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12월 14일)

그림출처-aleteia.org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년)은 카르멜 수도회의 수도 사제(1567년 서품)로서 서품 후 운명적으로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1515~1582년)를 만났다. 테레사 수녀와 함께 카르멜 수도회의 개혁 운동에 앞장서 매진하다가 톨레도 수도원 감옥에 9개월간 갇히는 “어둔 밤”의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으며, “가르멜의 산길(바오로딸, 1993년)”, “영가(기쁜소식, 2009년)”, “사랑의 산 불꽃(기쁜소식, 2013년)” “어둔 밤(바오로딸, 1993년)”과 같은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책들을 남겼다. 교회 학자이자 교회 박사이며 스페인 언어권에 속하는 모든 시인의 수호성인이다.

매우 심오한 신비가로 알려지는 성인은 저서의 무게감으로 읽기 어렵고 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느님과의 일치를 꿈꾸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많은 교훈과 영감을 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1년 일반 알현을 통해서 “고상한 신비주의와 완덕의 정점을 향한 고난의 여정을 살았던 이 성인이 오늘날 우리와 같은 삶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할 말이 있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정화의 여정이나 신비로운 극기의 삶을 수행할 수 있는 소수의 선택받은 영혼들에게만 모범이 되고 모델이 될 수 있는가”를 물으며 성인인 그가 “모두를 위한 사람”이라고 확인한다.

교황은 그러한 답을 찾기 위해서 성 요한의 삶이 “신비로운 구름 위에 떠 있는 삶이 아니라 수도회의 개혁자로서 많은 반대, 특히 같은 수도회의 다른 수도자들로부터 반대에 부딪혔을 뿐 아니라 믿기지 않는 모욕과 신체적인 학대까지 받아 가면서 감옥에 갇혀 매우 힘든 삶을 구체적이고도 힘들게 살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았으나 그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를 썼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여행하는 것, ‘길’이신 그분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짐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라고 말하는 교황은 “성 요한이 지닌 성덕의 핵심 요소가 하느님을 향한 ‘개방성’이었으며 이는 우리 모두가 본받을 수 있는 미덕”이라고 설명하고, “성덕은 어려운 행동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이 들어오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여는 ‘개방성’으로서 하느님의 힘을 얻고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십자가의 성 요한과 같은 높은 경지의 성덕과 신비 체험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성인처럼 일상의 고통을 봉헌하며, 하느님의 사랑에 열린 성인의 개방성이라는 모범으로부터 배울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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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결국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한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이 자유롭게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해서 유한한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이러한 정화의 첫 단계를 ‘감각의 밤’이라 한다.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엄격한 자기 규제로 버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영혼의 밤’으로 나아간다. 하느님을 대신할 수 있는 온갖 정신적인 허상으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자유로워지기 위한 과정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 따를 때, 모든 정화의 여정이 늘 그렇듯이 유한한 것들에 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은 참 힘들다. 때때로 이는 기도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는 무미건조함으로 드러나거나 하느님의 부재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허망한 느낌으로 자주 나타나곤 한다. 그렇다고 이 과정이 하느님께서 영혼을 가지고 장난치시는 과정은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영혼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시기 위해 지장이 되는 어떤 것을 잘라내시는 일종의 수술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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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오는 이 밝은 희망으로 인간의 수고가 가벼워집니다. 그렇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한 없는 기다림, 신랑과 함께 기뻐하려는 열망은 무겁습니다. 기도와 한숨, 눈물과 신음으로 주님께서 어서 빨리 함께하시기를 간청합니다. 어떤 이들은 ‘내 생애에 이런 기쁨을 맞을 수만 있다면!’이라 말하고, 다른 이들은 ‘오소서, 주님! 당신께서 보내시려는 분을 어서 보내십시오.’ 하고 말하며, 어떤 이들은 ‘오, 하늘이 무너져 내 눈으로 그분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제가 눈물을 그치리이다. 오, 구름이여! 높은 곳에서 당신의 비를 내리소서. 이 땅이 당신을 필요로 하나이다. 가시덤불만을 내어놓은 이 땅이 열리게 하시어 어서 빨리 꽃이 피어나게 하소서.’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살아서 자기 눈으로 하느님을 뵐 수 있고, 자기 손으로 그분을 만질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걷고, 그분께서 정하신 신비들을 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축일은 12월 14일, 대림시기의 한복판에, 주님의 성탄을 열흘 남짓 남겨놓은 시점에 거행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남긴 성탄절 시는 어둠이 길어진 이 시기에, 또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내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시인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시인’으로, 또 ‘모든 신비가 중에서 가장 시적詩的인 분’으로 알려진다. 그의 시는 스페인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찬양을 받는다.

그의 시들 중에서 특별히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다소 낯선 듯한 시詩 한편을 부분적이나마 소개한다. 성 요한은 이 시를 통해서 특별히 육화로 인간의 배우자가 되시는 분의 본성과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진리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성탄의 아름다움에 대해 묵상하면서 이 시가 내 영혼의 어둠을 밝혀주시기를 청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 톨레도의 감옥에서 지내야만 했던 암울했던 1577년 12월 초부터 이듬해 8월 중순 사이에 쓰신 것으로 알려지는 총 40편의 시문이 <영혼과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영적 찬가A Spiritual Canticle of the Soul and the Bridegroom Christ-David Lewis (영문역)>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 시문들은 당신의 신부新婦인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한 구약성경 아가서의 의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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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해진 때가 마침내 무르익었습니다. 당신 침실의 기쁨으로 신랑이신 아드님을 내셨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신부를 껴안으시고 사랑스레 그녀의 가슴에 기대었습니다. 그러자 은혜로운 어머니께서 그분을 구유에 편하게 뉘었습니다. 거기 그 자리에 그분께서 누우시고 말 못 하는 짐승들이 그분 옆에 적당하게 섰으며 목자들과 천사들의 멜로디가 공기를 채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혼인이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느님, 아기이신 그분이 구유에서 칭얼대며 울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예물을 준비했던가요? 어머니께서는 이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그저 바라보실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하느님께서는 애처로운 신음만을 내실 뿐입니다. 결코 소유해보지 못했던 서로의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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