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젊은이와 예수님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다가온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조건을 묻는다. 예수님께 다가온 태도도 좋았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지향도 훌륭했으며, 그 길을 예수님께 물었다는 점도 아름다웠다. 그는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여쭙는다. 착한 일을 쌓고 또 쌓아야 영원한 생명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 자기 방식대로 물은 것이다. 아직 미성숙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다”라고 가르쳐주신다. 영원한 생명은 인간이 선행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알아모시는 길로서 “계명들을 지켜라” 하고 일러주신다.

기특한 젊은이는 다시 “어떤 계명입니까?” 하고 여쭙는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부모와 이웃을 공경하라” 등 타인을 향한 계명들을 열거하시고, 마침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를 종합해 주신다.

예수님의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섬긴다는 것이 자신의 자아(Ego)를 비우고 희생하는 일이라는 깊은 뜻을 청년은 아직 살아보지도, 헤아리지도 못했다. 그는 “그런 것은 제가 다 지켜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마치 부풀어 오른 개구리 울음주머니처럼 자기를 과시하며 패기만만하게 다시 여쭙는다.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며, 그가 소유하고 추구하며 자신의 것이라 믿었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다. 삶이란 자아를 쌓아가고 더하는 것이 아니라, 내것이라 집착하던 것들을 덜어내고 잘라내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며, 비로소 그렇게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다.

그제야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된 젊은이는, ‘알아듣는 것’과 ‘실행하는 것’ 사이의 거대한 아득함을 절감한다. 인생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도록 내맡기는 것이며,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잃어가는 과정임을 깨달은 것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길에서, 무언가를 집요하게 소유해보려는 질긴 유혹을 끝내 떨쳐내지 못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아직 예수님의 길이 자신의 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깊은 슬픔 속에 떠나간다.

그리고 오늘, 수많은 계명을 알고 지키며 산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 소유와 자아(Ego)를 내려놓지 못해 슬퍼하며 돌아서는 그 젊은이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은 아닐까?

공관복음서가 모두 기록할 만큼 고무적이었던 예수님과 한 젊은이의 만남은 그렇게 쓸쓸히 막을 내린다. 운 좋게도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그 젊은이가 이후 어디에선가 예수님을 다시 만났다거나 제자의 길을 갔다는 이야기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

※ 함께 읽기: 연중 제28주일 ‘나’해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

이 사이트는 Akismet을 사용하여 스팸을 줄입니다. 댓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