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서 지친 교사들이나 좌절한 부모들을 위한 돈 보스코의 유용한 조언들이다. 아이들 양육에 있어 교사나 부모에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아마도 언제, 어떻게 아이들을 훈육할 것인가이다. 아이 앞에서 뭔가 중요한 신호를 보냈고, 정확히 버튼을 눌렀는데도 아이에게서 아무런 변화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참 막막하고 답답하며 내면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돈 보스코라면 어떻게 할까? 말썽꾸러기가
봉헌 생활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삶이다. 하는 일을 통해서 뭔가를 보여주려 하면 백발백중 실패이고 어쭙잖다.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을 보여주려 할 때 성공이다. *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봄이 오려고 그랬는지 지난겨울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병원 신세를 졌다. 별로 술을 많이 먹고 살았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뱃속에 궤양도 심하고 혹도 하나 생겼다 해서 그것을 치료도 하고 도려내어 버리고 왔다. 사는 곳이 아름답고 깨끗한 이곳 춘천이니 공해 핑계할 것은 없고, 무자식 상팔자고 돈 벌 걱정 아니해도 되니 스트레스받을 일은 더욱 없고, 처자식 없는 것이
예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성주간聖週間’이라고 한다. 성주간 동안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준다. 따라서 교회 전례에서 성주간은 전례의 정점을 이루며, 가장 거룩한 시기이다. 성주간을 지내는 관습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3세기 무렵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까지 3일 동안을 성주간으로 지냈는데 지금과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돈 보스코 돈 보스코에게는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신비스럽게도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던 큰 개가 한 마리 있었다. 돈 보스코는 마지막 장을 이 개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 자신의 회상록을 마감한다. 개의 이름은 이탈리어나 영어의 grey(회색)를 연상하게 하는 ‘그리죠Grigio’ 였다. 이 개는 돈 보스코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에 나타났고, 돈 보스코를
인생에는 반드시 분기점이 되는 산들이 있게 마련이다. 모세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먼 길을 나섰을 때, 이집트에서 하느님의 산인 시나이 산에 이르는 전반기가 있었고, 산으로부터 십계명으로 무장한 백성들이 다시 모압의 평야에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약속의 땅을 볼 수 있었던 후반기가 있었다. 시나이 산이 분기점이었다.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이교도들의 신과 대적을 벌여 미움을 받게 되고, 이에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이루신 우주의 모든 만물이 조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여기저기 바람이 불어 당신 수염을 쓰다듬듯이 은하수를 펼쳐놓은 모습이 하느님의 눈에 뜨였으며,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울려 퍼지는 우주의 교향곡들이 하느님의 귀에 들려왔고, 별들이 저마다 무한의 의미들을 창공에 새기고 있었다. 그렇게 만물의 경이로움을 보시던 하느님의 눈앞으로 마침
꽃이 피는 시절이다. 오며 가며 길거리의 꽃집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꽃에는 아주 비싼 꽃도 있고 그저 단돈 몇 푼에 팔리는 꽃도 있으며, 다른 꽃이 팔릴 때 덤으로 끼워 팔리는 꽃들이 있는가 하면, 꽃집에서는 아예 팔리지 않는 꽃들도 있다. 들에만 피는 야생화들을 이제는 온실에서 키워 내다 파는 바람에 편리한 부분도 있긴 있지만, 그 꽃으로 인하여 들에 나갈
어느 날 하느님께서 높은 곳에 계셔 저 아래 지구라는 별을 보시니 땅이 텅 비어있어 너무 쓸쓸하고 황량하게 보였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슬프게만 보이는 땅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시다가 땅을 가득 채우고 충만하게 하시기 위하여 어린이들을 보내기로 하셨다. 이에 어린이들이 기쁘게 순명하며 명랑한 웃음으로 응답하여 땅을 향하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어린이들이 몰려와 하느님께 ‘저희들만 가지 않고 무엇인가를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이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제소리만 들으라고 강요하는 이 요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항구함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첫째는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은 좋아도 교회는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교회와 예수님을 분리하면 현대인에게 가장 큰 영성적 위험이 초래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