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파게테 vs 트로곤(요한 6,53-54)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6장의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5천 명이 넘는 배고픈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다. 이에 군중은 환호했고, 급기야 예수님이야말로 민생고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여겨 임금으로까지 추대하려 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이러한 인간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다른 말씀을 하기 시작하신다. 사람들에게 육체적이고 세속적이며 지상적인

부활 제4주일 ‘가’해-성소주일, 생명주일(요한 10,1-10)

예수님의 시대에 목자들은 도시나 시골, 산악 지형이나 들을 막론하고 팔레스티나 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양들과 같이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우유나 고기, 치즈와 가죽이나 털을 공급하였다. 성경에서 목자는 비유나 상징적인 예표로 자주 등장한다. 주님이신 하느님을 두고 “이스라엘을 양 떼처럼 이끄시는 분”(시편 80,2)이라고 한다든가,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끌어”(시편 78,52;95,7;100,3)에서 보듯이

명상, 묵상, 관상

많은 곳에서 세 말마디를 듣는다. 그러나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국어사전의 해석을 바탕으로 풀어볼 때, 명상(瞑想/冥想, meditation)은 「고요히 눈을 감고 잡생각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주로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묵상(默想, meditation)은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에 잠기는 것. 종교적,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하느님이나 진리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주님의 기도(마태 6,7-1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우리 아버지’ 기도는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올바른 기도’(마태 6,5-8)와 ‘올바른 단식’(마태 6,16-18)이라는 앞뒤의 가르침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앞에 있는 ‘올바른 기도’에는 절제에 대한 권고가 담겨 있다. 말을 아끼고 기도의 분량을 자랑하지 말라는 초대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신들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수많은 말을 쏟아부어 왔다.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고, 때로는 지치게 하려 했으며,

신애론(2-9)

제9장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은 우리 마음에 영감靈感을 주심으로써 당신을 사랑하게 하신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다시 세우면 네가 일어서리라.”(예레 31,3-4ㄱ)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으로써 약속하시는 바가 있으니, 곧, 세상에 오시는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인데, 이 교회는 곧 처녀다운

두려움

두려움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여럿이다. 이들은 두려움이 생겨나는 원인과, 그것에 반응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결을 지닌다. ‘두려울 공(恐)’은 외부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얼어붙는 일반적인 두려움이다. 근거 없이 엄습하는 ‘공황(恐惶)’이나, 높은 곳에서 오금이 저리는 ‘고소공포(高所恐怖)’와 같은 말이 여기에 속한다. ‘두려워할 구(懼)’는 깊이 경계하며 삼가는 두려움이다. 글자의 모양에서처럼, 마치 새가 높은 곳에 앉아 두 눈을

신약에서 성모님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성경 구절

바오로 사도는 성모님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던 사도이지만, 신약성경에서 성모님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최초라고 볼 수 있는 구절은 의외로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갈라 4,4)라는 구절이다. 바오로 사도는 서기 35년경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40~60년경 사이에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64~67년경 순교하였다. 바오로가 남긴 서간문

돈 보스코와 그리죠

성 요한 보스코의 전기 회고록(Biographical Memoirs of St John Bosco) 제16권 2장의 서두에 기록된 바와 같이, 충직한 개 ‘그리죠(Grigio)’는 오랜 세월 동안 돈 보스코와 살레시오 가족들을 보호했다. 1883년, 돈 보스코는 몇 가지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벤티밀리아의 주교를 방문했다. 대화는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다. 그날 낮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돌아오는 길은 칠흑 같은 어둠에 진흙탕까지 겹쳐 걷기가

아나스타사(Ἀναστᾶσα)

루카 1,39은 “마리아는 (일어나서)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Ἀναστᾶσα δὲ Μαριὰμ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αύταις ἐπορεύθη εἰς τὴν ὀρεινὴν μετὰ σπουδῆς εἰς πόλιν Ἰούδα,)”이다. 여기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리아는 … 갔다’라는 사실을 묘사하면서 ‘아나스타사(Ἀναστᾶσα)’라는 말을 문장 서두에 놓는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일어나다, 일어서다(자동사)’ 혹은 ‘일으키다, 세우다(타동사)’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같은 동사가

부활 제3주일 ‘가’해(루카 24,13-35)

루카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만난 이야기를 복음의 마지막 장에 배치한다. 이는 이 이야기를 자기 복음의 결론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본인이 기록한 또 다른 책, 곧 사도행전의 도입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루카가 나자렛 예수를 두고 기록한 소위 복음 전체의 종합이요 예수님을 통한 구원 역사 전체의 결론을 대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