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가’해(마태 18,15-20)

오늘 말씀의 전례는 공동체 안에서 죄와 허물에 빠진 형제자매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형제의 허물 앞에서 선 나의 태도: ① 회피·직면 ② 비방과 험담·적대감 ③ 형제를 얻으려는 간절함)
오늘 제1독서(에제 33,7-9)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우신다. 악인이 죄를 지을 때 그에게 경고하지 않아 그가 죽는다면, 그 피를 파수꾼에게 물으신다고까지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단죄하라는 뜻이 아니다. 형제가 죄로 인해 죽어가는 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안타까움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잘못을 용감하게 직면하라는 초대의 말씀이다.
제2독서(로마 13,8-10)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형제적 교정의 근본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잘못을 바로잡는 모든 시도는 오직 ‘사랑’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 한다.
오늘 복음(마태 18,15-20)은 잘못을 저지른 형제 앞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은 가장 작은 범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둘만의 자리에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을 데리고 가며,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야 교회 공동체 앞에서 다루게 하신다. 끝내 공동체의 권고마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공동체적 친교는 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영원한 배제나 배척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에게 먼저 다가가셨듯이, 그를 향한 사랑과 회복을 향한 희망은 결코 포기되지 않는다.
이때의 단절과 거리는 냉정한 무관심이나 배척이 아니라, 형제를 잃은 고통에서 비롯된 거리다. 그리하여 그 거리를 메울 기회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언제나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은 형제 하나를 얻기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공동체 한가운데에 친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죄를 지은 형제나 자매를 바로잡아 주는 행위는, 상처 입은 내 자존심을 복구하려는 욕망이나 도덕적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어 굴욕감을 주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직 그 형제나 자매가 내면의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참된 삶과 기쁨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에서 비롯된다. 죄는 언제나 죽음과 함께 깊은 슬픔과 삶의 비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죄인인데 내가 어떻게 남을 고쳐 주겠는가?” 하는 거짓된 겸손이나, “괜히 이야기했다가 관계만 불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안주를 핑계로 형제적 충고를 회피하는 것은, 실상 그 형제의 삶을 방치하려는 포장에 불과할 수 있다.
악을 방관하면 공동체 전체가 상처를 입고, 약한 이들은 악을 선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형제적 교정은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일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거룩함을 지키는 사랑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 모든 교정은 언제나 “형제를 얻기 위한”(마태 18,15) 사랑에서 시작되고 그러한 사랑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죄인을 잃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다시 얻는 것이다. 이것이 형제적 교정의 목적이며,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완성이다.
세상의 불의와 죄악 앞에서 깊이 아파하시며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셨던 성모님, 저희가 오직 성모님의 순결한 눈으로 형제들의 허물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그 형제를 단죄하기보다, 저희가 끝까지 그를 얻고 살리기 위해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얻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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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자 하면서 내심 은근한 도덕적 우월감이나 만족을 느끼지는 않는가?
– 당사자 앞에서는 침묵하면서, 뒤에서는 수군거리고 그 형제를 공동체 안에서 매장하려 들지는 않는가?
– 나는 죄를 지은 형제나 자매를 반드시 구해내야 할 ‘귀중한 보물’로 여기는가?
–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도 그가 회개하고 회복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 마태 18,15-20(연중 제23주일 ‘가’해)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