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를 목자라고 부르면서 “잃은 양”(마태 18,12-14 루카 15,3-7)을 들먹이며 자신은 길을 잃은 불쌍한 양이니 사제인 당신은 끝까지 나를 찾고 붙들어줘야 할 것인데도 왜 울타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에만 정신이 팔려있느냐고 ‘들이대는’ 신자들을 지금까지 여럿 만났다. 그런 이들 앞에 서면 할 말이 없어져 괜히 고개가 숙어진다. 혹 어떤 신자가 결국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면서도 마을의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6) 새해 첫날이나 설날 아침 미사의 독서에서도 듣는 이 축복의 말씀은 무엇보다도 평화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백성이 드리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임을 보여준다. “주 하느님 말씀을 내 듣고 싶사오니, 정녕 평화를 말씀하시나이다 당신의 백성과 성도들에게, 그 마음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게.”(시편 84,9 최민순 역) 하시는 말씀 그대로
유다인의 역사 안에 많은 예언자가 있었으나 그 중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활약한 예언자들로 이사야(기원전 745~695년 50년간 활동), 예레미야(기원전 627~586년 40년간 활동), 에제키엘(대략 기원전 593년~기원전 571년 활동, 560년경 사망)과 같은 예언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엇나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당신을 향한 믿음을 절대 잃어서는 안 되고, 그래야만 죽지 않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 요한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 한 뒤, “어디 묵고 계시냐”며 당신을 따라오는 그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와서 보아라.” 하셨으며,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요한 1,39)라고 하였고, 그렇게 제자가 된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요한 1,46)라고 복음서의 1장을 기록한다. 그렇게 첫 제자
후배 신부가 예수님께서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제자들과의 공개적인 식탁에서 말씀하시고, 실제로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요한 13,26) 하였는데도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한 13,28)라는 구절에 관하여 질문을 제기했다. 공공연하게 유다를 지목하셨는데도 제자들이 유다의 배반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사랑 깊은 마음을 더욱 깊이 상처 내는 것은, 이 마음 때문에 상처받은 다른 마음을 보는 일이다. 펠리칸pelican은 둥지를 땅속에 만든다. 그래서 가끔 뱀이 새끼를 물기도 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펠리칸은 능숙한 자연의 의사처럼 주둥이 끝으로 불쌍한 새끼의 온몸을 상처 내서 독을 나오게 하도록 온몸의 피를 흘리게 한다. 이렇게 해서 그 애처로운 새끼 펠리칸들을 죽게 한다.(펠리간의
매일 아침 드리는 성무일도서의 기도문을 읽다가 만난 한 구절에 눈이 멈춘다. 『나는 “내 한평생이 반 고비에서 떠나고 남은 햇수는 저승 문 앞에서 지내게 되었노라”고 말했도다.』 하는 제2주간 화요일 성무일도 아침기도나 위령 성무일도, 성토요일 아침기도 등에서 만나는 구절이다. 몇십 년을 두고 드린 기도 구절이지만 ‘반 고비’가 무슨 뜻일까?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읊조린 구절이어도 그 단어의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깊은 열망을 보시고,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며, 우리를 위한 배려를 멈추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신다. 행여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두려워해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들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만을 골라 언제나 풍성하게 베풀어주신다. 사무엘기 상권은 이러한 우리의 갈망, 경청,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다.”(탈출 24,16)라는 기록이 담긴 탈출기 24장은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1. 세 제자 이 세 사람을 올리브 동산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참조. 마르 14,33) 거룩한 변모와 올리브 동산에서 번민 중에 기도드리는 장면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서로
우리 인생과 세상살이 동안 주변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 먹고, 살며, 사랑하는 것들을 그것들이 지닌 본래의 고유한 기원과 연결 짓는 것이 중요하다. 먹는 것이 단순한 음식이나 영양의 섭취가 아니고,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그저 처세요 살아가는 요령이 아니며, 사람들이 만나 사랑하는 것은 그저 외롭지 않으려는 방편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거룩한 의례요 종교 행위이다. 그 뿌리가 거룩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