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성 마태오와 천사>

Rembrandt’s St. Matthew and the Angel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마치 렘브란트가 일종의 예술적 기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법을 발견해 낸 것만 같다.

1661년, 렘브란트는 사도들의 초상화 다섯 편을 그렸다. 그중 하나가 한 손에 펜을 쥐고 글쓰기 책상에 앉아 있는 노년의 성 마태오와 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천사를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렘브란트 자신 역시 나이가 들어가는 처지였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이 위대한 거장은 파산 상태였으며 아들(그림 속 천사의 모델로 추정되는)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같은 해에 그린 또 다른 초상화인 성 바오로 초상화는 작가의 자화상으로, 세월의 여파가 시작되면서 이마에 근심 어린 주름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이 흘러가는 방식에 대한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성 마태오와 천사>는 그의 예술적 역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완성된 작품이다.

이 시기 렘브란트의 작업은 인간 영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가 삶의 더 깊은 질문들을 파고들고 있으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활용하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영혼과 육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깊은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그것은 무엇인가?

성 마태오를 그린 이 특별한 작품에서는 영감과 자신의 성소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질문도 던져진다. 렘브란트는 위대한 화가였지만 가난했다. 그에게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재능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천사가 그의 귀에 속삭이고 있기에, 비록 부유해질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에게 계시된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지극히 실재적인 방식으로, 화가로서의 성소는 오직 자신에게만 나지막이 전해진 거룩한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도록 해준다.

영혼을 그리다

렘브란트에게 있어 육신이 늙고 쇠퇴하며 무너져 내릴 때, 영혼의 아름다움은 오직 증대될 뿐이다. 사랑으로 다가설 때 세월의 풍파조차도 영혼을 넓히고 영원을 준비하는 기회가 된다.

나는 그의 그림들이 이러한 내적 관상과 성장을 드러내는 방식에 언제나 감탄해 왔다. 렘브란트는 그 어떤 화가보다도 영혼을 그리는 화가다.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렘브란트는 나이 들어가는 얼굴의 피부 톤을 가져와 각각의 색조가 내면의 삶을 어떻게 포착해 내는지 보여준다. 그리하여 색채들의 형식적 조화는 인격의 완결성과 일체감을 전달한다. 렘브란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쇠퇴해 가는 육신 안에 스며든 통합된 인격을 목격한다. 그리고 우리는 경외감으로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성 마태오를 그린 그의 작품은 다채롭고 깊은 색채를 통해 일구어낸 빛과 어둠의 극적인 강렬함으로 형태를 조성함으로써 완성된다. 성인의 얼굴은 마치 내면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듯 환하게 빛난다. 현재 <성 마태오의 머리>로 알려진 습작을 바탕으로 한 이 표정의 감수성과 빛은 인간 내면으로 들어가는 창의 역할을 한다. 마치 렘브란트가 일종의 예술적 기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법을 발견해 낸 것만 같다. 그의 대상들이 종종 근심에 지쳐 있고, 거칠며, 노년일지라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외 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란 자신의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빛이며, 귀에 들려오는 그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이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애쓰는 데서 오는 빛이다. 영혼이 빛을 발하고, 그 영혼의 아름다움은 대지 위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불어오는 창조적인 숨결, 생명을 주는 숨결과도 같다.

성 마태오와 대조적으로 천사가 젊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영감의 목소리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자신의 운명을 찾아 나설 때, 비록 육신은 늙어갈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더욱 젊어진다. 이는 영원의 표징이자 미리 맛보는 전조다. 매일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뛰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기다려진다. 나이가 들고 행동이 둔해지고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비록 완벽하지 못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늘 충분히 침묵하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만큼 그분 가까이에 머물고자(혹은 다시 가까이 돌아가고자) 애쓴다.

오직 성 마태오만이 자신의 복음서를 쓸 수 있었다. 오직 렘브란트만이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오직 당신만이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그 특별한 운명을 이루어낼 수 있다. 당신의 삶은 위대함의 계시다. 영감이 당신의 귀에 속삭이고 있다 – 당신은 귀 기울이고 있는가?

(*이 글은 2026년 9월 28일 마이클 레니어Michael Rennier 신부가 aleteia.org에 게재한 글의 번역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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