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가’해(마태 21,33-43)

지난주부터 다음 주까지 이어지는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응답에 관한 세 비유(① 두 아들의 비유: 마태 21,28-32) ②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마태 21,33-43 ③ 혼인 잔치의 비유: 마태 22,1-14) 중 오늘은 그 두 번째이다. 오늘 전례의 말씀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신뢰에 응답하여 마땅한 ‘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제1독서(이사 5,1-7)의 ‘포도밭의 노래’에서는 하느님을 ‘포도원 주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한다. 주인은 땅을 가꾸고 돌을 솎아내며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기다렸으나, 정작 맺힌 것은 ‘들포도(쓸모없는 포도)’였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베푸신 아낌없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그에 걸맞은 ‘정의와 공정’이라는 열매를 기대하셨음을 보여준다.

제2독서(필리 4,6-9)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기도와 청원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며 마음을 맡기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참된 것, 고귀한 것, 바른 것,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등 덕스럽고 찬양받을 만한 것들을 실천하라고 당부한다. 복음과 제1독서가 요구하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평화와 기도, 그리고 거룩한 삶의 실천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서 기대하시는 열매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복음(마태 21,33-43)은 제1독서의 포도원 비유를 받아 이어진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떠났으나, 소작인들은 수확철이 되자 소출을 거두러 온 주인의 종들과 심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여버린다.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은혜와 책임(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욕심을 부려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지도자들의 불충실을 고발한다.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존의 기득권층이 아니라, ‘제때에 열매를 바칠 줄 아는 백성(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 맡겨질 것임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상속 재산을 차지하려는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원사 전체를 몇 문장으로 요약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포도원 이미지는 이스라엘 역사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모든 역동과 모순들을 가리키기 위해 성경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포도원은 아가서에서 사랑의 이미지와 연결되기도 하고(아가 1,6 참조), 나봇의 이야기에서처럼 탐욕과 권력 남용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나봇의 이야기에서 이제벨 왕비는 포도원을 빼앗아 자신의 남편인 아합 왕에게 주기 위해 나봇을 고발하고 죽게 만든다.(1열왕 21,1-26 참조) 이 모든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탐욕과 불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당신 백성을 돌보시며 열매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인내를 만난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촉구하시고, 인간의 이해와 변화를 기다리시며 희망을 품으신다.

포도원은 인간을 두신 세상의 이미지이다. 다른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오랫동안 사랑으로 준비된 장소이다. 공유하시는 하느님, 독점권을 자신에게만 두지 않으시는 하느님, 자신의 포도원을 사랑으로 가꾸시는 하느님, 신뢰를 보내시고 한 걸음 물러서시는 하느님, 유산을 차지하려는 유혹에 빠진 이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에 대해 비유는 이야기한다. 또한 비유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을 맡아 돌보는 관리자로서의 인간, 그 포도원을 일구고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두도록 부름받은 인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가 우리에게 함께 주어졌듯, 이는 함께 나누어야 할 기쁨이다. 그러나 인간은 소유하지 않으면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하여 포도원 – 삶, 세상, 하느님 나라, 복음, 관계들 – 위로 소유의 문제가 고개를 든다. 이는 모든 형태의 관계(하느님, 타인, 피조물)를 관통하는 문제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고 그 뜻에 온전히 응답하시어 구원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신 성모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시어 저희도 하느님의 아낌없는 사랑에 감사하며 매일의 삶 안에서 기쁨의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

– 내 삶의 포도원에서 맺히고 있는 열매는 하느님이 기대하신 ‘의로움과 기쁨’인가, 아니면 이기심이 만든 ‘들포도’인가?

– 하느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가정, 일터, 공동체)에서 나는 관리인(소작인)으로서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주인 행세를 하며 내 뜻대로만 하려 하는가?

– 주인이 자기 포도밭을 위해 쏟은 정성처럼 하느님께서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어떤 은혜로운 섭리를 마련해 주셨는가?

– 혹시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마련하시고 베풀어주신 정성을 마다하고 못된 소작인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 내가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거나 그분께서 맡겨주신 것을 내 것으로 움켜쥐려 할 때, 나는 어떤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는가?

※ 연중 제27주일 ‘가’해(마태 21,33-4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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