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명령 명命’은 일반적으로 ‘입 구口’와 ‘하여금 령/영令’의 합자合字로 보면서, 왕이 사자使者의 입으로 뜻을 전한다는 의미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풀이한다. ‘목숨/명령 명命’을 조금 더 자세히 뜯어 보면 ‘삼합 집亼’ 더하기 ‘입 구口’ 더하기 ‘병부 절卩(=㔾)’이다. 우선 ‘삼합 집亼’은 세 변이 합해져 완벽한 도형인 삼각형을 만들 듯이 어떤 세 가지가 어울려 조화를
사람들은 선택과 선택의 연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선택은 선택을 제외한 다른 것들의 배제요 포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택하고 나서도 욕심이 많아서 배제하고 포기한 것들에로 자꾸 눈길을 주며 호시탐탐 넘어다 본다. 그뿐만 아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도 자기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선택의 의미와 그 선택이 주는 의미의 크기를 실감하거나 가늠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전례력에 따라 읽는 오늘 마르코복음의 첫 대목에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라는 마르코복음의 제목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제목을 붙인 다음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제목에 걸맞은 내용의 시작을 위해 곧바로 이사야 예언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적 사명을 언급한다. 복음의 제목에 등장하는 “시작”이라는 말은 즉시 구약 성경의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죠레’라고 하는 성모님 기념 성당에 있는 성모님 아이콘은 현재의 교황 프란치스코뿐만 아니라 많은 교황님의 사랑을 받아왔다. 율리우스 3세나 바오로 5세 교황께서도 1551년과 1613년 각각 이 성모님을 찾아 현 교황님과 같은 모습으로 경배하시기도 하였다. 2023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언제나처럼 서구 유럽에서 하느님의 어머니께 봉헌된
대림절이 시작된 다음 교회는 곧바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을 거행한다. 이 축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성모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해 마련하신 모델이자 표상이다. 인간 모두가 마리아를 닮고 마리아처럼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주보로 모신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이날은 온
한 해를 마감할 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추억이라는 바구니 하나가 있습니다. 그 안은 풍요로운 한 해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도 담겨 있습니다. 결코 놀라움이 부족하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돈 보스코와 돈 보스코 카리스마의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2023년을 마감하면서 맘마 마르게리타의 팔에 항상 들려진 바구니라는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흥미로우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새로운 연중 지표 포스터(아래
* 교황님께서는 11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되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 참석하실 예정이었다. 그러나 독감과 폐렴 증세로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부득이 여행을 취소하실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86세 고령에도 COP28을 찾아 꼭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이다. 대통령님, 유엔 사무총장님, 존경하는 각국 정부 정상과 수반 여러분, 안타깝게도 제가 그토록 원했던 모임에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예수님 생애에 일대 스캔들이라 할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 어떤 머리 긴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값비싼 향유를 통째로 부어 예수님 발을 닦아드리고, 울면서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 발을 닦아드렸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겼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를 개의치 않으신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사랑으로 준비한 행위였다고 말씀하신다.(참조. 마르 14,3-9 마태
1. 돈 보스코의 꿈: (‘꿈’을 이야기하는 이유와 배경) 돈 보스코는 1883년 성 프란체스코의 날에 쓴 회람 서한을 통해 ‘살레시오 집에서 체벌을 가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편지글을 썼다. 그 편지글 끝에 돈 보스코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교육은 마음의 일이며 하느님만이 그 마음의 주인이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 마음에 다가가는) 기술을 가르쳐주시지 않고, 우리 손에 그 열쇠를 주시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