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0,1-9(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오늘은 축일 중의 축일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부활 대축일을 거행한다. 오늘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기쁘게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는 우리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끔찍한 죽음으로 죽임을 당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다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죽은 이들의 맏물”이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가

밥자리

누구나 ‘밥이나 한번 먹자’ 할 때 서로 관계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거의 밥자리의 연속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런 상황이 못마땅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마태 11,19 루카 7,34)이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밥자리’를 가리키는 한자 말이 ‘회식會食’이다. 그때 쓰는 ‘모일 회會’는 시루 같은 것이 포개져 있는 형상의 ‘증曾’에 뚜껑을 덮은 꼴이다. 뚜껑 달린 그릇에 이것저것 넣고 끓이거나 조리하는 모양이다.

사랑, 미움, 그리고 미혹迷惑

愛之欲其生(애지욕기생) 惡之欲其死(오지욕기사) 旣欲其生, 又欲其死,(기욕기생, 우욕기사) 是惑也(시혹야.)-논어論語, 안연顏淵 편, 10 살리고 싶으면 사랑 죽이고 싶으면 미움 살리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으면 미혹. (*미혹迷惑→갈팡질팡, 뒤죽박죽, 엉망진창, 헷갈림…어쩌라고?)

봉헌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오늘날의 현대 봉헌생활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이다. 어쩌면 이 셋은 세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가지 것일 수도 있다. 세속주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의 평가와 인정에 급급해하는 강박적 의존에 그 뿌리를 둔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구, 멋있다는 말 한마디에 안도하는, 그런 바보 같은 내용들이 수도자들을 세상으로 내몰고

수도서원의 세 가지 뜻

수도생활이란 천국의 삶을 미리 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를 미리 보여주는 삶이라 한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조용한 일상사 안에서 기쁨과 인생의 의미,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매일매일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수도자들은 수도원에 오기 전에 살았던 세속의 논리를 오랜 기간 벗지 못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별난 삶, 자극적인 체험, 과장된 행동 같은 극적인 삶을 꿈꾸고 동경할

마태 28,1-10(파스카 성야 ‘가’해)

“안식일이 지나고…”(마태 28,1)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과 함께 시작한 이 거룩한 파스카 성야 복음의 시작입니다. 성금요일의 십자가로부터 부활대축일의 알렐루야로 넘어가는 성삼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가면서 소홀히 하기 쉬운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성 토요일의 거대한 침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무덤으로 간 그

요한 18,1-19,42(주님 수난 성금요일 ‘가’해)

이미 기원전 몇백 년 전에 예언자 즈카르야는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즈카 12,10)라면서 유다의 구원을 예고한다. 오늘 우리들의 묵상과 관상은 즈카르야의 예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심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요한 13,1-15(주님 만찬 성 목요일 ‘가’해)

성체성사, 섬김, 기름부음을 받음 성체성사는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전례의 실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주님을 모셔가는 주님의 감실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몸소 우리가 당신 몸을 먹지 않고 당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빵과 포도주,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의

남자 아이들

사제이며 교육자인 돈 보스코는 특별히 남자아이들을 잘 이해했으며 그들을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시켰던 스승이었고 친구였으며 아버지였다. ​요즘은 아이가 하나여서 외롭고 귀한 아들로만 크게 될 때 애가 제발 무엇이라도 좀 먹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형제들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 발육기에 있는 남자아이들은 어떨 때 무지막지하게 먹어댄다. 그런 아이들은 집을 부숴버릴 기세로 엄청난 양의 칼로리를 소모하는 일과를 보낸다.

수도자들이 짓기 쉬운 죄 세 가지

봉헌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짓게 되는 죄 세 가지가 있다. 게으름, 험담, 그릇된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게으름은 봉헌생활이 식솔들 먹여 살릴 걱정 없이 살아도 되고 내 입과 생존을 위해 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며 평생을 보장받는 철밥통인 까닭에서 비롯된다. 또 무슨 일을 하건 말건 데드 라인이라는 것이 없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훗날’ 셈해야 한다는 그럴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