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루카 24,15) 「함께 걷는다는 것은 날줄 씨줄처럼 함께 엮여 한 옷감이 되듯이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통의 존엄성에서 출발하는 것 서로에게 겁을 주거나 뭉개지 않고 서로 옆에 있는 이를 인내하며 옆에서 함께 걷는 것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사랑과 인내로 서로를 들으면서 함께 한 방향을 향해,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7년 3월 21일 그의 거처인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드린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아침 미사(제1독서: 다니 3,25.34-43 복음: 마태 18,21-35)에서 우리 모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은총(수치심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면서 묵상을 나눴다. 이 묵상은 3월 31일자 교황청 기관지인 L’Osservatore Romano 영어판에도 실렸는데, 한국말 번역과 영어본을 게재한다. 보도문으로 실린 내용을 첨삭하고 재구성하여 교황님의 강론처럼 번역했다. 그리고
「‘구름’은 신비 속에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그분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분을 숨기는 것이다. 사도들의 눈에서 그리스도를 감추는 사도행전의 그 구름은(참조. 사도 1,9), 히브리인들을 사막에서 인도한 구름이요, 계약궤 위에 머무른 구름, 예수님의 세례 때 아버지의 음성을 들려주었던 구름, 타볼산에서의 변모의 구름, 역사의 마지막에 산 자와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그리스도가 타고 오실 구름이다. 성경의
페드로 아루페Pedro Arrupe y Gondra, SJ(1907~1991년)는 스페인 출신 사제로서 예수회 총장을 역임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예수회를 전면 쇄신하면서 예수회에서는 제2의 이냐시오 성인이라고까지 생각하는 분이다. 1926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같은 해 여름 루르드 순례를 다녀왔으며, 이 체험은 그의 앞날에 대한 기초가 되었다. 1927년 예수회에 입회했고, 1936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45년 히로시마에서 수련장으로 일할 때
「“광야”는 광야의 사람인 세례자 요한과 그의 의식주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의 길을 닦기”(이사 40,3) 위해 본질적인 것만을 들어야 하는 자리이다. 광야는 바위, 돌, 거친 관목들, 파충류, 메마름, 야수 같은 것들이 횡행하는 곳이다. 4세기에 사막의 교부들이 마귀들과 싸우러 나간다고 했던 광야는 분명한 진실을 뒤엎으려는 거짓이 드러나는 자리이고, 불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이기심이 드러나는 자리이며, 예수님의 이름을
바오로 사도께서는 전통적으로 필리피서, 콜로새서, 필레몬서와 함께 ‘옥중 서간’이라고 불리는 에페소서(총 6장)의 마지막 부분을 “영적 투쟁”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하면서 전쟁터에서 무장한 전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이는 오늘날 “악마의 간계”(에페 6,11) 아래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삶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거듭 읽어야 하는 대목이다. 영적 투쟁이 벌어지는 곳, 마음 영적 투쟁이 벌어지는 곳은 정확히 말해서
이 세상이라는 극장, 한낮에 무대가 마련되고 많은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각자 자기의 배역을 연기하면서 옛이야기를 다시 하고 사건을 연출한다. 어떤 이는 철학자가 아니면서도 철학자가 되고, 어떤 이는 왕이 아니면서도 이야기를 위해 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떤 이는 나무 한 조각을 다룰 줄도 모르면서 의사가 되어 의사 가운을 걸친다. 어떤 이는 자유인이면서도 노예가 되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 희년은 인간과 지구를 위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꿈 안에서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회개”라는 말이 방향의 전환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우리의 발걸음이 새로운 목표들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렇게 절대 실망하지 않는 희망이 생겨납니다. 성경은 이에 관해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
성경 구절이나 성인들의 저작물은 때로 우리를 놀라게 하다 못해 두려워하게까지 한다. 그런 내용은 우리를 치고 때린다. 어떨 때는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계시고 (반드시) 일을 내시고야 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흔드시는(unsettled by the living and effective word of the risen Lord)” 것이다. 12월 3일에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년)의 편지 또한
교회의 역사는 노인의 경험과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각들이 어우러지는 지혜를 추구한다. ‘할배, 할아범’ 등으로 부르는 할아버지는 ‘크다’는 뜻의 ‘한’을 붙인 ‘한아비’라는 말에서 왔다. ‘할미, 한미, 할마니, 할멈, 할맘, 할매’로 불리는 할머니 역시 ‘크다’는 뜻의 ‘한’을 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를 넘어 분명 그보다 더 ‘큰’ 분들이시다. 두 분을 함께 부를 때는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하듯이 엄마가 먼저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