, 모든 시대와 장소에 있는 남녀들의 고통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시며, 불확실한 그들의 나그넷길에 함께하신다. 그렇다. 동방과 서방 그리스도교 모두에게 마리아의 성모 영면永眠·안식(Dormitio), 곧 승천은 ‘최후의 실재들’, 곧 세상 끝에 일어날 일의 표징이자 인류가 열망하는 충만함의 표징이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때, 온 우주를 기다리는 영광을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직감한다. 마리아는 이미 구원받은 인류의 몫이자 우리가 부름받은 ‘약속된 땅’의 형상이며, 하늘에 이식된 땅의 조각이다. 그렇기에 세르비아 정교회의 한 찬미가는 그녀를 “하늘의 땅”으로 노래한다. 우리 역시 그녀처럼 그 흙에서 취해졌지만(창세 2,7 참조), 성령의 힘 덕분에 구원받고 변모되어 이제 영원히 하느님 안에 있는 땅이다.

이 “모두를 위한 희망”이야말로 전례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 축일에 늘 노래하고자 했던 바이다. 오늘날 일부 전례적 표현이나 도상학적 묘사들이 우리에게 미흡하게 보일지라도, 그것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열망은 오늘날에도, 그리고 한여름 휴가철의 소란함 속에서도 여전히 동일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이 땅이 협소하게 느껴지며, 우리의 몸을 걱정하면서도 스스로가 육체라는 물리성보다 더 큰 존재임을 느낀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투쟁하지만, 우리의 진실이 시간을 초과한다는 것을 자각하며, 우정과 사랑을 누리면서도 그 한계를 느끼고 그 무상함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이처럼 ‘하게 크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해 주는 이가 바로, 하느님의 선물 덕분에 주님의 어머니이자 하늘의 땅이 된 나자렛의 겸손한 한 여인이다.

모든 빛의 근원이자 목적지이신 빛을 향해 올라간 마리아의 몸은 더 이상 일부 신자들의 개인적 신심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올려진 피조물 전체의 최종적 운명에 관한 것이다. 성체성사, 곧 감사, 동정 마리아께서 마니피캇을 통해 하느님께 올려드릴 줄 알았던 그 감사가 되고, 하늘과의 포옹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땅의 육신 자체이다.

이날의 전례는 1독서복음에서 두 여인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제1독서(묵시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에 등장하는 “태양을 입은 여인”은 메시아를 낳으려는 여인으로 요한 묵시록의 “하느님의 계약 궤”이자 “큰 표징”이다. 이분이 바로 복음에서 메시아를 태중에 품고 있는 젊은 여인이자 사촌 엘리사벳이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르신 마리아이시다.

성모님께서는 생명을 태중에 품고 있다. 그녀 태중의 열매인 그 생명은 바로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아드님의 생명은 위협받는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삼키려는 원수, 곧 “용”, ‘구약의 뱀’이 있다. 한쪽에는 생명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생명을 파괴하려는 원수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1코린 15,25; 2독서) 것이다.

창세기와 요한 묵시록은 자녀를 낳는 어머니 여인인 하와로 대표되는 인류와 여인의 씨앗을 어떻게든 파괴하려는 원수 사이의 이 비극적인 대립을 제시한다. 역사의 시작과 끝. 시작과 끝은 역사의 전체성을 가리키는 두 극단이다. 이 갈등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신앙인인 우리의 삶 역시 이 싸움에서 예외가 아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계시한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묵시 12,5-6)

묵시록의 저자는 대담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 고통스러운 출산으로 생명의 열매가 하느님 곁으로 올려져 하느님 안에 보존되며, 인간의 힘이나 원수의 힘도 그것을 손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난다. 첫 번째 계약(구약)에서 광야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관계가 시험받고, 검증되며, 성숙해지는 장소였으며, 또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펼쳐진 사랑의 장소이기도 했다.

광야는 인류가 살아가는 ‘장소’이자 우리 각자의 일상적인 상황이다. 광야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시험되고 성장하는 자리다. 우리의 일상이며, 믿음이 길러지는 삶의 자리다. 곧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자라나는 노고와 시련의 장소이며, ‘사랑’을 재발견하는 장소이고, 결핍(물, 양식, 삶의 가능성의 결핍)이 오직 ‘다른 분’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장소이다. 바로 이곳 광야에서 하느님께서는 여인을 위해 원수의 위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피신처’를 마련해 주신다.

사실 인류 전체와 신자 공동체는 아직 최종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 그들은 광야에 있으며 적대적인 세력들과 매일 싸우고 있다. 완성은 아직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다. 우리가 할 일은 불안정과 불확실성 속에서, 유혹과 혼란 속에서 걸어가며 싸우는 것이지만, 목적지에 시선을 고정하고 결코 혼자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3)라는 말씀처럼 승리자이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원수와의 모든 싸움이 최종적으로 승리했음을 안다.

