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미움과 박해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세상”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 안에서 살아갈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빛”(참조. 마태 5,13-14)이라 하시고,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마태 13,22 마르 4,19)이 말씀의 숨을 막는다고 하셨으며,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마르 8,36 루카 9,31) 하셨다. 또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마태 18,7)을 한탄하셨으며,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하셨고, “세상 모든 민족들이 가슴을 치는”(참조. 마태 24,30) 날을 볼 것이라 하셨으며,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도 하셨다.
이에 더하여 요한 복음사가는 복음의 첫 장에서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라고 하더니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세상에 외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라고 세상에 기쁨을 알려주는 요한복음은 “세상의 구원자”(요한 4,42),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요한 6,14;11,27),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요한 6,33),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예수님)의 살”(요한 6,51)을 거듭 소개하며,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요한 12,47) 예수님을 알린다.
한편, 요한복음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요한 7,7)면서 “세상의 빛”(요한 8,12)이신 예수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참조. 요한 8,23)을 미워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도 알려준다. 요한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하며 위로하신다.
세상의 미움과 박해에 관하여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8) 하며 그 이유를 밝혀주신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결코 “세상에 속하지 않을 제자들”(참조. 요한 17,14)을 위해 “이들을 (세상의)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15) 하고 기도해주시고,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하고 선언하신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현실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며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뽑은 사람”(참조. 요한 15,19)으로서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님을 알고 믿는 믿음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세상, 그 본질인 세속성과 세상의 영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동안 경계해야 할 ‘영적인 세속성’은 무엇일까?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세속성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그것은 덧없는 문화입니다. 뽐내는 문화이고, 겉만 치장하는 문화입니다. “오늘은 맞지만, 내일은 아니고, 오늘은 아니지만 내일은 맞다”고 말하는 그런 문화입니다. 다시 말해 피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를 모르는 그러한 문화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타협하고 협상하려고만 합니다. … 카멜레온과 같습니다 … 이것이 바로 ‘속된(mondana)’ 문화이며, ‘세속성(mondanità)’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이것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강조하시고, 이런 세속적인 문화에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세속성의 문화는 편의에 따라 버리는 문화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신의가 없으며 뿌리가 없는 문화입니다. 아울러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동시에 세속적인 사람들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20년 5월 16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조차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미움과 박해라는 세속성의 흔적이 드러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문제는 미움과 박해의 존재 여부나 그 이유가 아니라, 미움과 박해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미움을 이겨내고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랑, 성경, 그리고 선한 모범이다:
「사랑(Caritas): 그리스도께서 먼저 미움받으셨음을 기억하며, 그분과 사랑으로 일치함으로써 박해를 견딜 생명력을 얻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다. 그 기억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데 필요한 생명력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성경(Scriptura):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영적인 방향을 잃지 않는다. 사랑의 기억만으로 우리를 지탱하기 충분하지 않을 때 성경이 필요하다. 성경은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예를 들어, 고난받는 의인의 시편(예: 시편 22편 등)을 통해 우리는 위로를 얻고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예수님의 행적을 보며 우리 삶을 바꾼다.
선한 모범(Exemplum): 가장 위대한 모범이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바라보며,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성인들의 삶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타인의 긍정적인 모범은 우리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지와 힘을 찾도록 자극을 준다. 이미 절망을 극복한 우리 주변 이들의 선한 모범은 소중하며, 그것은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요한복음 주해In Evangelium Ioannis tractatus 중 81)」
아우구스티노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너희가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드러내는 분명한 표징이 될 수 있다.”라고 결론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