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mentor #10095

연중 제28주일 ‘가’해(마태 22,1-14)

앞선 두 주일의 복음인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에 이어, 오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듣는다. 모두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비유들이다. 오늘 전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잔치(구원)에 초대받은 우리의 기쁨과 그 초대에 어울리는 우리 삶의 응답(혼인 예복)”이다. 제1독서(이사 25,6-10ㄱ)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시온 산에서 모든 민족을 위해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신애론(2-15)

제15장 거룩한 망덕을 통하여 받게 되는 하느님의 사랑의 위대한 감정에 대하여 마치, 한낮의 태양 광신이 내리쪼일 때 우리는 그 광도(光度)를 거의 볼 수 없고 더위만을 느끼게 되듯이, 이처럼 신앙의 광채는 우리의 이성 안에서 신앙의 진리가 지닌 그 찬연함을 펼치자마자 즉시 우리의 의지는 천상적 사랑의 거룩한 뜨거움을 느끼게 된다. 신앙은 속일 수 없는 확실성을 통하여 우리로

너의 거처로 돌아가라!

보다 조용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한 사막 교부들의 세 가지 원칙 현대 사회는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유도하기 위해 투자하는 사회다. 현대 사회는 주의력이 하나의 자산과 자본이 되는 가히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를 끌기 위해 요동하는 사회는 나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으며 요란하고 현란하다. 15세기나 앞서, 이집트의 사막에 살았던 수도자들 역시

성녀 소화 데레사

※ 1960년생 미국 예수회의 제임스 마틴(James Martin, S.J.) 신부가 쓴 성녀 소개글을 옮겨 수록한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미국 예수회가 발행하는 저명한 가톨릭 주간지 《아메리카(America)》의 편집장(Editor at Large)으로 오래 활동해 오고 있다. 그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 칼럼을 기증하고, CNN, NPR, 콜베어 리포트(The Colbert Report) 등 대중 방송에 자주 출연하며 가톨릭 신앙을 현대적이고

연중 제27주일 ‘가’해(마태 21,33-43)

지난주부터 다음 주까지 이어지는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응답에 관한 세 비유(① 두 아들의 비유: 마태 21,28-32) ②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마태 21,33-43 ③ 혼인 잔치의 비유: 마태 22,1-14) 중 오늘은 그 두 번째이다. 오늘 전례의 말씀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신뢰에 응답하여 마땅한 ‘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아·에·이·오·우(AEIOU)’ 성경 공부법

주일 말씀의 전례를 위한 ‘아·에·이·오·우(AEIOU)’ 성경 공부법 영어권 개신교에서는 성경 공부를 위해 모음 ‘AEIOU’를 활용한 5단계 학습법을 즐겨 사용하곤 한다. 단순함을 유지하자는 이른바 ‘KISS 원칙(Keep It Simple, Stupid)’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젊은이들과 신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방식이다. 이에 우리 고유의 발음과 가톨릭 전례 영성을 결합한 가톨릭형 ‘아·에·이·오·우’ 말씀 공부법을 제안한다. 이 방법은 개인 묵상은 물론

평온을 비는 기도

1987년, 아홉 살이었던 존 오리어리(John O’Leary)는 가솔린과 불로 장난을 치다 차고에서 대형 폭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전신 100%에 중증 화상을 입었고, 병원에서는 생존 확률이 1% 미만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이후 수십 차례의 대수술과 손가락 절단, 혹독한 피부 이식 및 재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가족과 의료진, 그리고 지역 사회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생존해

무엇을 보는가?

우리의 타락·오염된 시력의 치유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옛 속담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는 알면서도 흔히 무시하곤 하는 사실, 즉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한 우리의 추측이 신뢰할 수 없음을 간결하게 암시하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사물은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처럼 시력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속담이 가득하다. 우리는

한가위, 하늘의 가르침

음력 팔월 보름, 연중 가장 커다란 달이 뜬다는 한가위 추석(秋夕)이다. 중국에서는 중추절, 일본에서는 십오야(十五夜)라 부르던가. 빛나는 태양 아래 밝은 대낮을 지나온 이들에게, 무섭고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 마침내 두둥실 차오르는 만월(滿月)은 그 자체로 희망이요 고마움이었다. 눈이 부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낮의 태양도, 조금씩 형상을 바꾸어 빛을 비추다가 한 달에 한 번 커다란 만월이

연중 제26주일 ‘가’해(마태 21,28-32)

오늘 말씀의 전례는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 뜻을 살아가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제1독서의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말씀은 복음의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는 말씀과 연결되고, 제1독서의 “주님의 길”과 “공정과 정의의 실천”은 복음의 “아버지의 뜻”과 “의로운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제2독서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