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르나바(6월 11일)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일흔 두 제자 중 한 분으로 여겨지며,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사도 4,36)이라는 별명까지도 얻었던 바르나바 사도에 관한 성경 구절은 사도행전과 코린토1서, 갈라티아서, 콜로새서에 이르기까지 무려 39절에서 보인다. 키프로스 태생 레위인으로서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며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고(사도 4,35), 적극적으로 사도들을 도왔다. 개종 초기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와 함께 지내면서 사도 바오로를 공동체가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다.(사도 9,26-28)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공동체를 이룬 곳에 파견되어 사목했다. 그때 피신하여 있던 바오로 사도를 타르수스로 찾아가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사도 11,19-26)
바오로와 함께 큰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공동체를 위해 안티오키아 형제들의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고(사도 11,27-30), 그의 사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안티오키아로 데려와 바오로 사도의 1차 전도 여행으로 알려진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할례 논쟁 때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안티오키아 교회의 대표로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고 돌아가 결정 사항을 안티오키아 교회에 전달했다.
이후 바오로가 바르나바에게 이전에 복음을 전한 고을을 돌아보자고 했고(바오로의 2차 전도 여행-이전에 복음을 전했던 곳들을 돌아보고, 나아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인 필리피, 테살로니카, 아테네, 코린토 등으로 유럽 선교를 확장한 여정, 사도 15장~18장), 여기에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려가자고 했는데, 바오로가 1차 전도 여행 때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이를 함께 데려갈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 바오로는 실라스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사도 15장) 이후 사도행전에서 바르나바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후에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바오로 사도 역시 훗날 마르코를 “나의 협력자”(필레 1,24 2티모 4,11)로 칭한다.
전승에 따르면 바르나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했으며,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활발히 선교하다가 61(혹은 75년)년경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의 사촌이었던 요한 마르코가 그를 묻어주었다고 알려진다.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488년에 키프로스 섬 북단의 살라미스 성 바르나바 수도원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그의 가슴에는 마태오 복음서 사본이 올려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의 수호성인이며 상징은 올리브 가지이고, 특별히 칠전팔기하려는 이들을 위한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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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바오로의 1차 전도 여행(사도 13-14장)이라고 알려지는 선교 여행의 초반부에서는 바르나바가 주도권을 쥐었다고 할 수 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 바오로를 불러들여 함께 사목을 시작한 것이 바르나바였으며, 여행 초기 기록(사도 13장)을 보면 항상 ‘바르나바와 사울(바오로)’ 순으로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차 원정대의 실질적인 리더는 바르나바라고 할 수 있다.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 섬에서 첫 선교가 시작되었고, 바르나바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프로스 섬을 떠나 소아시아(현재의 튀르키예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이 변한다.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등에서 유창한 설교와 기적을 행하며 선교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다. 여정이 진행되면서 성경의 기록 순서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로 바뀌며,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오로의 영적 카리스마와 능력이 전면에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이 여행은 누구의 주도권 문제가 아니라 협력자적 관계로 보아야 한다. 단순히 누구만의 여행이라기보다는 바르나바의 포용력과 바오로의 열정이 결합한 시너지 여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1차 전도 여행은 ‘바르나바의 리더십에서 출발하여, 바오로의 지도력과 사도적 역량이 폭발적으로 발견되고 성장한 전환점’으로 보는 것이 성서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사도행전 13장 1-12절까지는 ‘바르나바와 사울’로 표기된다. 그러나 13장 13절부터는 ‘바오로와 그의 일행’으로 기록되며, 이후 예루살렘 사도 회의(사도행전 15장) 등을 거치며 완전히 ‘바오로(사울)와 바르나바’ 순으로 굳어진다. 사도행전 13장 9절에서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이때부터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 대신 이방인 세계에서 통용되는 로마식(그리스식) 이름인 ‘바오로’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