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하적인 믿음

*「자기비하(self-deprecation)는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belittling), 저평가(undervaluing), 경멸(disparaging)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비난(reprimanding)하는 행동, 혹은 과도하게 겸손한, (겸손 아닌 겸손의) 행동을 말한다.」(위키백과) *** 자신과 화목하지 못한 믿음이 있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 대치하려 한다. 이런 믿음에서 하느님은 부족한 자존감을 메꿔주는 이(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을 보잘것없고 하찮다고 여기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느님에 대한

요한 18,33ㄴ-37(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나’해)

우리는 전례력을 따라서 마르코복음을 들었던 ‘나’해의 마지막 주일에 도달했다. 지난 주일에 마지막으로 들은 마르코복음의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심에 관한 선포는(참조. 마르 13,26)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주님께서 영광중에 어서 다시 오시기를 우리가 간절히 희망하고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오시는 영광의 주님을 기리면서 ‘나’해를 마감하는 전례 복음으로서 네 번째 복음, 그중에서도 나자렛 사람 예수의

맘마 마르게리타의 일상

맘마는 은인이 가져다준 감자를 한 솥 삶으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올려놓고 젖은 손으로 숨 가쁘게 방에 들어왔다. 맘마가 앉은 자리 양옆에는 바느질감이 수북이 쌓여있는 의자들이 있다. 함께 방에 들어온 덩치 큰 아이 하나가 고개를 떨군다. 전에는 그리도 착하고 유순하던 아이가 어찌 이리 변덕스럽고 산만하기 짝이 없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싶은 맘마가 부드럽고도 자상하게 묻는다. “너 전에는

쌍을 이루는 말들

인간사와 세상사 안에서 특별히 영적인 주요 원리를 드러내 주는 개념이나 말마디들은 언제나 쌍을 이룬다. 선과 악, 하느님과 인간, 평화와 전쟁,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 선생과 제자, 영혼과 육체, 강과 약, 하늘과 땅, 섬김과 지배, 높음과 낮음, 천사와 악마, 권능과 무력함, 아름다움과 추함, 순응과 추구, 열정과 냉담, 친숙한 것과 뜻밖의 것, 살아야 할 것들과 피해야 할

시편 11편과 돈 보스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두 팔 “주님께서는 의로우시어 의로운 일들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리라.”(시편 11/10,7) 이 시편을 기도하는 이는 정의로 구원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표현한다. 돈 보스코에게 정의(벌罰, 제재制裁)는 본질에서 자비(용서)로 대체된다. 돈 보스코는 그의 초기 저술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분께서는 때때로 정의를 행사하지만, 이는 오직 죄인을 바로잡아

마르 13,24-32(연중 제33주일 ‘나’해)

오늘 복음으로 ‘나’해의 전례에서 마르코복음 낭독을 마감한다. 오늘 복음 말씀은 ‘종말에 관한 예고문’ 형식인 13장의 마지막으로서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 수난과 죽음이 임박한 중에 가르침과 위로 및 당부를 하시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13장의 서두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마르 13,1) 성전이 대단하다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하시며 성전이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

11월

11월은 기분이 가라앉고 다소 우울하듯 처지는 달이다. 많이 쓸 수 없는 달이다. 눈에 띄게 낮이 짧아지고 공기가 차가워지며 일교차가 커지고 나뭇잎들이 떨어져 바람 따라 이리저리 어지럽다. 수선스러운 산만함 속에 언뜻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겨울의 동면冬眠을 위해 모든 것이 움츠러드는 것만 같고 을씨년스러워진다. 엄벙덤벙 하루가 후딱 간다. 곱다 싶었더니 짧기만 한 단풍이 어느새 생기 없는

고백록(22 *마지막)

3712. 당신께서 영감을 주시지 않는 한 제가 무슨 진실을 말하리라고는 저도 못 믿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진리이신데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서 그렇습니다. 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것에서 말을 꺼냅니다. 그래서 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당신 것에서 말을 꺼냅니다.(13-25.38) 3713. 이런 음식을 즐기는 이들은 이 음식을 먹고 살지만 자기 배를 하느님으로 삼고 있는 자들은(필리 3,18-19 참조) 이런 음식을

방 방房

‘방 방房’은 뜻을 나타내는 ‘지게 호戶’, 그리고 소릿값이면서 ‘곁’, 혹은 ‘네모’라는 뜻을 가진 ‘모 방方’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두 짝이 달린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볼 때, 외짝 문(戶)을 달아 집 안의 곁에 벽 같은 것으로 칸을 막아 분리 배치한, 대개는 네모난 작은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은 제작에 들어가는 물질이나 재료로 구분하든지, 위치나 용도로 구분한다. 그러나 위치와

성 베드로 공소(모리알도)

거대한 성전을 중심으로 조성된 베끼 돈 보스코의 생가터 ‘콜레 돈 보스코’에서 시골길을 걸어 나가다 보면 몇 분 거리에서 맨 먼저 도메니코 사비오가 10여 년을 살았던 집을 만나고 그가 다녔던 성 베드로 공소에 이어 돈 보스코께서 ‘여기가 나의 집’이라 불렀던 곳, 아홉 살 꿈이 있었던 곳들을 차례로 만난다. 누구나 압도적인 콜레 돈 보스코의 위용에 놀라지만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