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대다(합토마이 ἅπτομαι)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하는 예수, 카타콤바, 로마

마태오 복음 9,18-26에서 회당장은 예수님께 “손을 얹어” 딸을 살려주시기를 청한다. 한편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것이라 믿고 다가가 실제로 그 옷자락에 “손을 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어 다시 살리신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는 ‘손을 댐’, 곧 접촉이라는 행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여기서 “손을 대다”라는 표현은 신약 성경의 그리스어 동사 합토마이(ἅπτομαι, haptomai)로 나타난다. 마르코복음 5,28에서 혈루증 여인은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Ἐὰν ἅψωμαι… σωθήσομαι)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합쏘마이ἅψωμαι는 합토마이ἅπτομαι의 활용형이다.

이 동사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닿는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대상과 실제로 접촉하여 영향을 받는 관계적 행위를 가리킨다. 같은 어근에서 ‘촉각’을 의미하는 현대어 ‘햅틱(haptic)’이 파생된 것도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마르 5,28절에서 주목할 점은, “손을 대다”(ἅψωμαι)와 “구원을 받다”(소테소마이, σωθήσομαι)가 한 문장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인은 단순한 접촉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그 접촉을 통해 치유와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심으로써, 이 접촉이 단순한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사건임을 드러내신다.

결국 여기서 ‘손을 댄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닿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행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치유와 구원이 일어난다.

인간의 간절함은 그 자체로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 간절함이 믿음이 되어 예수님께 닿을 때, 그것은 은총과 만나 구원이 된다.

손을 내미는 인간의 행위와 그 손을 받아들이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만나는 자리, 바로 그곳에서 치유와 생명이 시작된다.

※함께 읽기: 예수님의 손 / 터치·접촉·To t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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