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벨로 주교와 함께 묵상하는 성모님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성인(1673~1716년)은 교회 안에서 성모님 공경에 관한 올바른 기초를 놓으신 분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뒤 돈 보스코(1815~1888년) 성인은 루도비코 성인의 성모님 공경에 관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미 성모님의 현존을 몸으로 체험하고 실제의 어머니로 모시며 살아 그 어머니의 도우심 아래 자신의 소명을 시작했으며, 청소년들의 아버지와 스승, 그리고 친구로서 수많은 젊은이와 살레시안들에게 성모님의 도우심을

주님 승천 대축일 ‘가’해(마태 28,16-20)

4세기 말경 예루살렘 신자들은 주님 승천과 성령 강림을 그리스도 구원 사업의 완성으로 여기며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함께 경축했다. 반면 예루살렘 외 지역에서는 4세기부터 주님 승천 대축일을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 따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은 원래 부활 대축일 이후 40일이 되는 여섯 번째 목요일이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이날이 공휴일이 아닌 나라에서는

세상의 미움과 박해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세상”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 안에서 살아갈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빛”(참조. 마태 5,13-14)이라 하시고,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마태 13,22 마르 4,19)이 말씀의 숨을 막는다고 하셨으며,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마르 8,36 루카 9,31) 하셨다. 또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마태 18,7)을 한탄하셨으며, “나는

성 루이 마리 그리뇽 드 몽포르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역의 몽포르쇠르므에서 태어난 성 루이 마리 그리뇽 드 몽포르(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1673~1716년)는 1700년에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오늘날 <마리아론>이라고 알려진 그리스도교 신학의 한 분야를 주창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저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과 <묵주 기도의 비밀>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천사들에 관한 깊은

부활 제6주일 ‘가’해(요한 14,15-21)

이번 주 복음은 지난주 복음에 바로 이어지는 요한복음 14장의 구절들이다. 지난주 복음이 요한복음 14장의 제1부로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라는 말씀이 그 주제였다면, 요한복음 14장의 제2부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주 복음의 주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과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 사이에 이견이 있을

부활 제5주일 ‘가’해(요한 14,1-12)

부활 제5주일 ‘가’해(요한 14,1-12) 오늘 복음 말씀의 배경은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시고 나서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넘어가실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시면서 의미심장하게 당신 말씀을 전하신다고 증언해 준다.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는 일단 결정적인 “새 계명”(요한 13,34;15,12)을 제자들에게 하달하셨는데, 그 이후

먹다: 파게테 vs 트로곤(요한 6,53-54)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6장의 서두에서 예수님께서는 5천 명이 넘는 배고픈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다. 이에 군중은 환호했고, 급기야 예수님이야말로 민생고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여겨 임금으로까지 추대하려 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길이 아닌 전혀 다른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이러한 인간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다른 말씀을 하기 시작하신다. 사람들에게 육체적이고 세속적이며 지상적인

부활 제4주일 ‘가’해-성소주일, 생명주일(요한 10,1-10)

예수님의 시대에 목자들은 도시나 시골, 산악 지형이나 들을 막론하고 팔레스티나 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양들과 같이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우유나 고기, 치즈와 가죽이나 털을 공급하였다. 성경에서 목자는 비유나 상징적인 예표로 자주 등장한다. 주님이신 하느님을 두고 “이스라엘을 양 떼처럼 이끄시는 분”(시편 80,2)이라고 한다든가,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끌어”(시편 78,52;95,7;100,3)에서 보듯이

명상, 묵상, 관상

많은 곳에서 세 말마디를 듣는다. 그러나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국어사전의 해석을 바탕으로 풀어볼 때, 명상(瞑想/冥想, meditation)은 「고요히 눈을 감고 잡생각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주로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묵상(默想, meditation)은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에 잠기는 것. 종교적,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하느님이나 진리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주님의 기도(마태 6,7-1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우리 아버지’ 기도는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올바른 기도’(마태 6,5-8)와 ‘올바른 단식’(마태 6,16-18)이라는 앞뒤의 가르침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앞에 있는 ‘올바른 기도’에는 절제에 대한 권고가 담겨 있다. 말을 아끼고 기도의 분량을 자랑하지 말라는 초대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신들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수많은 말을 쏟아부어 왔다. 그들을 설득하려 애썼고, 때로는 지치게 하려 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