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성적을 ‘에이 플러스(A+)’라고 하고, 쇠고기의 등급에서 좋은 양질의 부위를 따로 떼어 ‘투 플러스(1++)’라고 하기도 하며, 어떤 것의 최고를 가리킬 때는 알파벳의 첫 글자나 카드의 에이스를 염두에 두듯 ‘A’를 앞세우는데, A를 3개나 반복하는 AAA는 금방 최고 중의 최고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도 ‘트리플 에이(Triple-A)’를 생각할 때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손가락보다 약간 가늘다 싶은 작은 건전지이다. 그뿐이 아니다. 자동차가 필수품인 미국에서 많은 이들이 주머니나 지갑에 운전 면허증과 함께 가지고 다니는 ‘AAA 카드’가 있다. 미국 자동차 협회(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는 소액의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카드를 발행하면서 가입자에게 자동차에 대한 구호(펑크, 견인) 등의 로드 서비스와 여행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에서 외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 면허증을 1년 동안 한시적으로 국제 운전 면허증으로 발급해 주기도 하며, 또 미국 국내 면허증의 갱신 업무도 대행해 준다. 그런가 하면 ‘트리플 A’는 마이너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야구를 뜻하기도 한다. 트리플 A에는 인터내셔널 리그, 퍼시픽 코스트 리그, 그리고 메이저 리그의 독립 리그로 여겨지는 멕시칸 리그 등이 속해 있다. 이뿐일까? ‘트리플 에이 게임’은 게임 업계에서 편의상 부르는 게임의 분류이기도 하다. AAA 게임들은 대체로 많은 제작비를 투여하여 높은 수준의 게임을 제작하고 높은 판매량을 기대하면서 만드는 게임계의 블록버스터나 플래그십 같은 작품들을 말한다.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자본을 투자하여 주로 멀티플랫폼으로 발매하고, 수백만의 판매량을 기본으로 기대하는 게임이다. 물론 막대한 양의 홍보 또한 포함된다.(*이미지출처-영문구글)
살레시오회와 3A
살레시오회의 교육학에도 ‘3A’ 혹은 ‘트리플 에이’가 있다고 하면 무리가 될까? 돈 보스코 교육학의 방법론을 거론할 때 이성·종교·사랑이 그 방법론의 원리라면, 이의 실천을 위한 도구적 방법론이 되는 기초 개념들을 ‘3A’(아씨스텐자·아콤파냐멘토·아니마찌오네)라고 할 수 있다. 돈 보스코의 언어인 이탈리아말로 ‘아씨스텐자assistenza·아콤파냐멘토accompagnamento·아니마찌오네animazione’라고 읽지만 이를 영어로 옮겨 ‘아씨스텐스assistance·아콤패니먼트accompaniment·아니매이션animation’이라고 읽어도 그대로 첫머리에는 A가 반복된다. 참고로, 이를 굳이 ‘살레시오회의 3A’ 혹은 ‘트리플 에이’라고 부르는 것은 살레시오회의 고유 용어가 아니며 필자가 나름대로 편의를 위해 제안한 것임을 밝힌다.
· 아씨스텐자
돈 보스코가 살았던 삶의 자리와 살레시오회의 교육 현장은 ‘아씨스텐자’라는 말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아씨스텐자assistenza’란, 교육 현장에 교육자와 학습자가 ‘항상 함께 현존함’을 말한다. 마음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교육 현장에서 마음이 서로 오갈 어느 한 편이 부재한 상황은 살레시오회의 교육에서 생각할 수 없다. 살레시오회의 교육은 교육자나 학습자 상호의 작용이기에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 지을 수 없으나 굳이 나누어 이야기할 때, 학습자가 있거나 있어야 할 자리에 특별히 교육자는 적극적으로 항상 ‘먼저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뜻으로 살레시오회의 교육 현장에 임하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 항상 ‘5분 먼저 가 있기’를 수련한다. ‘아씨스텐자’가 교육자와 학습자 상호 간의 현존 상황일 때 교육자를 지칭하여 살레시오 고유 용어로는 이를 ‘아씨스텐테assistente’라고 부른다.[1] 살레시오회에서는 이미 여러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들인 ‘교육자, 지도자, 선생님, 상담원, 안내자, 가이드, 조력자’라는 말마디들보다 살레시오회의 고유 용어로서 ‘아씨스텐테’라고 그대로 부르기를 선호한다. 이는 뜻으로 보아 ‘함께 있는 사람, 도우미, helper, 조력자’ 정도가 될 터이지만, 서로 지지하고 고무하며 분위기를 띄워 상호 생명력이 왕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교육 현장에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현존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살레시오 역사 초기에 일본 관구의 영향을 받으면서 과거의 관련 문헌들에서 ‘임장지도·임장지도원臨場指導員’이라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던 말이다.
