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름병

열 명의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등잔에 담긴 기름만으로 신랑을 기다리려 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등잔의 기름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여분의 기름을 따로 준비한 것이다(참조. 마태 25,1-13).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는 결심에서가 아니라, 신랑이 늦어지는 밤에도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기다릴

돌아서서

돌아서서(스트라페이스, στραφείς, strapheis) 루카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몸을 돌려 말씀하시거나 누군가를 바라보시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참조. 루카 7,9.44; 9,55; 10,23; 14,25; 22,61; 23,28). 여기서 ‘돌아서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스트라페이스(στραφείς)’이다. ‘스트레포(στρέφω, strephō)’라는 동사에서 나온 형태로, 문법적으로는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이지만 이 문맥에서는 ‘몸을 돌려’, ‘돌아서서’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문자 그대로는 몸의 방향을 바꾸거나 뒤돌아보는 동작을 가리킨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표현을

손을 잡다(에필람바노마이, ἐπιλαμβάνομαι)

“예수님께서는 그(수종병자)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루카 14,4)이라고 할 때, ‘손을 잡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에필람바노마이(ἐπιλαμβάνομαι)’이다. 이 말은 ‘붙잡다’, ‘손을 대어 붙들다’, ‘움켜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단순히 바라보거나 말로만 지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병자에게 직접 다가가 그를 붙드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보여 준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손을 잡거나 직접 붙들어 주시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태 9,25에서는 소녀의

신애론(2-17)

제17장 망덕에서 오는 사랑이 좀 불완전하기는 할망정 굳세고 좋은 것이다 우리가 망덕으로 실천하는 그 사랑은 진정으로 하느님을 향한 것이지만 테오티모여,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겉보기에는 하느님의 착하심에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어떤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우리의 편리와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저 최상의 완전자에게로 향한 것이지만, 우리 자신의 만족을 목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렘브란트의 <성 마태오와 천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마치 렘브란트가 일종의 예술적 기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법을 발견해 낸 것만 같다. 1661년, 렘브란트는 사도들의 초상화 다섯 편을 그렸다. 그중 하나가 한 손에 펜을 쥐고 글쓰기 책상에 앉아 있는 노년의 성 마태오와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천사를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렘브란트 자신 역시 나이가 들어가는

연중 제32주일 ‘가’해(마태 25,1-13)

전례주년의 막바지를 향해 가며, 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에 교회는 마태오 복음 25장을 읽도록 제시한다. 바로 ‘열 처녀의 비유’와 ‘탈렌트의 비유’이다. 오늘 말씀의 전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신랑을 맞이하려는 희망 속에서 지혜롭게 깨어 준비하는 삶’이다. 오늘 우리는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제1독서), “늘 주님과 함께 있으리라는 희망”(제2독서), 그리고 “등과 함께 기름을 그릇에 담아 준비하여 신랑과 함께

모든 성인 대축일

※ 연중 주일이지만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므로 강해를 대신하여 3가지 묵상 소재들을 함께 나눕니다. 제시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의 역사와 유래 및 2025년 엔조 비앙키의 번역문인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과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 기도 훈화 번역문인 모든 성인 대축일(11월1일) 등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 모든 성인 대축일에 말씀의 전례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은 제1독서(묵시 7,2-4.9-14), 제2독서(1요한

모든 성인 대축일의 역사와 유래

모든 성인 대축일(Sollemnitas Omnium Sanctorum, 11월 1일)은 이름이 알려진 성인들뿐만 아니라,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이름 없는 모든 성인을 한날한시에 기억하고 찬미하는 교회의 대축일이다. 이 대축일은 박해 시대 순교자들을 함께 기억하려는 교회의 전통에서 출발하여, 동방과 서방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해 온 모든 순교자와 모든 성인에 대한 공경이 8~9세기에 이르러 11월 1일이라는 하나의

말문을 막다(피모오, φιμόω, phimoo)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마태 22,34)에서 ‘말문을 막다’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피모오(φιμόω, phimóō)이다. 본래 이 말은 동물의 입에 ‘재갈을 물리다’ 또는 ‘입마개를 씌우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상대방의 입을 막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다, 곧 ‘침묵시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논박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하셨음을 이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

가톨릭교회에서 매년 10월 28일에 축일을 함께 기리는 두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인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이다. 두 사도에 관한 신약성경의 기록은 많지 않지만, 교회는 오랜 전통 안에서 이들을 함께 기억해 왔다. 특히 서방 교회의 전승에서는 두 사도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두 사도의 축일이 함께 자리 잡았다. 다만 이들의 선교와 순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