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2,38-44 또는 12,41-44(연중 제32주일 ‘나’해)

오늘 복음의 전반부에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교만을 향해, 어찌 보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을 향해, 혹독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의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있으므로 그저 비판과 비방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 지혜로운 해석이 필요한 대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율법 학자들은 어린

돈 보스코의 첫 미사 순례

새 사제들이 여러 은인이나 연고지를 찾아 첫 미사 순례를 하듯이 돈 보스코 역시 서품 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이에 관해 돈 보스코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1841년 6월 5일 삼위일체 대축일 전날 나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 첫 미사는 카파소 신부가 수석 사제로 있는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당에서 드렸다. 사제의 첫 미사를 드려본 지가 오래된 내

베드로의 눈물

지인과 식사하는 자리였다. 그는 이런저런 아픈 사연 속에서 딸과의 갈등을 살아내는 중에 답답할 때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전시된 ‘베드로의 부인否認’이라고 알려지는 이 작품 앞에서 눈물 글썽거리는 베드로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노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카라바지오의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행운을 누렸다고 했다.(MET에는 카라바지오의 1597년 작품인 ‘음악가들-The Musicians’과 함께 ‘베드로의 부인’이 영구 전시되어 있으며, 디트로이트,

마르 12,28ㄱㄷ-34(연중 제31주일 ‘나’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였는데(참조. 마르 12,18-27), 이렇게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마르 12,28) 예수님의 지혜에 감탄한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마르 12,28) 사실, 이 질문은 예수님 당시 종교 분야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진 논제였다. 당시 유다인들은 바빌로니아의 탈무드에

마르 10,46ㄴ-52(연중 제30주일 ‘나’해)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른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 곧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죽음에 이르시게 되는 길을 가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여러 가르침을 주시면서 당신을 따르던 이들과 당신께서 형성하신 공동체 양성 이야기를 오늘 복음으로 마감한다. 마르코복음 10장의 오늘 마지막 대목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축제의 분위기에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나라”,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 열렬히 환영하는 가운데(참조. 마르 11,7-11)

마르 10,35-45 또는 10,42-45(연중 제29주일 ‘나’해)

※ 전교주일을 지내는 곳에서는 http://benjikim.com/?p=11823 에서 별도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음 ————————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예고가 이루어진 직후에 열두 사도 중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특별한 청을 드린다. 마르코가 전하는 바에 따를 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에 세 번에 걸쳐 당신께서 장차 받으실 수난을 예고하셨는데, 그 예고 뒤에 매번 제자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마태 28,16-20(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나’해)

오늘은 연중 제29주일이나 전교주일이므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드릴 수 있다.(교황 비오 11세, 자의 교서 Romanorum Pontificium, 1922년 5월 3일, 인류복음화성 총회 결정, 1992년 4월 27-30일) 우리나라는 전교 지역이기 때문에 인류복음화성 총회의 결정에 따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드린다. 교회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는 그리스도의 이 장엄한 분부에 따라, 신자들의

예수 성면聖面과 장미꽃 소나기

성녀 소화 데레사, 예수님의 작은 꽃,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성녀의 가르멜회 수녀로서 공식적인 수도명은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사 수녀(Thérèse of the Child Jesus and of the Holy Face)’이다. 성녀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이름을 다시 짓는 성경의 전통에 따라서 수도회에 입회할 때 이와 같은 이름을 선택하였다. 이 호칭은 성녀 데레사의 어린

고백록(21)

3704.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말릴 테지만(이사 34,4 참조.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의 율법서를 ‘두루마리처럼 말릴’ 창공으로 비유하기도 한다.-Enarrationes in Psalmos 93,6), 지금은 저희 위에 가죽처럼 펼쳐져 있습니다.(낙원에서 추방되는 원조에게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창세 3,21 는 구절을 두고 교부는 가죽 옷이 사멸의 상징이라고 풀이하기도 하였다.)(13-15.16) 3705. 천사들은 항상 당신의 얼굴을 뵙고 있고, 시간의 음절

마르 10,17-30 또는 10,17-27(연중 제28주일 ‘나’해)

지난주 복음이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어”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도록 마련하신 혼인 계약의 아름다움과 그에 관한 하느님의 의도에 관한 내용(참조. 마르 10,6-9)이었다면, 이번 주 복음은 그렇게 형성된 가족일지라도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상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혼인과 가정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상적인 길이라면, “나(그리스도)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마르 10,29) 실제 열두 제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