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을 비는 기도

1987년, 아홉 살이었던 존 오리어리(John O’Leary)는 가솔린과 불로 장난을 치다 차고에서 대형 폭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전신 100%에 중증 화상을 입었고, 병원에서는 생존 확률이 1% 미만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이후 수십 차례의 대수술과 손가락 절단, 혹독한 피부 이식 및 재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가족과 의료진, 그리고 지역 사회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생존해

무엇을 보는가?

우리의 타락·오염된 시력의 치유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옛 속담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는 알면서도 흔히 무시하곤 하는 사실, 즉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한 우리의 추측이 신뢰할 수 없음을 간결하게 암시하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사물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처럼 시력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속담이 가득하다. 우리는

한가위, 하늘의 가르침

음력 팔월 보름, 연중 가장 커다란 달이 뜬다는 한가위 추석(秋夕)이다. 중국에서는 중추절, 일본에서는 십오야(十五夜)라 부르던가. 빛나는 태양 아래 밝은 대낮을 지나온 이들에게, 무섭고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 마침내 두둥실 차오르는 만월(滿月)은 그 자체로 희망이요 고마움이었다. 눈이 부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낮의 태양도, 조금씩 형상을 바꾸어 빛을 비추다가 한 달에 한 번 커다란 만월이

연중 제26주일 ‘가’해(마태 21,28-32)

오늘 말씀의 전례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 뜻을 살아가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제1독서의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말씀은 복음의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는 말씀과 연결되고, 제1독서의 “주님의 길”과 “공정과 정의의 실천”은 복음의 “아버지의 뜻”과 “의로운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제2독서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어린 순교 성인들

우리 한국 순교자 가운데에는 놀라울 만큼 어린 나이에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이들이 있다. 103위 성인 가운데 가장 어린 순교자는 13세에 순교한 성 유대철 베드로(1826~1839)이고, 2014년에 시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가운데에는 12세에 순교한 복자 이봉금 아나스타시아(1827?~1839)가 있다. 이들의 순교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견디고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하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

1. 제물의 본질과 마음의 행방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농부 카인과 목자 아벨이었다. 세월이 흘러 카인은 땅의 소출을, 아벨은 양 떼의 맏배와 그 기름진 부분을 주님께 바쳤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좋게 보셨지만, 카인과 그의 제물은 좋게 보지 않으셨다고 전한다.(창세 4,3-5 참조) 하느님께서 제물의 종류에 따라 차별을 두신 것은 아니다. 곡물 역시

바리사이 시몬과 죄인인 여자

루카 복음 7,36-50에는 바리사이 시몬과 죄인인 여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서받은 죄인인 여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식사’, ‘바리사이와 죄인인 여자’, ‘깨어진 옥합과 향유’,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 ‘여인의 머리로 닦은 예수님의 발’, ‘두 채무자 비유’, ‘용서에서 흘러나온 사랑’ … . 복음의 수많은 대목 중 이토록 다채로운 제목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우리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03명의 시성 미사를 집전하셨다. 30년 뒤인 201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교황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를 집전하셨다. 오늘 대축일을 기리며 복음강해를 대신하여 이 시성·시복 미사를 통해 들었던

비움·낮춤·높임

필리피서 「주석성경」 입문(*아래 참조)은 필리피 교회의 신자들에게 신앙의 투쟁을 굳건히 이어가라고 권고하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 그 투쟁은 겸손과 봉사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일치를 보존하려는 노력과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필리피 신자들을 이러한 길로 이끌기 위해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라고 당부하며,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옛

무례함

무례함은 말투와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뿔을 쳐들고 고개를 치켜들며(시편 75,6 참조), 때에 맞지 않는 말을 끝없이 지껄이는 무지입니다(집회 20,19 참조). 식탁 위 빵 위에 팔꿈치를 올리듯 선을 넘고(집회 41,19 참조), 제 이익만 추구하며 성을 내고 앙심을 품습니다(1코린 13,5 참조). 무례함은 퉁명스럽고 빈정거리며 냉소적입니다. 말없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나를 순식간에 압도하여 휩싸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