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질투를 가라앉히다(평투平妬)

질투는 교만의 은밀한 벗 「칠극」 제2권은 ‘평투(平妬)’다. 질투로 뒤흔들린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는 말이다. 질투는 남이 잘되는 것을 속상해하고 잘못됨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판토하는 질투가 교만의 은밀한 벗이어서 서로 착 붙어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권2는 네 개의 소절로 구성했다. 첫째 남의 악을 헤아려 따짐을 경계함, 둘째 헐뜯는 말을 경계함, 셋째 헐뜯는 말 듣기를 경계함. 넷째

무지개 홍虹

인터넷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서 사는 수녀님께서 무지개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무지개를 ‘성모님의 허리띠’라 한다고 알려 주셨다. ‘벌레 충/훼虫’이라는 글자와 ‘장인 공工’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무지개 홍虹’이라는 글자는 『형성문자로서 ‘벌레 충/훼虫’이 의미부고 ‘장인 공工’이 소리부인데, 갑골문에서는 두 마리의 용(虫)이 물을 내뿜어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을 그렸고, 이후 지금처럼 형성구조로 바뀌었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 935쪽)』 먼 옛날 사람들은 하늘의 용이 기교한 재주를 부려 무지개를 만든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순수

구름 운雲

‘구름 운雲’이라는 글자는 원래 ‘이를 운云’이라고 하는 글자에서 온다. 이 ‘이를 운云’이 ‘구름 운云’이라고 하던 글자를 빌려서 ‘말하다(왈曰)’라는 뜻으로 쓰이면서 ‘이를 운云’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래의 뜻을 잃어가는 글자 ‘云’ 위에 ‘비 우雨’를 올려서 원래의 뜻을 찾아주려고 한 것이 현재의 ‘구름 운雲’이다. 현대 일본의 마지막 석학이라 하고 <공자전>으로도 유명한 시라카와 시즈카(1910~2006년)는 허공을 떠도는 구름(雲)에 용(龍)

겸손의 덕으로 교만을 이기자(복오伏傲)

사나운 사자를 복종시키려면 「칠극」의 제1권은 ‘복오(伏傲)’다. 교만을 눌러 항복시킨다는 뜻이다. 1권은 전체 일곱 권 중 분량이 가장 많다. 그만큼 비중이 크다. 글의 서두는 “교만은 사자의 사나움과 같아서, 겸손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로 시작된다. 교만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으로 막을 수 있나? 교만을 복종시킴을 책의 첫 자리에 세운 데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책을 따라가며 읽어 보기로

「칠극」 (서문) 인생의 온갖 일이란(人生百務)…

인생의 온갖 일이란 없애고 쌓는 두 가지 단서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릇 닦는다는 것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음을 말한다. 성현이 온갖 실마리를 들어 훈계한 것은 모두 악을 없애고 덕을 쌓는 바탕이 된다. 무릇 악은 욕심을 틈타는데, 욕심은 본래부터 악한 것은 아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셔서 이 몸을 보존하여 지키고 영혼과 정신을 보좌하게 한 공평한

※ 알립니다 ※

오늘부터 저의 홈페이지에 “고전읽기”라는 코너를 신설하였습니다. 꼭 읽어야만 할 책들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부분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책은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 판토하(D. Pantoja, 龐迪我, 1571~1618년)가 지은 1614년의 작품, <칠극대전七克大全>의 약칭略稱인 <칠극七克>입니다. 우리말 번역본은 1998년에 일조각을 통해 나온 박유리의 번역본과 2021년에 김영사를 통해 나온 정민(베르나르도)의 번역본이 있습니다. 그중 저는 정민의 <칠극七克>을 따라갑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번역본에는

「칠극」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

인간 공동의 질문 「칠극七克」은 인간이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일곱 가지 죄악을 극복하는 방법을 논한 서양 윤리 수양서의 이름이다. 중국인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려 한 목적에서, 1614년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Diego de Pantoja, 1571~1618년, 중국명 방적아龐迪我가 한문으로 펴냈다. 원어 제목은 De Septem Victoriis로, 일곱 가지 죄악과의 전투에서 끝내 승리를 얻는 데 긴요한 처방을 담았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재잘거릴 첩喋

‘첩喋’이라는 글자가 재미있다. ‘입 구口’가 붙어있음에서 짐작 가듯이 입으로 무엇인가를 재잘거리는 상황을 묘사한다. 때에 따라서는 ‘쪼아 먹을 잡’이라고도 한다. ‘입 구口’가 붙어 그런 뜻이 있는가보다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새기기 위해서는 그 오른쪽에 붙어있는 ‘나뭇잎 엽枼’을 살펴보아야 한다. ‘뽕나무 상’이라고도 하는 ‘나뭇잎 엽枼’은 ‘枽’과 같은 글자인데 이 글자에는 ‘나무 목木’ 위에 ‘세상 세世’가 올라앉아

“무자비한 짐승男인 줄 알았는데” 쫙 빼입은 신사 등장, 모두 놀랐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편집자 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마태 16,21-27(연중 제22주일 ‘가’해)

오늘 복음은 지난주 복음에 바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지난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신원에 관해 물으시고 베드로가 하느님 아버지의 계시를 받아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고 대답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가난한 어부 시몬을 반석이요 첫 번째 초석으로 삼아 당신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다.(마태 16,18) 그다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마태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