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모든 축복의 원천,  생명의 샘,  은총의 보고寶庫이신 하느님,  좋으신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지탱하도록 숨 쉬게 하시며, 살리시기 위해 온갖 것으로 먹이시고, 그 생명을 나누도록 가족과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없이는 제가 살지 못할 것이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조의 신비에 감사드립니다. 세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주시고, 알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들, 놀라움으로 가득한 우주를 들을

마태 25,31-46(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가’해)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인 이 축일을 줄여서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라고도 하는데, 이 축일은 1925년(*1924년은 아돌프 히틀러가 ‘Mein Kampf’라는 저서를 발간하여 소위 독일식 사회주의인 나찌즘을 주창하며 세계의 왕이 되고자 하던 시기였고, 1925년은 러시아에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그 뿌리를 깊숙이 내려 세계 제국을 꿈꾸어가던 시기였다. 오늘도 소위 G2는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툰다) 교황 비오 11세 교황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이는

음악의 수호성인 성녀 체칠리아(11월 22일)와 남편 발레리아노 순교 성인

11월 22일은 성녀 체칠리아(~230년?) 축일이다. 로마에는 그녀를 기리는 성녀 체칠리아 성당이 있으며, 그녀의 순교를 기리는 손가락 세 개(삼위일체이신 하느님)와 하나(한 분이신 하느님)을 편 대리석 조각상은 로마를 순례하는 많은 이의 기억에 남아있다. 많은 여성이 체칠리아 성녀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취하고, 더구나 음악의 수호 성녀로 알려진 성녀는 많은 음악가의 사랑을 받는다. 초대 교회의 전통에 따를 때 성녀 체칠리아는 부모의 주선과 권유를 받아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고, 결국 순교한

사회 정의

사회 정의는 소위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어떻게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들은 누구일까? 표준어보다는 사투리를 거칠게 쓰는 사람들, 맵시 있게 차려입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몸을 가린 사람들, 곱게 차려입고 주일에 교회나 성당에 가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로 안달이 나서 점집이나 삼신 할매를 먼저 찾는 사람들, 작품이나 예술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장바닥에 내다 팔

메레아(2)

Ⅴ. 예수님과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메레아(1)

(번역글, 제릴린Jerilyn E. 펠톤Felton 著, ‘스승님의 친구The Master’s Companion’, Saint Mary’s Press, 2007년 * 20년간의 개인 사업, 임종을 앞둔 남편의 간병, 사목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제릴린 펠톤은 ‘거룩한 이름이신 예수님과 마리아의 수녀회(Sisters of the Holy Names of Jesus and Mary)’ 공동체의 평신도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는 개들과 함께 하는 사목적·영적 사목 모델을 개발했다. 그녀는 이른바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다음 이야기(요한 8,1-11)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라자로와 첼랴(루카 16,19-31)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루카 16,19-22) 라자로의

사랑 애愛(2)

어떤 광고에서 ‘사랑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관련 사이트를 홍보하는 내용을 보았다. 과연 사랑을 찾기가 그렇게 쉬울까? 영국의 시인 오든W. H. Auden(1907~1973년)의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를 찾아 다시 읽었다. 시인은 『…그는 나의 북쪽이고 나의 남쪽, 동쪽이고 서쪽…나의 일하는 평일이고 일요일의 휴식…나의 정오이며 나의 자정, 나의 대화이며 나의 노래였다. 사랑이 영원한 줄 알았는데, 내가 틀렸다.…이제는 아무것도

고백록(3)

3439. (어머니가 꾸신 꿈 이야기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신 뒤로)…그 꿈이 있은 뒤로도 거의 아홉 해나 걸렸고(373년경부터 382년까지에 해당한다.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란 세월 동안 온갖 욕정으로 인해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면서 살았습니다.’-제4권 1.1), 허위의 어둠 속에서 일어나보려고 간간이 용을 써 보았지만, 그때마다 변을 당하면서 나뒹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정숙하고 경건하고 침착한 과부는 희망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