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우雨

*이미지-kr.cyberlink.com

비가 퍼부었던 그제다. 우산을 받쳤음에도 신발 속에 물이 질퍽질퍽한 상태로 양로원에 도착해서 대다수가 반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위한 미사를 드렸다. 하느님을 나눠주는 영성체 때는 반드시 보조자가 물 한 컵으로 입을 적시게 한 다음에야 하느님을 밀어 넣듯 먹어야 하는 미사이다. 치과의사인 딸이 미사예물을 드리라고 오만 원을 드리면 색깔 비슷한 오천 원으로 바꿔치기해서 미사예물을 놓는 바오로 할아버지가 그날은 불안하게도 웬일인지 봉투도 없이 촛대 옆에 그냥 만 원짜리 한 장을 놓았었다. 수녀님들께서 고백성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젊어서 많이 했으니 안 해도 된다고 주장하시며 거부하시는 할아버지이다. 미사 후에 수녀님들이 나누자며 싸 주신 과자와 빵 봉지를 속으로 귀찮아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고 다시 우산 받쳐 들고, 관대한 국가의 배려로 제공되는 공짜 지하철을 바꿔 타가며 찝찝한 땀 냄새와 쉰 냄새, 이리저리 비끼면서 살이라도 닿고 우산들이 닿으면 섬찟 놀라고 몹시 불쾌한 상태로, 그래도 지하철의 마지막 목적지인 암사역에 도착했다. 아뿔싸, 머피의 법칙처럼 방금 지나간 마을버스는 정류장 표시판에서 2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예고한다.

신발과 양말, 그리고 발이 따로따로 느껴지며 바지는 무릎관절 위까지 젖었고, 우산은 꼭지에서 정수리 위로 한 방울씩 똑똑거리는데,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저녁 겸 소주나 한 병 할까 싶은 생각에 신호등 기다려 횡단보도를 건너가면서까지 암사역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돼지갈비 집도 있고 순대국 집도 눈에 띄었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박사’를 넘어 ‘밥사’, ‘밥사’를 넘어 ‘술사’,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던 지론이 어느새 도망치고 말았다. 젊은이들 사이에 ‘혼밥’과 ‘혼술’이 유행이라서 나도 해 볼까 싶었는데 해 보지 않은 짓을 선뜻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해 보지 않은 짓을 몸으로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내면에서 어쩜 그렇게 쉽게 기만하는 것일까?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루카 17,20) 하였고,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히브 11,3-공동번역) 하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산다고 하면서도 우선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시선을 더 두렵게 느끼면서 산다. 가난한 사람들이 힘들 장마와 폭우에도 나는 낭만이었던 떠나온 곳을 떠올리고, 어느새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의 건너편에 죄스럽게 앉아 여전히 글자 타령과 넋두리만 늘어놓는다.

***

새들이 낮게 나는가 싶더니 움직임이 뚝 그치고, 주변이 조용해지며, 장난꾸러기 다람쥐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고, 멀리서 번개가 어렴풋이 번쩍이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하늘 가득하던 하얀 구름이 슬슬 어두운 구름으로 덮여 어두워지며, 바람이 북쪽에서 불기 시작하다가 천둥이 잦아지며 소리가 가까워지면, 곧 비가 온다는 징조이다. 허리케인 시즌이 되어 며칠을 두고 1년에 내릴 비가 한꺼번에 오듯이 내릴 때 비로소 우기 시즌인 줄 알았던 것 같은데, 작년과 달리 금년에는 비가 잦다. 이것이 플로리다의 장마일까? 작년 이맘때는 이러지 않았으니 플로리다의 장마는 해거리를 하는 것일까? ‘장마’라는 단어가 한자 말인 줄 알고 찾았다가 16세기부터 ‘댱마’라고 쓰던 우리 말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을 알고 머쓱해진 적이 있다.

‘비 우雨’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 글자를 부분으로 삼아서 만들어진 또 다른 글자들은 300개가 넘는다 하니, 가히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하는 땅 사람들의 삶과는 뗄 수 없는 글자이고, 때와 철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일상과 연관되어 있다. 구름 운雲, 구름무늬 문雯, 눈 설雪, 번개 전電, 우레 뇌/뢰雷, 벼락 벽霹, 벼락 진震, 우박 박雹, 서리 상霜, 안개 무霧, 이슬 로露, 진눈깨비 영雵 같은 몇 개의 글자만을 보아도 글자들이 다양하고 그 안에 각각의 사연이 담겼다. ‘비 우雨’라는 글자와 함께 만들어진 비의 종류만 헤아려도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장마’ 때처럼 많이 내리는 비만 헤아려보더라도 매실이 누렇게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라서 매우梅雨(매화나무 매), 오랫동안 내리는 비라서 구우久雨(오랠 구), 숲처럼 쏟아지는 비라서 임우霖雨(장마 림/임), 연이어 내리는 비라서 連雨(잇닿을 련/연), 온 뒤에 또 내리는 비라서 積雨(쌓일 적), 장마가 져 물의 수위가 높게 불어나게 하는 비라서 호우滈雨(장마 호), 호탕하게 내리퍼붓는 비라서 호우豪雨(호걸 호), 비의 강도나 수준이 비교 대상을 훨씬 넘는 비라서 능우凌雨(업신여길 능/릉), 무섭고 사납게 내리는 비라서 폭우暴雨(사나울 폭) 등 다양한 말들이 있다.

