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투신하지 못하는 이유

사람들은 선택과 선택의 연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선택은 선택을 제외한 다른 것들의 배제요 포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택하고 나서도 욕심이 많아서 배제하고 포기한 것들에로 자꾸 눈길을 주며 호시탐탐 넘어다 본다. 그뿐만 아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도 자기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선택의 의미와 그 선택이 주는 의미의 크기를 실감하거나 가늠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값비싼 나르드 향유

예수님 생애에 일대 스캔들이라 할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 어떤 머리 긴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값비싼 향유를 통째로 부어 예수님 발을 닦아드리고, 울면서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 발을 닦아드렸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겼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를 개의치 않으신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사랑으로 준비한 행위였다고 말씀하신다.(참조. 마르 14,3-9 마태

사회 정의

사회 정의는 소위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어떻게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들은 누구일까? 표준어보다는 사투리를 거칠게 쓰는 사람들, 맵시 있게 차려입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몸을 가린 사람들, 곱게 차려입고 주일에 교회나 성당에 가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로 안달이 나서 점집이나 삼신 할매를 먼저 찾는 사람들, 작품이나 예술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장바닥에 내다 팔

3가지 화살표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만,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만, 편한 길로만, 그렇게 골고타를 오르려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신호등의 화살표와 깜빡이 같은 기본 신호들은 다음 3가지이다. 1) ‘환대’라는 화살표: 대단히 어려운 U-턴을 요구하는 화살표이다. 그러나 마음의 길에서는 어김없이 직진 신호를 내리는 명령어요 십자가이다. 형제를 선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형제가

예언자

다른 복음사가들이 제자들의 부르심을 예수님 공생활의 첫 장면으로 삼는 것에 비겨 루카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의 장면을 고향 나자렛의 회당으로 기술한다. 여기에는 루카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루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위해 일단 당신이 살았던 나자렛이라는 곳으로 가신다. 그리고 회당에 들어가 예언서를 받아들고 한 대목을 읽으신 다음, 예언이 지금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을 장엄하게 선포하시고,

예수님의 마음 알기 · 형제적인 나눔 · 기쁨에 찬 선교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수도회의 제26차 총회를 위해 여기 모이신 총장님과 여러분 모두에게 인사드립니다. 1854년 12월 8일 쥴 슈발리에Jules Chevalier 신부님(1824~1907년)께서는 프랑스 이수둔Issudun에서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i Missionari del Sacro Cuore di Gesù)’를 설립하셨고, 그 뒤를 이어 ‘예수 성심 어머니 딸회(Figlie di Nostra Signora del Sacro Cuore)’, ‘예수 성심 전교

감사

어떤 행동이 악에 대항하고 선을 도모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그 행위의 성격이 감사라는 특성을 보이는지 아닌지로 식별할 수 있다. 뭔가를 가시적인 성공 없이도 견뎌내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만 한다. 감사는 치유에서 비롯되고, 분노는 상처에서 비롯된다. 감사는 나눔의 추구이고 분노는 소유의 추구이다. 그런 의미로 감사는 아픔을 안고서도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감사하는 삶은 누군가와 공감하고 눈빛만으로도 연민을 나눈다.

예수님께서 만난 여성들

유다교의 배경 안에서만 바라본다면, 예수님께서 당시의 여성들을 대하시는 모습은 가히 파격적이고 몹시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여성들을 만나셨는지에 관한 내용을 풍부하게 기록해준다: 남편 잃고 아들만 믿고 살다가 아들을 잃고 슬피 울던 과부를 가엾이 여긴 예수님께서는 그 아들을 되살려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참조. 루카 7,11-17) 오빠가 죽게 생기자 급하게 연락해온 두 자매의 슬픔에 서둘러 일정을 조정하신

의탁의 기도(성 샤를르 드 푸코)

아버지, 당신 손에 저를 내어 맡기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어찌하시든 감사드리니 저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이다. 제 안에, 그리고 당신의 모든 피조물 안에 오직 당신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저는 오로지 이것만을 바라나이다.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다시 드리오니 제 온 마음 사랑으로 그리하나이다. 주님, 저를 당신께 드리고 싶사오니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니이다. 저를 온전히, 한없는 신뢰로,

축복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고자 하셨을 때,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 3,17 마르 1,11 루카 3,22)이라는 말씀이 들렸다고 공관복음은 공통으로 전한다. 예수님께 이 말씀이 들렸던 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말씀이 들려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방황하며 허덕이는 것은 축복이 부족해서이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그 아이들이 충분한 축복을 받지 못해서이다. 우리는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