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메모

그날 나를 씻겨주셨던 재봉 선생님

직원 선생님과 함께 은행에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발이 미끄러지며 그만 진흙탕에 털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1인 인출 한도가 있어 둘이 함께 가야 돈을 많이 찾을 수 있었는데,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선 눈앞의 상황부터 수습해야 했다. 부끄러움을 동력 삼아 벌떡 일어나 가방 속 은행 서류가 젖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나는 집으로 돌아갈 테니 선생님은 은행에 가서 찾으려던 돈을 반이라도 찾아오시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은행보다 먼저 나를 씻겨야 한다고 하셨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플라스틱병에 웅덩이의 물을 담아 와서는, 내 치마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기 시작하셨다. 내가 하겠다고, 먼저 은행에 가시라고 몇 번이나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진흙에 발이 자꾸 미끄러져 혼자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곧장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다. ‘괜찮아요’를 되풀이하며 말렸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발가락 사이까지 정성껏 씻어 주고, 신발도 벗겨 안쪽까지 깨끗이 헹구어 주었다.

그러고는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돈은 다른 사람을 불러서라도 다 찾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가는 길에도 진흙탕이 많으니 천천히 가고, 집에 도착하면 꼭 전화하라고 당부하였다.

가난한 이들을 섬긴다고 이 땅에 왔는데, 정작 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씻김을 받고, 그들이 나를 먹이고, 그들이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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