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름병
열 명의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등잔에 담긴 기름만으로 신랑을 기다리려 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등잔의 기름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여분의 기름을 따로 준비한 것이다(참조. 마태 25,1-13).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는 결심에서가 아니라, 신랑이 늦어지는 밤에도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서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이 갈린다. 사람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슬기로워지거나 어리석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견디고 맞이할 힘은 평범한 날들의 선택과 준비 속에서 조금씩 형성된다.
기름은 한 방울 한 방울 모인다. 삶과 시간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작은 기름병은 비록 작지만, 오랜 시간의 삶이 빚어낸 깊이를 담고 있다. 내면의 으깨짐과 아픔, 인내와 성숙의 과정에서 마련된 기름은 다른 사람이 대신 준비해 줄 수 없다. 빌릴 수도, 건네받을 수도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급히 주문한다고 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등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빛일 수 있다. 그러나 어둠이 길어지고 기다림이 깊어질 때, 그 빛을 끝까지 지켜 주는 것은 매일 한 방울씩 준비해 온 기름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인내하기로 선택하고, 선을 행하기로 선택했던 그 삶의 흔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