이런 비들이 내리면 밖에 나갈 수 없어 방에 앉아 한참 창밖을 내다본다. 그러면 우산 파는 아들과 짚신 파는 두 아들을 두어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시름이 깊어간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천하의 불효자식이 뒤늦게 뉘우쳐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라도 지켜볼 양으로 물가에 어머니를 묻고 떠내려갈지도 모르는 어머니 때문에 비가 올 때마다 울어댄다던 청개구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살랑거리는 아지랑이와 봄비가 얽혀 봄 강(春江)을 짠다 했지만, 여름철에 내리 꽂는 장대비와 숨 가뿐 땅의 입김이 얽혀서는 왠지 모를 추억과 한숨이라는 삼베옷을 짓는다. 그래도 플로리다의 거칠고 야성적인 비는 금방이다. 언제이냐 싶게 맑은 하늘을 돌려주면서 후끈한 열기로 지겹던 비를 다시 그리워하게 한다. 보기 힘들다는 쌍무지개도 많고 여우가 시집가고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도 많다. 비는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 올 때 해 뜨는 것은 헤아리지 않으면서도, 비 올 때 해 뜨는 것을 두고는 이야기를 지었나 보다. 그렇게 해가 뜨면 하얀 구름은 하늘에 형형색색의 놀이를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금방 하늘 구름은 잡힐 듯 눈앞에 있는데, 푸른 풀밭은 멀리 끝 간 데가 없다. 그렇게 구름, 하늘, 해, 풀밭, 비와 함께 뜨거움이 지나간다.

성경에서 가장 오랜 비요 끔찍하고 무서운 비는 사십일을 두고 밤낮으로 내려 하느님 손수 지으신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려고 내린 비,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내린 비, “물이 불어나, 온 하늘 아래 높은 산들을 모두 뒤덮은” 비, 그래서 “마른 땅 위에 살면서 코에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이 모두 죽은”(참조. 창세 7장) 비이며 파라오의 못된 심보로 “우레와 우박”과 함께 내린 비이지만, 모세가 주님께 “손을 펼치자 더 이상 쏟아지지 않은 비”이며(참조. 탈출 9,13-35),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참 하느님을 섬기지 않던 바알 예언자들을 혼내주던 비(참조. 1열왕 18장)이고, 삼 년 육 개월 동안 내리지 않게 했던(참조. 야고 5,17) 비이다. 이래저래 성경의 비는 인간의 못된 행실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고 하느님의 권능이지만, 주님께 돌아설 때 멈추는 재앙이고 오히려 복이다. 하느님께서 “비가 내리도록 번개를 만드시고 당신의 곳간에서 바람을 꺼내시지만”(예레 10,13;51,16), 제때 내려주시는 비라야 복이 된다.(참조. 에제 34,26)(20181206)

4 thoughts on “비 우雨

  1. 비가 내림은
    처마 끝에 서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우산을 들고 올
    어릴적 그 어머니가 그리운 시간!!!!

    행복하세요.~^^

  2. 얼핏 예전 호스피스 센터 양로원 미사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어린아이 못지 않은 날 것의 생각과 행동들을 보고 살짝 웃었습니다. 그들의 천진난만함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던 그 날이었습니다. 비오는 날. 축축하고 갑갑한 날들이지만 그래서 찬란하게 빛날 햇님을 꿈꿉니다.

    인간의 못된 행실에 대한 하느님의 비.
    전 많이 맞아야겠네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3. 북미/캐나다 동부 서부 여러 곳에서 시작된 산불로 아직도 재해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윗 글에 제때 내려주시는 비라야 복이 된다는 말처럼, 근간 북미에 뿌려진 비로 예상보다 빨리 산불이 진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빠른 자연 환경의 회복을 위해 온 인류가 노력하며 기도 열심히 합니다

  4. 성경의 비는 인간의 못된 행실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고 하느님의 권능이지만, 주님께 돌아설 때 멈추는 재앙이고 오히려 복이다. 하느님께서 “비가 내리도록 번개를 만드시고 당신의 곳간에서 바람을 꺼내시지만”… 제때 내려주시는 비라야 복이 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