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

※ 연중 주일이지만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므로 강해를 대신하여 3가지 묵상 소재들을 함께 나눕니다. 제시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의 제정 역사와 유래 및 2025년 엔조 비앙키의 번역문인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과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 기도 훈화 번역문인 모든 성인 대축일(11월1일) 등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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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 대축일에 말씀의 전례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은 제1독서(묵시 7,2-4.9-14), 제2독서(1요한 3,1-3), 복음(마태 5,1-12ㄴ)이다. 세 말씀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제2독서)’에서 출발하여, 이 땅에서 ‘참된 행복의 길인 참행복 선포를 살아내는 삶(복음)’을 거쳐, 마침내 ‘하느님의 어좌와 어린양 앞에서 누릴 영원한 승리와 구원의 완성(제1독서)’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우리는 먼저 제2독서(1요한 3,1-3)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거룩한 사랑 덕분에 ‘지금 이미 하느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신분과 희망을 확인한다. 이 희망을 마음에 품은 이들은 복음(마태 5,1-12ㄴ)의 ‘참행복’을 삶의 이정표로 삼아 살아간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마음의 가난, 온유함, 자비, 평화, 그리고 의로움을 위한 수난은 세속의 눈에는 시련으로 보이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이 세상 한가운데서 걸어가야 할 참된 거룩함의 길이다. 이 거룩한 길을 끝까지 걸어간 이들이 도달하는 궁극의 희망이 바로 제1독서(묵시 7,2-4.9-14)의 환시이다. 이 땅의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어린양의 피로 자기 옷을 깨끗이 씻어 얻은 그 수많은 성인은, 하느님의 인장을 받고 흰 옷을 입은 채 천상 어린양 앞에서 영원한 승리의 찬가를 부른다.
결국 이 세 말씀은 성인聖人이란 지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품위를 지키며 십자가와 참행복의 길을 걸어가 마침내 천상에서 어린양의 승리에 참여하게 된 이들임을 밝혀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그 거룩한 희망의 대열로 부르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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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하늘에서 완성된 거룩함
시골 들녘에서는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가꾼 곡식과 포도를 모두 베어 들이고 수확을 마무리한다. 바로 이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교회는 땅의 수확을 넘어 하늘의 더 숭고한 수확을 관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은 땅에서 하느님의 은총 안에 맺어진 거룩함의 열매가 마침내 천상에서 완성된 모습을 바라보는 날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길러 주신 수많은 삶이 어린양의 승리에 참여하고 있음을 기뻐하는 날이다.
우리가 지내는 이 축일은 인간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외로움과 고립에 맞서는 거룩한 희망의 축제이다. 만약 성인들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우리가 매 주일 고백하는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인간은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외로움 속에 갇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당당히 선언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살아있는 친교를 산다.
부활절에 우리가 성부 오른편에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면,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간 성인들을 바라본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살아온 가지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마침내 아버지의 집에 모인 모습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 지상 여정의 마지막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죽음의 신비이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며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죽음 없이는 하느님께 온전한 신뢰의 행위를 결코 바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과 화해했습니다. 우리가 삶의 여러 선택 앞에서는 늘 비상구를 마련해 두지만, 죽음은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삶을 붙들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야 하는 신비로운 순간이다. 성인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 마지막 의탁을 통과했지만, 결국 자신의 생명을 주님의 손에 맡기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였다.
② 땅에서 시작하는 거룩한 이들, 성인聖人
우리는 종종 성인들과 거룩함을 일부 특별한 이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나 영웅적 행위로 오해하곤 한다. 성인들은 제단 위에 모셔진 이상한 인물들이 아니며, 우리와 성정이 다른 존재들도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결점과 연약함으로 가득 찬 인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거룩함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일깨우며, 거룩함이 수많은 경우 “이웃집의 거룩함”이라는 일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거룩함은 참을성 있는 하느님 백성 안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자녀들을 커다란 사랑으로 키워내는 부모들, 일상의 양식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남녀들, 고통 중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병자들, 그리고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연로한 분들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지상 여정을 가는 교회의 참된 거룩함을 발견한다.
이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반사하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룩함의 중산층’이다. 나아가 성령께서는 교회의 가시적 경계를 넘어선 곳에서도 진리와 선의 씨앗을 일으키시며,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여 거룩함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신다.
성인들은 우리와 동떨어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함의 길을 걸어간 이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교회가 이름을 알고 공식적으로 시성한 이들도 있고,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영광을 누리는 수많은 성인도 있다. 그들은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매일 선한 씨앗을 심는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피곤하게 돌아와 자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여기는 교사, 전문성과 풍부한 인간미를 결합하는 의사, 손주들에게 시간과 지혜를 선물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로 이 시대의 성인들일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작고 평범한 이들, 온유한 이들, 타인을 돌보는 이들을 향해 “행복하여라” 하고 선언하셨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행복의 말씀 안에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 들어있으며, 이 땅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는 그리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미소 한 번,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선 하나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평범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룩함의 길이다.
③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통공通功(가족과 형제애의 거대한 축제)
*‘성인들의 통공通功’은 라틴어 ‘communio sanctorum’을 옮긴 말이다. 여기에는 ‘거룩한 것들의 공유’와 ‘거룩한 사람들의 친교’라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과 이어서 지내는 위령의 날(11월 2일)은 단순한 추모의 날이 아니라, 세상 끝까지 확장된 하나의 거대한 가족을 확인하는 ‘가족과 형제애의 축제’이다. 우리 삶의 일부였던 이들은 육신으로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맺은 사랑의 친교는 죽음으로 끊어지지 않는다. 다비데 마리아 투롤도 신부가 묘사하듯, 그리스도인은 죽은 이들을 단순히 과거의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생명 안에 있으며, 우리는 사랑과 기도 안에서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는 어제의 성인들이 있고, 땅에는 오늘의 성인들이 있다. 지상에서 우리의 성장을 도와주었던 이들 가운데에는 이미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생명을 희망한다. 성인들의 통공 안에는 지상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 정화를 거치고 있는 죽은 이들, 그리고 이미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간 성인들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천상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고 그들의 모범을 따르며, 정화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조차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친교를 살아간다.
우리는 기쁨과 희망, 고통과 연약함, 그리고 수고로 어우러진 공통의 삶을 통해 그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도록 부름받은 형제자매들이다. 이 축제는 국경이 없는 보편적 축제이다.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누구도 낯선 이나 이방인이 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의 얼굴을 아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자상하게 부르신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가을 수확을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거두어들이신 풍성한 열매들에 감사드린다.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온유함과 사랑으로 거룩함을 살아내는 이웃들을 통해 하느님의 얼굴을 관상하고, 우리 역시 그 거룩함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결심한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 이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우리는 오늘 소망을 담아 찬미를 올린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