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일 ‘가’해(마태 10,26-33)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

1독서(예레 20,10-13)는 “마고르 미싸빕(מָגוֹר מִסָּבִיב)”, 곧 ‘사방의 공포’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상징적 언어이다. 그는 친구들마저 자신을 감시하는 현실, 곧 세상 전체가 적대적 공간으로 변해버린 상황을 탄식한다. 그러나 그 절망 한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내 곁에 계신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억울함을 주님께 맡기고, 악인들의 손에서 구해주실 하느님을 신뢰하며 찬양한다.

2독서(로마 5,12-15)에서 바오로 사도는 인간 두려움의 현실을 더 깊이 해석한다. 죄가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이 들어왔다. 이렇게 인간이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총의 선물이 그 죄보다도 훨씬 더 풍성하게 모든 이에게 내렸다고 선언한다. 두려움의 근원이 죄라면, 그 해답은 그리스도의 은총이라고 밝힌 것이다.

복음(마태 10,26-33)은 지난주에 이어지는 ‘부르심·파견·선교 설교’의 연장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세 번이나 “두려워하지 마라”(26.28.31절) 하고 당부하신다. “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안다고 증언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세 독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사방이 적이었던 예레미야가 자신을 맡겼던 그 주님, 곁에 계셨던 그 힘센 용사이신 주님의 구원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은총의 선물로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에 머무를 수 없다.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고, 당신을 “안다고 증언하라” 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을 담대히 “증언”해야 한다.

“사람을 무서워하면 그것이 올가미가 되지만 주님을 신뢰하면 안전해진다.”(잠언 29,25) 또한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하셨으니,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람과 세상의 위협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상태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또 그분을 안다고 증언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요한 14,26)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우리를 위해 항상 간청하시고, 성령의 힘과 보호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께서 계시니, 우리는 용기를 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흔든다. 두려움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주님과 복음을 부인否認하게 만든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두려움을 이긴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하는 말씀처럼 겸손한 믿음이 있는 곳에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증언”의 힘이 있다. 

천사에게서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인사를 처음 받으신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

– 나는 누구, 혹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사람이나 상황인가, 하느님인가?

– 두려움 중에 있더라도 그 두려움을 주님께, 예수님의 은총에 맡기는가?

– 나는 누구, 혹은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연중 제12주일 (마태 10,26-33) / 참새(스트루디온, στρουθίο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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