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넉 사四)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1961~)는 숫자 1이 광물이고, 2가 식물이라면서 「3은 동물이다. 두 개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은 땅도 사랑하고 하늘도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다. 동물에게는 두려움 따위의 감정과 욕구가 있을 뿐이다. 두 개의 곡선은 두 개의 입이다. 하나가 물어뜯는 입이라면, 다른 하나는 입맞춤하는 입이다. 4는 인간이다. 이 숫자에는 시련과 선택의 갈림길을 뜻하는 교차점이

거룩한 독서, 어떻게 하는가?

읽기와 묵상의 실제 이 글은 ‘거룩한 독서’의 4단계 중 특별히 <거룩한 독서 ‘읽기’와 ‘묵상’의 실제>를 아름답고 체계적으로 서술하여 주신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 이연학 신부님의 글이다.(이연학, 성경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 성서와함께, 2010년 6쇄, 39-52쪽) 루카 10,38-42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시다> (38)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아름다운 사마리아 사람

루카 10,25-37의 거룩한 독서(이연학 신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역시 그 아름다움이나 깊이에서 참으로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각도에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먼저 성령의 비추심을 청하며 본문을 주의 깊게, 사랑에 찬 시선으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우선 본문 전체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께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께서 반문으로

성덕聖德과 성화聖化의 길

부부로 오랫동안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곧잘 “사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운 정 고운 정 ‘정’으로 살고, ‘웬수’같은 질긴 인연으로 헤어지지 못해 산다.”라고 말한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이가 사랑해서 결혼하고 인생의 반려가 되었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랑이 깊어간다기보다는 시들해져 간다고 말하면서 옛 시절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산다. 수도생활도 그렇다. 어리고 젊은 나이에

요한복음의 일곱

요한 복음사가가 의도하였든 그러지 아니하였든, 공교롭게도 ‘일곱’이라는 숫자와 그에 따른 내용은 요한복음 전체를 개관하는 중요한 열쇳말이 된다. 교회의 교부들에 의하면 “일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하늘과 동서남북이라는 땅이 결합한 완전수이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1-14은 갈릴래아 바닷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나타나신 이야기를 전한다. 베드로와 여섯 명의 다른 사도들이 배에 타고 있었다. 배를 탄 베드로와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고, 바로 그다음 날 이어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의무 기념일로 지낸다. 성체성사와 예수 성심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예수 성심을 기리는 이들이라면, 예수 성심을 평생 동반했던 성모님의 성심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황 비오 9세께서 예수 성심 대축일을 온

세리 마태오의 복음과 세리의 언어

마태오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야기와 열두 사도의 명단을 전하면서 유독 마태오의 이름 앞에만 “세리 마태오”라고 하면서 “세리”라고 하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직업명을 붙여 놓는다.(참조. 마태 10,1-4) 당시 세리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동족의 피를 쥐어짜 로마 제국을 섬기고 그 대가를 받아먹고 사는 못된 이었고, ‘공공의 적敵’이었다. 그러한 세리 출신 마태오가 기록한 복음이라는 전제

잘못·허물·빚·품삯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라고 기도하라 하신다.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우리말 번역 “잘못”을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라고 하시면서 “잘못”을 “허물”이라는 말로 바꾸며 강조하듯

정련精練·창조적인 불안·의심

우리가 삶의 의미에 무관심할수록 생활 수단에 탐욕스러워집니다. 확신이 없을수록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커집니다. 인정받지 못할수록 갈채를 원하고, 소명을 알지 못할수록 권력욕이 자랍니다. 하느님이 선물로 준 재능을 알지 못할수록 눈에 보이는 능력을 더 탐합니다. 이런 탐욕 가운데 인간은 정련을 거부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고통에 무덤덤해집니다.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헛되이 껍데기를 구합니다. 외적인 것을

삼위일체의 신비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4대 교리는 천주존재天主存在, 삼위일체三位一體, 강생구속降生救贖,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그중 삼위일체는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이시면서도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분명한 내용이면서도 인간의 이성이나 말로 논증하거나 설명할 수 없어 신비이다. 신비는 몸으로 배워 알고, 고백하며, 찬미하는 믿음이다. 신앙 고백 그리스도인의 「첫 ‘신앙 고백’은 세례 때에 이루어진다. ‘신경’은 무엇보다도 세례 신앙의 고백이다. 세례는 “아버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