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만난 여성들

유다교의 배경 안에서만 바라본다면, 예수님께서 당시의 여성들을 대하시는 모습은 가히 파격적이고 몹시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여성들을 만나셨는지에 관한 내용을 풍부하게 기록해준다: 남편 잃고 아들만 믿고 살다가 아들을 잃고 슬피 울던 과부를 가엾이 여긴 예수님께서는 그 아들을 되살려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참조. 루카 7,11-17) 오빠가 죽게 생기자 급하게 연락해온 두 자매의 슬픔에 서둘러 일정을 조정하신

의탁의 기도(성 샤를르 드 푸코)

아버지, 당신 손에 저를 내어 맡기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어찌하시든 감사드리니 저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이다. 제 안에, 그리고 당신의 모든 피조물 안에 오직 당신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저는 오로지 이것만을 바라나이다. 당신 손에 제 영혼을 다시 드리오니 제 온 마음 사랑으로 그리하나이다. 주님, 저를 당신께 드리고 싶사오니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니이다. 저를 온전히, 한없는 신뢰로,

축복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고자 하셨을 때,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 3,17 마르 1,11 루카 3,22)이라는 말씀이 들렸다고 공관복음은 공통으로 전한다. 예수님께 이 말씀이 들렸던 것은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말씀이 들려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방황하며 허덕이는 것은 축복이 부족해서이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그 아이들이 충분한 축복을 받지 못해서이다. 우리는 우리가

단순單純(simplicity)

하느님 앞에 나아감 : 주님, 갈라짐이나 거짓이 없는 단순, 단일한 마음,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당신께 나아가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묵상 : 단순은 성실과 매우 흡사한 덕이다. 단순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초이고, 완전하게 될 때 인간의 윤리적 삶 전체를 아우르고 통합하여 하나가 되게 한다. 단순은 이기주의나 자기애,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이나 피조물에 얽매이는 그 어떤 이중성이나 복잡함도

고기잡이 기적-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질문 세 가지

그리스도인이 이루는 공동체 생활의 세 가지 요체는 기도하는 공동체, 사목하는 공동체, 형제적인 공동체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하고, 가난한 이가 되어야 하며, 이웃과 형제자매가 되어 윤리적으로 선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매일 기도하는가? 가난한 사람이 되었는가? 함께 사는 형제자매들과 착하게 서로 위하며 사는가? 이런 질문들을 매일 되묻는다. 이 세 질문 위에 매일의 삶이

10가지 죄스러운 혀

*번역글(20200916, 몬시뇰 찰스 포프Charles Pope의 글) 그림은 구글에서 ‘Bite Your Tongue’라는 주제로 검색하여 얻었으며, 글의 기본 출처는http://blog.adw.org/2020/09/bite-your-tongue-a-reflection-on-common-sins-of-speech-2/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590~604년 재위)께서는 사목 지침의 서두 부분에서 『영적 지도자는 식별해야 할 때 침묵하고, 도움이 될 때 말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을 자제할 수 있는 은총은 아주 귀하고 드물게 얻는 은총이고, 대개는 인생의 종반부에나 얻어진다. 우리가 흔히 짓는 죄들은 가십, 쓸데없는 잡담, 거짓말, 허풍, 공격적인 말, 아름답지 않은 말과 같이 말들과 관련이

광대

이 세상을 한 판의 거대한 서커스장이라고 하자. 이 서커스장에는 스타들도 있고 광대들도 있다. 이 서커스 판에서 중심은 당연히 명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아내는 스타들임이 틀림없다. 반면에 광대들은 무대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그들은 스타들 사이에 막간을 통해 등장하고 실수와 떠듬거리는 말 짓, 몸짓으로 우리를 몇 번이고 웃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광대들은 스타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연기 때문에

홀로 꾸는 꿈은 많은 경우에 꿈 그대로 남거나 허상, 망상, 상상, 공상, 환상으로 남는다. 그러나 누군가와 그 꿈을 나누면 많은 경우에 그 꿈은 현실이 된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도 꿈을 나누면서 실제로 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며 친구인 돈 보스코 역시 수많은 아이와 꿈을 나누면서 오늘날의 살레시오회가 있게 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산상설교(5-7장)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보고 알았으며 지켜낸 사람들

그 어느 순교자들이나 성인의 이야기를 읽고 듣더라도 숙연해진다. 그들의 영웅적인 삶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나 성령으로만 가능한 하느님의 손길이고, 하느님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은총을 떠나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그들을 보자면, 그들은 무엇인가를 보고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알았던 것을 자기 몸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를, 올곧음과 꼿꼿함으로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이었다. 과연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