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2,16-21(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나’해)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로서 복음상으로는 예수님의 할례와 작명 기념일이다. 교회는 1970년 이래로 오늘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하느님의 어머니’, 곧 ‘천주의 성모’라는 호칭은 초 세기부터 신자들이 사용했으며 우리 성모송에 담겼다. 성모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천주의 성모 마리아 축일’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 27일)

성탄 8부 기간에 지내게 되는 성 요한 사도의 축일은 축일의 날짜가 성인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던 그가 말씀의 육화 신비를 기리는 사랑의 축제 기간에 아기 예수님과 함께 기려지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동생이다. 요한은 원래 세례자 요한의 열심한 제자요, 다른 유다인들과 같이 구세주의 임하심을

루카 2,22-40 또는 2,22.39-40(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

성탄 후 12일간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유일한 주일에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기리는 주일을 지내면서 인간의 시간 속에 들어오신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기가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라는 사실을 기념한다. ‘가족’이라는 가치가 무너져 가는 현시대에 내가 사는 ‘가족’의 가치를 돌아보는 축일이기도 하다. 성탄절에 교회가 이스라엘의 가난한 목자들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길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별의 인도를 받은 세 명의 동방박사들(그리스어로 마고이)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참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왕이 아닌 “동방박사(현인賢人)”로 묘사하는데, 8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이름이 멜키오르, 카스파르, 발타사르로 정해진다. 이들을 그리려는 이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는 장면을

성탄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동방박사들이 먼 곳에서 길을 떠나며 땅은 동굴 하나를 연다. 아무도 무심하지 않고  배은망덕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아담의 단죄가 풀리고 더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가 아니니 하늘과 지극한 하나가 되어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멘! (체사레아의 성 바실리오, 330~379년)

부드러우신 성모님

부드러움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 모든 탄생에 대한 환희 모든 생명이 살아서 열매 맺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 – 모리스 벨레Maurice Bellet(1923~2018년)

고백록(7)

3517. (“진리는… 공간 간격으로 무한한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무한하여 인간의 사유에 포착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무한totum infinitum하다고 표현할 만하다.”-Epistulae 118,24) 3518. 건설하는 사랑,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는 겸손의 토대에서 건설하는 저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토대에서부터 사유하라. 그대 안에 겸손이라는 기초fundamentum humilitatis를 파 내려가라. 그러면 사랑이라는 정점fastigium caritatis에 도달하리라!”-Sermones 69,4)…추정과 고백 사이가 얼마나 거리(학자들의 사변에서 그치는 추정praesumptio과 믿는

어지러울 난/란亂

‘어지러울 난/란亂’이라는 글자는 그 생김새 못지않게 풀이도 어지럽고 복잡하다. 차근차근 획순에 따라 글자를 분해하면 ‘손톱 조爪(움켜잡다) + 작을 요幺(실타래) + 덮을 멱冖(물레) + 또 우又(손) + 새 을乙(칼날)’라고 풀어서 ‘물레에 실타래가 위아래로 엉켜있는 것을 칼로 끊어내고 가지런히 정리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 정도로 새겨볼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어지러울 난/란亂’에 들어있는 우측의 ‘새 을乙’을

구유 만들기

가장 결정적인 구유는 일상의 삶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을 낯선 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친구로 맞이하는 것. 가장 정성스러운 구유는 우리의 두려움이나 불확실성의 끝이 아니라 탄생의 시작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가장 필요한 구유는 어려움에 부닥친 이에게 용기를 주어 희망의 싹을 틔우도록 하고, 의심이나 불신, 더는 관계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믿음의 자리를 만드는 것.

잠자는 목자

우리에게 낯선 베니노라는 목자가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사람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고자 하던 날,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목자 중 하나이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구유를 장식하거나 연출하면서 그의 모습을 구유의 한쪽에 놓고자 했고, 성탄의 장면을 그리는 이들도 그를 그리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성탄 축제에서 만나는 구유 꾸미기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아기 예수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