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태 13,1-9)를 말씀하시고 이를 몸소 설명(마태 13,18-23) 하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모든 비유의 어머니’ 격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못된 자식이든 좋은 자식이든 사랑하지 않는 법이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는 비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 좋은 씨앗이요 풍성한 열매를 담고 있는 씨앗이자 열매를 맺지 않는 법이 없으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길이든, 돌밭이든,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예레 3,15)라는 성경 구절로 시작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1992년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이라는 문헌이 있다. 이 문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사제 양성에서 사제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목자들이 되게 하도록 고려할 여러 영역을 거론하신다. 사제로 양성 받는 이들은 적어도 「human(인간 교육: 모든 사제 양성의 기초),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예수님

열두 명의 사도들로 기초 공동체를 결성하시고 제자들을 공들여 양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러저러한 당부와 함께 권한을 부여하시고 파견하시면서(참조. 마르 6,7-13와 병행구),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 루카 10,3) 하신다. 파견된 제자들과 성령 안에서 당신 권위로 늘 함께하실 것이면서도 제자들을 무척 염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몸소 그렇게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나저제나 제자들이 성공적인

비둘기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예수님께서 “보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하신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염려하여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사나운 “이리 떼 가운데 있는 양”과도 같은 제자들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성경의 언어에서 뱀은 “간교한” 꾀와 지혜의 상징(참조. 창세 3,1 마태 3,7;23,33 묵시 12,9)이었으므로 제자들을

사랑과 소명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8 루카 10,2) 하신다. 주님의 일꾼들을 자처하는 이들은 회심과 선교라는 두 축 사이의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주님을 만난 감격이 회심이라면 그 회심은 결코 그대로 머물 수 없어서 누구에게라도 그 감격을 전하려는 선교의 열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느님을 만난 체험과 그에 빠져든 사랑, 그 체험과 사랑이 분출되는 기쁨과 소명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느님의 손가락

아론이 땅의 먼지로 모기들을 만들었을 때, 그에 대적하던 파라오의 요술사들도 그렇게 하려 하였으나 하지 못한 뒤에, 요술사들은 아론의 일이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탈출 8,15)이라 변명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은 아무도 대적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탈출 31,18) 이처럼 하느님의

영적 독서의 10가지 축복

*글쓴이-에드 브룸Ed Broom 신부(동정 성모의 오블라티 수도회 OMV) 영적 진보를 위하여 우리는 수단과 방법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을 활용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성화와 온 세상의 성화를 진지하게 추구하라고 부르셨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주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정확하다. 군인은 장비를 잘 갖추고 무장을 잘해야 한다.

완성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하신다. 주님께서 내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완성해가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 안에 쉬기까지 불완전체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영혼이 꿈꾸는 “완성”은 무엇이며, 주님께서 꿈꾸시는 “완성”은 무엇일까? 바오로 사도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8.10)이라 하셨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께서는 “사랑의 완성은

하느님의 섭리攝理

누군가가 “하느님의 섭리는 우연의 모의謀議(꾀할 모, 의논할 의)”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영이 맑은 사람들은 우연과 우연 속에서 필연을 경험하고, 하느님의 섭리를 느낄 때가 많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의 삶 안에 우연처럼 필연을 엮어놓으시고 사람들과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싶어 하시는지도 모른다. ‘섭리攝理’라는 한자 말의 ‘섭’은 다스릴, 당길, 잡을 ‘섭’이라 하는데, 손 ‘수(扌)’가 옆에 붙어있고 귀 ‘이(耳)’라는

믿음 자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8,25)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미국의 예수회 신부로서 시인이자 평화운동가로도 알려진 다니엘 베리건Daniel Berrigan(1921~2016년) 역시 “진정한 당신의 믿음 자리는 어디입니까?“(Where does your faith reside, where’s its real seat?)”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질문에 “믿음이란 머리에도, 또 가슴에도 있는 경우가 거의 드뭅니다. 믿음은 엉덩이에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