돈 보스코가 말하는 ‘아씨스텐자’는 자애로운 현존, 절도 있는 현존, 주의 깊은 현존, 그 무엇이나 그 어떤 도움보다도 먼저 ‘현존이 우선해야 함’을 아는 신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음의 언어’로 말하는 ‘다정한 음성’의 현존이다. 무엇을 말해주거나 주는 것보다도 ‘함께 함’에 중점을 둔다. 각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여유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상황과 만남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충실한 현존이다. 자신이 지닌 사랑이나 부와 재능과 자원,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면을 쓰지 않는 현존이다. 이러한 현존은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을 내어 주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진심으로 경청한다.(시간이 돈이라는 현대 인간은 시간의 소비자로서 주의가 산만하게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시간은 소비 대상이 아니다. 시간은 인생의 때요, 인간이 음미하고 살아갈 놀라운 현실이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 때이다. 시간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소비해야 하는 소비재가 아니다. 숙고하고 기도하며 평가하고 사랑하며 함께 지낼 시간은 없고, 소비하고 정보를 쌓기 위한 시간만이 남아버린 현대이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이 있는 바로 그 자리, 운동장, 길거리, 학교, 성당, 기차역…에서 누가 되었든 만나는 그 한 사람만을 집중하여 만났다. 우정의 현존, 편안하고 유익한, 인내롭고 뭔가를 제안하는 현존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돈 보스코였다.
· 아콤파냐멘토
이렇게 아씨스텐자를 전제한 살레시오회의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을 ‘교육한다’라거나 ‘가르친다’, 혹은 ‘지도한다’라고 하지 않고 ‘동반’(同伴/아콤파냐멘토/accompagnamento) 내지 ‘동행同行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돈 보스코의 교육학에서 교육자와 청소년들은 ‘서로가 서로를 양성한다’고 표현하는데(선생님은 학생이 있어 선생님이고 학생은 선생님이 있어서 학생이므로), 우리말에도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이미 ‘사제동행師弟同行(스승과 제자가 함께 간다)’이라는 좋은 말이 있을 뿐 아니라, 더하여 비슷한 개념으로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성장한다)’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가르침과 배움 혹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 성장하며 이끌어준다는 뜻으로 […] 아이를 가운데 두고 교사-아이-부모가 함께 성장한다는 것』[2]이다.
교육자와 학습자의 ‘동행’을 두고 이야기하다 보면 자칫 어깨동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행만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 교육자와 학습자의 ‘동행’은 ‘함께 추는 춤’, 혹은 ‘춤추는 동행’이라고 표현할 때 훨씬 더 깊고 넓은 의미를 담는다. 함께 춤추는 이들은 『미리 움직임을 정해 놓고 그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 춤을 추는 것은 발입니다. 머리로 스텝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중앙장치에서 말단으로 전해 근육운동을 지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계속 춤출 수는 없습니다. 발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스텝이 맞는지 어떤지는 발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추면 좋을지 몰라도 계속 출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수갈채를 받는 화려한 스텝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3]
특별히 교육자의 처지에서 마음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만나야 할 청소년의 마음 열쇠를 청해 얻고, 그 열쇠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될 때 ‘마음의 일’이라는 ‘교육의 춤’이 시작된다. 돈 보스코가 말하는 ‘마음의 일’이라는 춤은 어느 한쪽이 혼자 자기 멋에 겨워 추는 춤이 아니다. 함께 춤을 추는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얻어 지극한 눈빛으로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인다. 너무 꼭 껴안으면 서로 숨이 막혀 스텝이 엉키고 바닥에 나뒹굴 수 있으며, 그렇다고 또 너무 떨어져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춤을 춘다면 왠지 모를 서먹함에 춤다운 춤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어루만지고 싶은 몸으로 표현된다. 춤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행진이 아니다. 전후좌우 음악이 이끄는 대로 어우러지는 역동성이다. 스텝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순간엔 내가 몸을 던지는 그곳에 상대방이 분명히 있어 나를 잡아줄 것을 믿기에 계산하지 않고 몸을 던진다. 나를 받아주는 이가 있어 나를 던지면서 누군가와 함께 추는 아름다운 춤은 주변의 공감과 미소를 얻는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동행을 산다. 