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닝 크루거 효과와 소셜 미디어

우리말 속담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든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말을 영국의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년)은 “무지는 지식보다 더 자주 확신을 가지게 한다: 이런저런 문제가 과학에 의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토록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많이 아는 자들이 아니라 거의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Ignorance more frequently begets confidence than does knowledge: it is those who know little, and not those who know much, who so positively assert that this or that problem will never be solved by science.)”라고 했다 하니 이와 같은 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현상에 가까운 것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내용은 현대의 사회 심리학에서 ‘더닝 크루거(Dunning-Kruger) 효과’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잘못 과대평가하는 인지적 편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부족하여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명칭은 1999년 《성격 및 사회심리학 학술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논문을 발표한 두 저자,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들이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무능하고 그것을 모르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어떻게 부풀려진 자기 평가로 이어지는가」이다. 이 논문의 초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4가지 연구에 걸쳐 저자들은 유머, 문법, 논리 테스트에서 하위 25%의 점수를 기록한 참가자들이 자신의 시험 성적과 능력을 심각하게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시험 점수는 하위 12%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상위 62% 정도에 위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몇 가지 분석 결과, 이러한 오판은 메타인지(metacognitive) 능력, 즉 정확함과 오류를 구별해 내는 역량의 결핍과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최초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더닝 크루거 효과가 광범위한 분야에서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하는 다른 연구들도 잇달아 진행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의 능력을 향상시킨 후에 나타난 결과였다. 참가자들은 그들의 역량이 더 커졌을 때, 비로소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식과 기술이 향상할수록 자신의 실제 역량을 과대평가할 확률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쓰면서 겪는 수많은 경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는 특정 분야에 대해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사실’인 양 당당하게 주장하고, 자신의 관점에 즉각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악마화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의견들의 자신만만함과 강압적인 태도만을 보면,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정치, 경제, 환경, 과학, 종교의 전문가처럼 보일 지경이다. 설령 그 분야에 대해 정식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또한 “직접 조사해 봐(Do your own research)”라는 식의 반박이 쏟아지는 걸 보면, 오늘날 현대인의 대다수가 여가의 대부분을 자신의 본업과 무관한 매우 복잡한 분야에 대한 강박적인 독학 연구에 쏟아붓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여러분은 그들이 자유시간 대부분을 둠스크롤링[Doomscrolling – 소셜 미디어에서 암울한 뉴스만 연이어 보는 행위를 하며 보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그들은 여가에 “직접 연구”를 하느라 바쁜데 말이다!)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지금은 모두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시대인 것만 같다.

반대로, 우리는 아주 뛰어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정작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주제를 이야기할 때조차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에 대해 온갖 단서를 달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이따금 보게 된다. 이는 그들이 자신이 깊이 연구하지 않은 영역이 무엇인지를 메타인지적으로 훨씬 더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분야 밖의 일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해당 분야의 진짜 전문가가 되려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의견이 100%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훨씬 더 열려 있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단순히 흥미로운 사회학적, 심리학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중에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 매우 박식한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엄청난 수의 팔로워를 거느린 이들 또한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발언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자격을 가졌다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고, 밤낮으로 온갖 사안에 대해 끝없는 허풍과 독설을 쏟아낸다.

안타깝게도 이런 모습은 매우 자주 목격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이들이 자신보다 그 사안에 대해 더 많이 교육받은 사람의 교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얼마나 빈번한가 하는 점이다. 이때부터 대화는 자존심 싸움과 도덕성 과시(Virtue signaling)의 각축장이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내 말이 맞을 수밖에 없고, 나에게 반대하는 저 사람은 틀린 것이 분명하다”라는 전제가 깔린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가 반드시 사실은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단순히 무지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가졌을 뿐인 ‘선의를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 있고, 그의 상대방이 선의를 가졌든 아니든 간에 ‘그 사안에 대해 더 정확한 사람’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바로 이 지점에서 겸손(Humility)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따금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흔히 온라인 논쟁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간혹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누군가의 지적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여전히 누군가를 모욕하고 비난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지만, 잘못을 겸손하게 수용하는 아주 드문 순간들도 있으며 이는 정말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이 그리운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더닝 크루거 효과에 대한 지식을 우리의 삶과 소셜 미디어 소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글을 작성하기 전과 작성하는 도중에 이 현상을 반드시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정말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짜로 정보를 갖추고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가진 ‘느낌(감정)’을 제외하고는 딱히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실천할 수 있다. 1) 아예 글을 올리지 않거나, 2) 사용하는 언어를 완화하는 것이다.

“언어를 완화한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믿기 힘들겠지만, 지나치게 확신에 찬 멍청이가 되지 않고도 어떤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현재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건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거나 거짓말쟁이가 분명하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러한 사실과 관찰, 이유들을 바탕으로 볼 때, 이 문제에 대한 나의 현재 입장은 이러저러합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말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한계 안에서도 조금씩은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지 어떤 우월한 위치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함께 조금씩은 개선해 나갈 수 없을지 제안해 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 수준을 더 이성적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 표현의 표출 방식을 더 너그럽고 상냥하게 바꾸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사용 방식에서 더닝 크루거 효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가의 경전인 『예기(禮記)』의 ‘학기(學記)’편 첫 부분에는 “배운 후라야 부족함을 알고, 가르쳐본 후라야 모자람을 안다. 부족함을 알면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모자람을 알면 보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움과 가르침은 서로 보완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유명한 사자성어 ‘교학상장(敎學相長: 배움과 가르침이 서로 보완하며 자람)’은 바로 이 구절로부터 나왔다. 부족함을 알아야 ‘교학상장’할 수 있기에 만세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공자도 늘 공부가 부족하고 실천이 부족함을 자신의 걱정거리로 여기면서 다른 이의 스승이 되어갔다.

※이 글의 바탕과 이미지 출처는 https://www.wordonfire.org/articles/the-dunning-kruger-effect-and-social-media/이다. 이를 번역하고 이에 생각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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