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칠七

성경의 ‘일곱’을 추적하다가 일곱을 두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곱의 매력에 빠진다. 기원전 2500년이나 3천 년쯤에 티베트에서 시작하여 히말라야산맥을 가로질러 지금의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인류 고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생겨나고 숫자라는 것들이 생겨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1961년~)는 자신의 잡학사전에서 숫자에 있는 곡선은 사랑을 나타내고 교차점은 선택의 기로를 나타내며 가로줄은 집착을 나타낸다고 풀이하면서 그중 ‘7’은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가’해(요한 20,1-9)

※주님 수난 성 금요일 강해와 성 토요일에 관한 묵상은 해당 링크를 참조하여 주세요. 오늘은 축일 중의 축일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부활 대축일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기쁘게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는 우리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끔찍한 죽음으로 죽임을 당하셨으며, 무덤에

성 토요일

「형제 여러분,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습니다. 과연 엄숙한 침묵과 고독입니다. 이렇게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는 것은 임금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신 안에서 주무시고 옛적부터 잠자고 있던 이들을 깨워 주셨기에 땅은 공포에 떨어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신 안에서 돌아가시고 지옥은 잠 깼습니다. 주님은 마치 목자가 잃어버린

주님 수난 성금요일 ‘가’해(요한 18,1-19,42)

이미 기원전 몇백 년 전에 예언자 즈카르야는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즈카 12,10)라면서 유다의 구원을 예고한다. 오늘 우리들의 묵상과 관상은 즈카르야의 예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심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성주간 수요일(마태 26,14-25)

유다 이스카리옷이 수석 사제들로부터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노린다. 제자들은 파스카 축제 지낼 곳을 예수님께 여쭙고, 예수님께서는 ‘아무개 집’을 지정하신다.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며 근심한다. 유다 역시 예수님께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여쭙는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대답하신다. 1. 주님,

주님 만찬 성 목요일 ‘가’해(요한 13,1-15)

성삼일의 시작이다. 사흘 동안 우리는 감히 헤아릴 길 없는 신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거행한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사건들과 모습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그 사건들을 ‘현재화’하며 그 사건 안에 참여한다. 이것이 파스카 전례의 근간을 이루는 전례적·성사적 역동성이다.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탈출 12,47)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성주간 화요일(요한 13,21ㄴ-33.36-3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앉은 식탁에서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고갯짓하고 요한이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빵을 적셔서 주시고, 유다는 어두운 밤 밖으로 나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신다.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으며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라 답하신다. 1. 빛과 어둠의

성주간 월요일(요한 12,1-11)

예수님께서는 마르타, 마리아, 그리고 다시 살려주신 라자로 3남매가 있는 베타니아로 가신다. 식사 중에 마리아는 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린다. 제자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핑계로 향유의 값을 계산한다. 예수님께서는 “늘 너희 곁에 있을 가난한 사람”을 언급하시며 당신의 장례를 암시하신다. 사람들은 예수님뿐 아니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 라자로도 보려고 밀려든다.

성주간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부터 부활 성야에 이르는 성주간을 요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는 것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좋은 방법의 하나이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Palm Sunday): 성지聖枝 주일은 성주간의 시작이지만 성삼일(3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영광스러운 입성을 축하하는 동시에, 성주간의 시작과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을 기념한다. 이날 전례는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나뭇가지를 흔들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해(마태 26,14-27,66)

예수 부활 대축일 전 한 주간을 ‘성주간聖週間’이라고 한다. 성주간 동안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끌어 준다. 따라서 교회 전례에서 성주간은 전례의 정점을 이루며, 가장 거룩한 시기이다. 성주간을 지내는 관습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3세기 무렵에는 예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까지 3일 동안을 성주간으로 지냈는데 지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