하늘에 승천하신 마리아는 그녀 안에서 완성되었고, 우리 각자에게도 실현되고 있는 이 실재를 미리 보여주는 표징이며,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미래이다.

*이 글의 전반부는 ilblogdienzobianchi.it에 실린 2022년 Enzo Bianchi의 글 <Maria diventa “terra del cielo”!>에서 번역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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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교리서

「966항.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교회 헌장, 59항; 비오 12세, 교황령 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DS 3903 참조)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

“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은 출산 때에도 동정을 보존하셨으며, 돌아가시면서도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잉태하셨고 기도로써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 주신 당신은 생명의 근원에 결합되셨나이다.”(비잔틴 전례, 성모 영면永眠 축일-8월15일, 마침 기도-Troparium: Ὡρολόγιὸν τὸ μέγα, 로마, 1876년, 215면)

972항. 우리는 앞에서 교회와 그 기원, 사명,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마리아께 눈을 돌려, 그분 안에서 교회의 신비와 “신앙의 나그넷길”을 걷는 교회를 관상하고, 이 나그넷길이 끝난 다음 본향에 들어선 교회의 모습을 묵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끝맺음이 될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마리아께서는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 지극히 거룩하신 불가분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교회 헌장, 69항) 안에서 교회를 기다리고 있으며, 교회는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이며 자신의 어머니로 공경한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신다.(교회 헌장, 68항)」

성 바오로 6세의 <마리아 공경>

「 … 8월 15일의 대축일에는 마리아의 영화로우신 승천을 기념합니다. 이 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는 축제일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인류에게 그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위로의 증거를 나타내는 축일, 즉 “같은 피와 살을 지니신”(히브 2,14; 갈라 4,4 참조) 그리스도께서 형제로 삼아주신 모든 이들이 마침내 이 충만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기뻐하는 축일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 기념일에서 계속됩니다. 이 기념일에는 영원하신 왕 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합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 사도적 권고 – <마리아 공경> 6항,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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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하신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오 마리아 원죄 없이 잉태되시어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뵙는 지극한 행복 속에 살아가시는 분,

그 하느님은

당신을 고귀한 피조물로 빚으신 성부이시며,

당신에게서 사람으로 태어나 당신을 어머니로 모시고자 원하신 성자이시고,

당신 안에서 구세주의 잉태를 이루신 성령이시나이다.

오 지극히 순결하신 마리아,

오 지극히 감미롭고 아름다우신 마리아,

오 굳세고 사려 깊으신 여인 마리아,

오 가난하고 고통받으신 마리아,

오 동정녀이시며 어머니이신 마리아,

하와와 같은 여인이시며,

아니 하와보다 더욱 깊이 인간적인 여인이시여.

당신은

당신의 은총 안에서,

당신의 특권 안에서,

당신의 신비와 사명 안에서,

그리고 당신의 영광 안에서

하느님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나이다.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우리 인간 본성이 완전히 변모되고 완성된 모습으로

승천하신 마리아시여.

오 하늘의 문이시여,

하느님 빛의 거울이시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 계약의 지성소이시여,

저희 영혼이 당신 뒤를 따라 날아오르게 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의 희망에 이끌려

당신의 찬란한 길을 따라 올라가게 하소서.

자비로우신 어머니,

하늘에서 저희를 위로하시고,

순결과 희망의 길로 저희를 이끄시어,

언젠가 당신과,

당신의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하느님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된 만남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성 바오로 6세 교황)

***

Preghiera a Maria Assunta

O Maria Immacolata Assunta in cielo,

tu che vivi beatissima nella visione di Dio:

di Dio Padre che fece di te alta creatura, di Dio Figlio che volle da te

essere generato uomo e averti sua madre, di Dio Spirito Santo che in te

compì la concezione umana del Salvatore.

O Maria purissima

o Maria dolcissima e bellissima

o Maria donna forte e pensosa

o Maria povera e dolorosa

o Maria vergine e madre

donna umanissima come Eva più di Eva.

Vicina a Dio nella tua grazia nei tuoi privilegi

nei tuoi misteri

nella tua missione nella tua gloria.

O Maria assunta nella gloria di Cristo

nella perfezione completa e trasfigurata della nostra natura umana.

O Maria porta del cielo

specchio della luce divina

santuario dell’Alleanza tra Dio e gli uomini,

lascia che le nostre anime volino dietro a te

lascia che salgano dietro il tuo radioso cammino

trasportate da una speranza che il mondo non ha quella della beatitudine eterna.

Confortaci dal cielo o Madre pietosa e per le tue vie

della purezza e della speranza guidaci un giorno all’incontro beato con te

e con il tuo divin Figlio

il nostro Salvatore Gesù. Amen!

(San Paolo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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