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엘리와 사무엘)

구약성경에는 사무엘기와 열왕기라는 책이 있다. 오늘날에는 사무엘기 상·하권과 열왕기 상·하권으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열왕기 1·2·3·4권으로 불렀던 책들이다. 현재의 사무엘기는 2사무 21-24장을 떼어 놓고 보면 연대순으로 이어져 있다. 그중 첫째 부분은(1사무 1-7장) 사무엘이 태어나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 대판관이 되기까지 그의 생애를 들려준다. 택시를 타면 백미러 거치대에 혹은 버스 운전석에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와 함께 무릎

성 루카 복음사가(10월 18일)

루카는 대단한 통찰력과 지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하느님의 계시를 명확성과 아름다운 필치로 전한 복음사가이다. 전승과 초기 교부들인 에우세비우스와 히에로니무스 등에 따를 때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의 안타키아) 출신이다. 이곳에서 전교하던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의 영향을 받아 복음사가 중에서는 유일한 이방인 개종자가 되었을 것이다. 성 마르코의 좋은 친구이자 성 바오로의 전교 여행에 절친한 동반자였다.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의

마태 28,16-20(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 전교 주일을 지내지 않는 지역에서는 연중 제29주일 ‘가’해(http://benjikim.com/?p=6558)를 참조할 것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3년 전교 주일 담화(2023년 10월 22일, 제97차 전교 주일)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루카 24,13-35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전교 주일을 위하여 저는 루카 복음서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루카 24,13-35 참조)에서 영감을 받아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을 주제로

마태 22,15-21(연중 제29주일 ‘가’해)

예수님께서는 잡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 전 예루살렘에서 당신을 고발하고 잡으려 드는 이들과 충돌이 있었다. 마태오는 이 사실을 “바리사이들”과 “바리사이들의 “제자들”, 그리고 “헤로데 당원들”이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의논하였다.”(마태 22,15)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마태 22,15-22)에 관한 논쟁,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과의 부활 논쟁(마태 22,23-33), 바리사이들과의 ‘가장 큰 계명에 관한 논쟁’(마태

기도 중 ‘분심分心’에 관하여

많은 신자가 기도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찾아들어 기도에 전념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이를 성사 안에서 고백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온다. 분심이고 주의력 산만이며 잡념이고 어수선함이다. 분심은 고집스러운 한 가지일 수도 있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일 때도 있다. 분심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많은 이가 분심으로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약함을 자책하며 실망하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이 신체적 훈련뿐 아니라 정신적

동행(아브라함과 이사악)

하느님과 인간의 동행을 그린 성경은 온통 인생 여정 안에서 누군가가 어떤 동행을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기록한다.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는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의 실낙원, 카인과 아벨, 노아와 홍수, 바벨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나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를 수록한 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아브라함의 인생과 그가 살아낸 동행으로 믿음의 여정 첫머리를 삼는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고향과

새 추/높을 최隹

미국의 이곳저곳을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았던 플로리다엔 유달리 새들이 많았다. 우리 동요 속에서 그저 노래로만 알았던 부리가 긴 따오기를 비롯하여 독수리, 갈매기, 까마귀, 펠리칸, 솔개, 참새, 로빈, 물새, 여러 모양의 크고 작은 두루미들, 오리들, 이름 모를 다양한 새들이 헤아릴 수 없이 각양각색이다. 기후가 따뜻하고 호수가 많아서 물과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로 새를

돈 보스코의 영명축일과 살레시오회

「지역 공동체든 관구 공동체든 원장과 관구장을 중심으로 모여 형제적 일치의 표지와 감사의 표현으로 매년 공동체의 날을 지낼 것이다.(회칙 42항)」라는 규정에 따라 살레시오회에서는 매년 ‘관구 공동체의 날’이라는 것을 지낸다. 살레시오 수녀회에서 ‘관구 감사 축일’이라고 불리는 날이다. 이는 창립자이신 돈 보스코를 기억하고, 그의 후계자인 총장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며,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들이 서로에게 감사를 드리는 날로서 살레시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0월 15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년)는 스페인 아빌라 태생으로 보통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大 데레사, 성녀 데레사 등으로 알려지고, 똑같이 10월에 축일을 지내는 성녀이므로 신자들 사이에서 간혹 소화小花 데레사(10월 1일 *참조-http://benjikim.com/?p=6225)와 혼동되기도 한다. 20세인 1535년에 「카르멜」 수녀회에 입회하여 22세 되던 1537년 11월에 서원하였다. 20여년간 수도 생활에 정진하였고, 40세에 이르러 내적 회심의 체험을 하였다. 이후 1562년 초 종교개혁의 여파로

마태 22,1-14(연중 제28주일 ‘가’해)

오늘은 ‘두 아들의 비유’,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 이어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참조. 마태 21,23-27)을 향하여 말씀하신 세 번째 비유이다. 이 비유는 바로 앞에 수록된 지난주 복음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3)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주제가 같기 때문이다. 즉, 지난주 복음의 포도밭 주인이 오늘 복음에서는 혼인 잔치를 열었으나 거절과 무시를 당한 임금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