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마태 24,42;25,13;26,38 마르13,35.37;14,34) 하고 명하셨다. 또한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마르 14,38 루카 21,36) 하시며, “깨어 지켜라”(마르 13,33)고도 하셨다. 제자들이 깨어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셨고(마태 26,40 마르 14,37), 깨어 있는 종들의 행복을(루카 12,37)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반복하여 “깨어 있어라” 하신 까닭은 문맥에 따라 여러 층위로 드러난다. 첫째, 주인이 언제 올지

박해와 미움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겪게 될 세상의 미움과 ‘박해’에 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일찍이 산상설교에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고 하셨고,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24,9 마르 13,13 루카 21,17)라고 제자들에게 분명히 일러주셨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겪는 박해를 자신의 삶으로

그리스도왕께 드리는 기도

저의 임금이신 주님, 당신께서 정말 제 삶의 주인이시고 임금이십니까? 임금이시라면, 그 말이 제 생각과 말과 행동, 곧 제 존재 전체가 당신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주님, 제가 당신을 통하여 생겨났습니다. 당신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그리스도왕)

마음의 평화를 우리 마음 안에 구축하기 위한 4가지 구체적인 방법 성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께서는 사도 순방을 위해 1986년 11월 23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을 방문하신 바 있다. 그날은 마침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었는데,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시면서 강론을 통해 이날 전례의 핵심 주제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가 곧 평화의 핵심(Peace of heart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갈등과 폭력이 들끓는 세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요한복음 8장 2-11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소란이 일었다. 한 무리가 분노에 들끓어 한 여인을 끌고 왔다. 그녀는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내던지며 외쳤다. “모세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미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한 인간이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루카복음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루카 18,9-14)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질을 가르치신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기도 같지만 ‘기도가 아닌 기도’, 그리고 ‘참다운 기도’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① 말이 많은 기도: 입술만 바쁘다. 이는 하느님을 설득하려는 시도일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자기 확신을 되뇌는 독백이 되어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주님께서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하셨다.

이상한 주인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6.37)」 복음은 준비하는 종들, 기다리는 종들, 깨어 있는 종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복음에는 뜻밖의 반전이 있다. 집에 돌아온 주인이 오히려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종들을 시중드는 놀라운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가 모시는 주인은 밖에서 돌아와 문을

앎·지식

“앎·지식”은 교육, 학습, 경험 등을 통해 얻은 무엇인가에 관한 앎이다. 그런데 지식에는 실제로 알지 못하면서도 알고 있는 듯 착각하거나 ‘~척’하는 건너편의 지식, 남에게 팔아 돈을 벌기 위한 지식,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무기가 되는 지식 등이 있다.(*참고. 김건중, 지식답지 않은 지식, 경향신문, 2006년 9월 15일) 이들은 성경의 언어로 “사이비 지식의 속된 망언과 반론들”(1티모 6,20; ψευδωνύμου

고통

고통은 두 가지 얼굴로 다가온다. 하나는 몸을 찢는 외상의 고통, 다른 하나는 마음을 가르는 내상의 고통이다. 몸의 고통은 눈으로 볼 수 있다. 깁스에 싸인 다리, 붕대에 감긴 손, 그 상처는 시간의 손길을 통해 서서히 아물어간다. 사람은 그 고통을 받아들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위안을 붙든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다르다. 보이지 않기에 더 깊고, 말해지지 않기에 더

고통 중에서도 감사할 이유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은 감사하는 존재다. 우리는 누리는 생명에 감사하고, 창조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눈에 감사하며,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에 감사한다.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감사한다. 그리스도인이 항상 감사하는 이유는, 단지 고난이 지나가고 좋은 일이 생기며 더 나은 시기가 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느님께서 좋으신 분이시며, 사랑 그 자체이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