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Ἔλεος)

예수님께서는 호세아서 6장 6절을 인용하시며 “나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마태 9,13;12,7)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마태오 복음에서 두 차례 반복된다.

‘자비’라는 말은 공관복음에 주로 등장하며, 특히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서 두드러진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표현이 직접 나오기보다 ‘사랑’이라는 말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맥락은 분명하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트집 잡으려 할 때였다. 마태오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일을 문제 삼았고, 12장에서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을 비난하였다.

타인의 행동에서 잘못을 보았을 때, 사람은 흔히 두 가지 극단으로 기운다. 하나는 도덕주의(Moralism)이고, 다른 하나는 감상주의(Sentimentalism)이다. 도덕주의는 규범과 규칙을 앞세워 사람을 단죄한다. 반대로 감상주의는 관계의 불편을 피하려다 진리를 흐리게 만든다.

도덕주의는 죄인을 단죄함으로써 사람을 죽이고, 감상주의는 죄를 방치함으로써 결국 사람을 죽인다. 전자는 사랑 없는 진리이고, 후자는 진리 없는 사랑이다.

규범을 앞세워 사람을 밀어내는 태도는 비교적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감상주의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감싸며,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태도 속에 숨어 있다. 그 결과 잘못과 비참함은 직면되지 못한 채 덮여 버린다. 이는 무조건적인 온정주의이며, 때로는 맹목적인 동조에 가깝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자비다. 자비는 한 사람을 그의 비참함, 곧 죄의 진실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단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의 잘못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자비란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태도다. 강하게 몰아붙이지도, 약하게 타협하지도 않으면서 바름을 말하는 일이다. 그래서 자비는 하나의 어려운 예술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3)고 하시고, “너희가 이 뜻을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라고 하신다.

자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이다.

One thought on “자비(Ἔλεος)

  • Asella yun
    2026년 07월 13일 at 3:10 오후

    자비. 삶의 방식. 배워야할 예술. 크~~~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