돌아보면,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이나 불만이 아닌 든든한 믿음으로 대처하게 해 준 동행, 별로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꼭 필요했기에 내 인생에 끼어든 동행,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함께 기도하고, 가르치면서 날이 갈수록 나를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해 준 동행, 내 인생의 모든 잠재적 가능성을 충만하게 열 수 있도록 부추겨준 동행, 성령께서 닿지 않으시는 곳이 없고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듯이 그렇게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게 와 닿아 나에게 힘을 주는 동행, 돈 보스코의 귓속말처럼 얼핏 순간의 짧은 한마디 말로도 내가 기도할 수 있게 해 준 동행, 가만히 있으면서도 거룩한 사람이 되게 분위기를 만들어 준 동행들이 있다. 동행이 세속적 비즈니스 논리 안에서 성공과 성취가 목표요 원리라면, 영적 비즈니스 논리 안에서는 오직 동행 그 자체만이 목표요 원리이다. 그 누구도 동행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청소년들과의 동행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청소년들과 함께 있으려 하고 그들과 함께 있을 줄(to be)을 안다. 나아가 그들에게 잡히기(to be gotten)를 기도한다. 이는 동행하는 동안 이미 그들이 성숙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다음의 동행을 위해 조용히 떠나(to be gone)간다. 동행의 단계이다. 많은 이들이 많은 경우에 동행에서 낭만을 꿈꾸지만, 결코 낭만이 아닌 동행이고, 시야에서 멀어진다 해도 오히려 점점 ‘깊어지는’ 동행이며, 상호 소유가 아닌 ‘변화’를 모색하는 동행이다. 인간과 함께 사신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도 동행은 권고요 전략이었으며 명령이었다. ※ 청소년과의 동행은 마치 탱고의 스텝과도 같다? (* 카베세오cabeceo-보다, 카미나다caminada-걷다, 아브라조abrazo껴안다, 탄다tanda-흐르다 : https://chlehrb.tistory.com/670)
돈 보스코의 교육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전제로 하는 동행이다. 돈 보스코는 『모든 청소년 안에, 설령 그가 가장 운이 나쁜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선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으므로 교육자의 첫째가는 임무가 바로 그 길을 찾는 것, 예민한 마음의 현絃을 발견하는 것이다.』[4]라고 말한다. 돈 보스코의 교육에서 동행은 『인간(인격)을 형성하는 위대한 예술(la grande arte di formare le persone)』[5]이다. 따라서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과 함께 잘 동행한다면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돈 보스코의 교육에서 동행은 필수적이며, 부성(paternity)과 모성(maternity)의 차원을 전제로 하고, 동시에 형제성(fraternity)과 상호성(reciprocity)을 전제로 한다.
· 아니마찌오네
이렇게 동반·동행·상장相長을 통해 교육자와 학습자 간에 상호 오고 가는 내용을 두고는 ‘고무鼓舞’, ‘격려’, 혹은 ‘책려策勵’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를 살레시오회의 고유 용어로는 ‘아니마찌오네animazione’라고 부른다. ‘아니마찌오네’는 흔히 ‘활성화’라고 하는 화학化學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번역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소박하게 말할 때 교육자의 처지에서 학생들 가운데에 현존하며 ‘서로 북돋우어 분위기를 띄우는 것’ 정도로 해석하여 볼 수가 있다. ‘아니마찌오네’는 기쁨과 유머, 융통성과 순발력, 그리고 즐거움과 낙천주의가 함께하는 개념이다. 전 세계 살레시오회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 그곳에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천박하지 않은 명랑함이 특이하게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살레시오 회원들은 몸으로 안다. 돈 보스코는 살레시오 집에서 함께 사는 청소년들에게 『죄만 짓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해 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하느님 앞에서 기쁨 속에 즐거워하리라.”(시편 68,4)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항상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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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가 2002년 제25차 세계 살레시오 총회에 참석했을 때 당시 일본 관구장에게 ‘assistente’의 일본말 번역을 물었더니 ‘지도원指導員’이라 한다고 했고, 이를 한자권인 홍콩 관구장에게 물었을 때는 ‘책려자策勵者(채근할 책策, 격려할 려勵)’라고 한다 했다. [2] 이철국, 『교육빅뱅』, 민들레, 2014년, 199-200쪽 [3] 우치다 타츠루, 박동섭 역,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 2012년, 156-157쪽. [4] 영문판 『돈 보스코 전기(MB)』, 제5권, 367쪽. [5] 돈 보스코, 협력자들에게 하신 영적 강화, (이탈리아어판) 살레시오가족지 5, 1881년, 6호 6.
벤자민 신부님께서 우리 개개인의 마음에 특별한 동행인이 되어주셔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