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가’해(마태 16,21-27)

오늘 말씀의 전례는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나는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사람의 일’(세상)만을 안절부절못하며 좇고 있는가, 아니면 어떠한 순간에도 ‘하느님의 일’(사랑)을 선택하려 하는가?” (*열쇳말: ① 사람의 일·하느님의 일 ② 자기를 버림·십자가 지기·예수님 뒤를 따름 ③ 목숨: 잃다·구하다·얻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세상의 조롱과 치욕의 대상이 되어 극심한

연중 제21주일 ‘가’해(마태 16,13-20)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듣는 말씀들은 ‘열쇠’라는 이미지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제1독서에서는 엘야킴에게 “다윗 집안의 열쇠”가 맡겨지고,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제2독서는 ‘열쇠’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게 맡겨진 모든 권한과 사명의 궁극적인 근원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혀준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기” 때문이다. 제1독서(이사 22,19-23)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연중 제20주일 ‘가’해(마태 15,21-28)

오늘 말씀의 전례는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곧, 하느님께서는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선인이든 악인이든 당신께 나아오는 이라면 모든 이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이다. 4복음서에는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하시며 예수님께서 특별히 믿음을 칭찬하신 장면들이 등장한다. 카파르나움의 백인대장(마태 8,10), 죄 많은 여인(루카 7,50), 하혈병을 앓던

연중 제19주일 ‘가’해(마태 14,22-33)

오늘 말씀의 전례는 인간의 두려움과 그 두려움 앞에 다가오시는 주님의 예상치 못한 현존,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그 주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하나로 보여준다. 제1독서(1열왕 19,9ㄱ.11-13ㄱ): 기원전 9세기의 엘리야는 바알 예언자들을 상대로 갈멜 산에서 승리한 이후 오히려 죽음의 위협을 맞고, 광야로 도망쳐 동굴에 숨는다. 극도의 탈진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연중 제17주일 ‘가’해(마태 13,44-52)

제1독서의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얻은 이는 복음에서 하늘 나라의 신비를 깨우친 이들이다. 이 신비는 제2독서가 말하는 부르심을 받고, 미리 뽑히고, 미리 정해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성취이다. 제1독서(1열왕 3,5-6ㄱ.7-12)에서는 솔로몬 왕(대략 기원전 990년~931년경)의 꿈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꿈에서 주 하느님께 장수長壽나 부富,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 않고 분별력인 “듣는 마음”을 주시라고 청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꼭 드는 “지혜롭고

연중 제16주일 ‘가’해(마태 13,24-43)

제1독서(지혜 12,13.16-19)는 만물을 돌보시는 하느님, 정의의 원천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과 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그분께서는 무엇이든 원하시는 때에 이루실 능력을 지니셨지만, 억누르기보다 관대하게 통솔하시고, 인자仁慈하심을 체험하게 하시며, 마침내 회개의 기회를 열어 주시는 희망의 하느님이시다. 제2독서(로마 8,26-27)에서 바오로 사도는 두 절밖에 안 되는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의 나약함 한가운데에서 일하시는 성령을 증언한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우시며, 말로

연중 제15주일 ‘가’해(마태 13,1-23)

오늘 전례의 말씀은 한 가지 흐름, 곧 ‘희망’이라는 주제로 서로 이어져 있다. 제1독서는 씨앗이 반드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희망을 노래하고, 제2독서는 피조물과 함께 우리가 기다리는 자유,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희망을 전해준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이 희망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신다. 제1독서(이사 55,10-11)에서 주님께서는 비와 눈이 땅을 적셔 씨 뿌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 ‘가’해(요한 20,19-23)

부활 대축일과 함께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에서 거행해 온 가장 성대한 축일이자 가장 오래된 축일이다. 오늘 교회는 전례력으로 부활 시기를 마감하며 교회 공동체의 탄생(the birthday of the Church)을 경축한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점으로 탄생한 교회 공동체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공동체로서 이제 두려움과 실망 속에서 문 뒤에 숨어 있던 공동체를 벗어나, 서로의 아픔과 상처들을 드러내놓는 공동체가 되며,

부활 제3주일 ‘가’해(루카 24,13-35)

루카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만난 이야기를 복음의 마지막 장에 배치한다. 이는 이 이야기를 자기 복음의 결론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본인이 기록한 또 다른 책, 곧 사도행전의 도입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루카가 나자렛 예수를 두고 기록한 소위 복음 전체의 종합이요 예수님을 통한 구원 역사 전체의 결론을 대면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해(마태 26,14-27,66)

예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성주간聖週間’이라고 한다. 성주간 동안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준다. 따라서 교회 전례에서 성주간은 전례의 정점을 이루며, 가장 거룩한 시기이다. 성주간을 지내는 관습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3세기 무렵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까지 3일 동안을 성주간으로 지냈는데 지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