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흗날의 여인이신 성모님

이미지 출처-https://www.acsss.it/

‘가경자’이신 안토니오 벨로(Antonio Bello, 애칭 토니노, 1935~1993년) 주교님이 성모님께 남긴 기도문 중에 성모님을 ‘사흗날(셋째 날)의 성모님’이라 호칭하며 드린 아름다운 기도문이 있다. 주교님은 이탈리아 분으로서 그분의 거룩한 삶을 기려 교회가 2007년에 공식적인 시복·시성 절차에 들어갔다.

그는 교회가 ‘앞치마 교회(the Church of the apron)’라고 불리기를 꿈꾸었다. 주교님께서 이렇게 독특한 듯한 용어의 교회상을 그린 것은 예수님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요한 13,4)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두르신 수건이 바로 오늘날로 치자면 앞치마로서 예수님을 가장 예수님답게 보여주는 고유 복장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해지려는 의지의 상징으로, 주교로서는 드물게 나무로 만든 가슴 십자가를 착용했으며, 1990년대 초에는 걸프 전쟁에 대해 거침없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다. 주교님의 우리말 번역 저술로는 <성모님과 함께 하는 31일 기도(개정판, 바오로딸, 2019년)>, 그리고 <아버지 성 요셉(바오로딸, 2021년, 119-149쪽)>에서 부분적으로 볼 수 있다. ※뒤에 언급한 도서 중에서 벨로 주교의 성 요셉께 드리는 편지는 해당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다음은 위에 언급한 주교님의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문 번역본과 원문이다:

「“성모 마리아, ‘사흗날의 여인이시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희에게 죽음이 더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리라 믿나이다. 사람들이 겪는 불의는 끝이 보이고, 전쟁의 화염은 황혼 속으로 사라지며,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멈추리라 믿나이다. 폭력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모든 희생자의 눈물이 봄볕의 햇살 아래 이슬처럼 어서 말라 버리게 하소서.(Santa Maria, donna del terzo giorno, facci capire che, nonostante tutto, la morte non avrà più vanto su di noi; que le ingiustizie dei popoli hanno i giorni contati; che i bagliori delle guerre stanno spegnendosi nel crepuscolo; che le sofferenze dei poveri sono agli sgoccioli. E fa’ che le lacrime di tutte le vittime della violenza e del dolore possano presto asciugarsi, come la brina sotto il sole di primavera.)”<Maria, donna dei nostri giorni(마리아, 우리 시대의 여인)>」

이 기도문에서 벨로 주교가 성모님을 ‘사흗날의 여인’이라고 부른 데에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마태 27,63 마르 8,31;9,31;10,34 루카 9,22;18,33;24,7.46)이라는 복음의 표현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부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는 또한 성삼일 중, 제자들마저 흩어진 뒤 예수님 곁에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홀로 계셨던 성 토요일의 성모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토니노 주교는 성 금요일(첫째 날)의 절망과 성 토요일(둘째 날)의 침묵을 지나, 부활의 셋째 날을 굳건히 믿고 기다렸던 마리아의 ‘희망’을 노래하며 이 기도문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벨로 주교님은 성모님을 파스카의 여인으로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쓴다: 「… 마치 아들의 파스카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 복음서는 두 곳에서 마리아와 관련하여 ‘사흗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부활을 암시할 수 있다. 성 루카는 열두 살 난 예수를 성전에서 잃은 후 ‘사흘 뒤에야’ 다시 찾았다고 묘사한다. 몇몇 학자들은 이 일화를, 지상의 삶을 마치고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 예루설렘에서 맞이하는 파스카 사건에 대한 감추어진 예언으로 해석한다. 어린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는 성인 예수가 돌무덤 뒤로 사라졌다가 사흘 만에 영광에 싸여 다시 나타나게 됨을 비유적으로 암시한다.

성 요한은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서 ‘사흗날’을 언급한다. 에수의 ‘때’를 예감한 마리아의 중재는 인간이 베푸는 잔치에 새로운 파스카 계약의 포도주를 소개하며 부활의 ‘영광’를 앞당겨 맛보게 한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사흗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 일화를 소개한다. 이처럼 마리아는 ‘사흗날’에 깊이 관련되어 있어 부활날 처음 태어난 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 부활의 어머니이기도 하다.(안토니오 벨로, 성모님과 함께하는 31일 기도, 바오로딸, 2024년 4쇄, 161-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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