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mentor #10095

Nada(나다)를 통해 만나는 Todo(토도)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일깨워주는 ‘수동적 정화’의 은총 스페인어로 ‘Nada(나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Todo(토도)’는 ‘모든 것’을 뜻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이 두 단어는 단순히 ‘없음’과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Nada는 하느님 아닌 그 무엇에도 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비움이고, Todo는 그 비움의 끝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자신이다. “영혼이 아무리 스스로 노력한다 해도, 하느님께서 그 손을 잡으시고 저 어두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서 배우는 성경 공부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을 향하여 살도록 저희를 창조하셨기에,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 쉴 때까지 안식을 얻지 못하나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권)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한 마음 한뜻”(사도 4,32)의 공동체를 깊이 묵상했다. 그는 사도 바오로처럼 같은 말씀을 읽고 함께 생각을 모으며 기도하는 이들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향해 하나로 모이게 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신애론(2-16)

제16장 사랑은 망덕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는가? 인간의 지능은, 본래 그 최상선으로 신앙이 제시하는 바를 관찰하기에 적합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의지는 그 신적 대상 안에서 극단의 낙을 누리게 마련인데 이 대상은 전에 결여되어 있다가 생긴 것으로서 그 현존이 내주는 뜨거운 열망을 일으키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거룩히 부르짖는다.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아가 1,2) “암사슴이

연중 제30주일 ‘가’해(마태 22,34-40)

…… 자주 하느님은 우리가 가진 완벽함의 이상을 투영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에 불과한 반면, 이웃은 우리의 계획을 흐트러뜨리는 뜻밖의 존재, 우리의 틀에 저항하는 불청객, 우리를 지치게 만들며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참기 힘든 존재이다. 타인의 얼굴은 언제나 우리의 모든 영적 환상의 끝이며, 우리의 종교적 동화에서 우리를 깨우는 현실의 부딪힘이다. 형제와 자매의 살이 비호감이고 거지같거나 심지어 원수일지라도

2026년 세계 가톨릭교회 통계

※ ‘교황청 전교기구’라고 하는 곳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가톨릭 국제 인류 복음화 선교 통신사는 보통 ‘피데스(Fides, 믿음·신뢰·신앙을 뜻하는 고대 라틴어 단어) 통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마다 전교주일이면 피데스 통신(fides.org)을 통해 세계 가톨릭교회의 통계가 발표된다. 2026년 10월 16일자 피데스 통신이 발표한 2026년 가톨릭교회 통계 보도자료는 다음과 같다. *** 2026년 세계 가톨릭교회 통계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바티칸

성모송의 변천사

가톨릭교회의 신자라면 누구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계 어디서나 암송하는 기도문이 있다. 바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이지만, 성모송(Ave Maria)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약 1,500년에 걸쳐 성경의 거룩한 문구와 수도원의 깊은 기도 전통, 그리고 교회의 공식 전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변형을 거쳐 오늘날의 기도문이 되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탐욕(πλεονεξία, 플레오넥시아)

예수님께서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15) 말씀하신다. 신약성경의 언어인 그리스어로는 “Ὁρᾶτε καὶ φυλάσσεσθε ἀπὸ πάσης πλεονεξίας.(호라테 카이 풀라스세스테 아포 파세스 플레오넥시아스)”라고 적는다. 여기서 ‘탐욕’으로 번역된 πλεονεξίας라는 말의 기본형인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는 단지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단순한 욕구를 넘어, 이미 가진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차지하려는 욕망을 뜻한다. 이러한 욕망은 타인의 몫까지 침범하면서 자신의 소유를 늘리려는 태도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연중 제29주일이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지내므로 레오 14세 교황님의 담화로 강해를 대신한다.(*교황님의 담화문은 CBCK의 공식 번역문을 인용하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연중 제29주일 ‘가’해의 전례력을 따르는 이들은 해당 링크와 연중 제29주일 ‘가’해(마태 22,15-21) 2023 링크를 볼 수 있으며, 전교주일의 복음인 마태 28,16-20을 위해서는 주님 승천 대축일 ‘가’해 링크를 참조할 수 있다. ———————— 레오

연중 제29주일 ‘가’해(마태 22,15-21)

오늘 말씀의 전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온 세상의 유일한 주권자이신 하느님과 그분께 속한 인간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제1독서(이사 45,1.4-6)에는 이방 민족의 왕인 키루스를 선택하여 도구로 쓰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등장한다. 키루스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이었으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에게 권력을 주셨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라고 선포하시며, 세상의 정치 권력과

요나 예언자의 표징

성경은 이스라엘의 예언자 요나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적국이었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도록 명령받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요나는 그 부르심을 거부하고 달아나다가 큰 물고기에게 삼켜져 그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보내게 된다. 마침내 다시 부르심을 받은 요나는 니네베로 가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선포를 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느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