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조용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한 사막 교부들의 세 가지 원칙 현대 사회는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유도하기 위해 투자하는 사회다. 현대 사회는 주의력이 하나의 자산과 자본이 되는 가히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를 끌기 위해 요동하는 사회는 나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으며 요란하고 현란하다. 15세기나 앞서, 이집트의 사막에 살았던 수도자들 역시
우리의 타락·오염된 시력의 치유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옛 속담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는 알면서도 흔히 무시하곤 하는 사실, 즉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한 우리의 추측이 신뢰할 수 없음을 간결하게 암시하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사물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처럼 시력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속담이 가득하다. 우리는
음력 팔월 보름, 연중 가장 커다란 달이 뜬다는 한가위 추석(秋夕)이다. 중국에서는 중추절, 일본에서는 십오야(十五夜)라 부르던가. 빛나는 태양 아래 밝은 대낮을 지나온 이들에게, 무섭고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 마침내 두둥실 차오르는 만월(滿月)은 그 자체로 희망이요 고마움이었다. 눈이 부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낮의 태양도, 조금씩 형상을 바꾸어 빛을 비추다가 한 달에 한 번 커다란 만월이
무례함은 말투와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뿔을 쳐들고 고개를 치켜들며(시편 75,6 참조), 때에 맞지 않는 말을 끝없이 지껄이는 무지입니다(집회 20,19 참조). 식탁 위 빵 위에 팔꿈치를 올리듯 선을 넘고(집회 41,19 참조), 제 이익만 추구하며 성을 내고 앙심을 품습니다(1코린 13,5 참조). 무례함은 퉁명스럽고 빈정거리며 냉소적입니다. 말없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나를 순식간에 압도하여 휩싸이게
전날 밤, 내 마음에는 자꾸만 ‘만날 봉(逢)’이라는 글자가 맴돌았다. 십 년도 넘게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면서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찾으려 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만나야 할 때가 되어서일까,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처럼,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설렘 속에 다시 마주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돈벌레라 불리는 그리마 한 마리가 침실 바닥에 나타났다. 어릴 적부터 그 벌레는 죽이면 안 된다는 막연한 금기가 내 안에 있었다. 왠지 그걸 보면 머지않아 돈이 들어올 것만 같은, 근거 없는 기대도 함께 따라붙곤 했다. 예전에는 따뜻한 부잣집에서나 자주 보이던 벌레라 하여, 죽이면 돈복이 나간다는 속설이 생겼다던가.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야 나타날 법도 했다. 딱히 돈이
직원 선생님과 함께 은행에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발이 미끄러지며 그만 진흙탕에 털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1인 인출 한도가 있어 둘이 함께 가야 돈을 많이 찾을 수 있었는데,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선 눈앞의 상황부터 수습해야 했다. 부끄러움을 동력 삼아 벌떡 일어나 가방 속 은행 서류가 젖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나는 집으로
텃밭에 오이를 비롯하여 여러 열매가 달리는 계절이다. ‘외로울 고孤’는 ‘아들 자子’와 ‘오이 과瓜’의 결합이다. ‘아들 자子’야 워낙 익히 아는 글자이므로 사족이 필요 없다. ‘오이 과瓜’는 양쪽 덩굴손과 덩굴손 사이에 덩그러니 맺은 오이의 모습을 그렸다. 오이나 참외, 호박이나 박과 같이 마디 하나에 열매 하나를 맺는 수많은 덩굴 식물이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오이를 글자 이름으로
‘노래 요謠’라는 글자는 ‘말씀 언言’, 소릿값이면서 ‘천천히 흐르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질그릇 요䍃’로 이루어져 말을 천천히 늘여서 노래한다는 뜻으로 ‘풍문’이나 ‘소문’의 뜻까지 담았다고 했다. 그런데 노래나 말이므로 ‘말씀 언言’이 붙어있는 것은 그럴듯한데, ‘질그릇 요䍃’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연유가 궁금하다. ‘질그릇 요䍃’는 질그릇을 나타내는 회의 글자로 ‘고기 육肉’의 변형 + ‘장군 부缶’로서 이때 ‘장군 부缶’는 진흙으로 빚어
두려움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여럿이다. 이들은 두려움이 생겨나는 원인과, 그것에 반응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결을 지닌다. ‘두려울 공(恐)’은 외부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얼어붙는 일반적인 두려움이다. 근거 없이 엄습하는 ‘공황(恐惶)’이나, 높은 곳에서 오금이 저리는 ‘고소공포(高所恐怖)’와 같은 말이 여기에 속한다. ‘두려워할 구(懼)’는 깊이 경계하며 삼가는 두려움이다. 글자의 모양에서처럼, 마치 새가 높은 곳에 앉아 두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