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6)

3499. 당신께서는 죽음을 모르는 생명이시고, 부족함이 많은 지성들을 비추어 주면서도 스스로는 여하한 빛도 아쉬워 않는 지혜이시며, 흩날리는 나무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이 다스림을 받는 그 지혜이십니다.(7-6.8)

3500. (아우구스티누스 평생의 연구 과제였고, 초기대화편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에서 죄악peccatum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악용에서 유래하고, 인생고라는 악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응보, 곧 죄벌poena peccati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3501. 제 영혼의 소리 없는 탄식은 당신의 자비를 갈구하는 커다란 비명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겪고 있는 줄 당신은 아셨는데 사람은 아무도 몰랐습니다.…끙끙 앓는 저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으로 제가 신음하던 소리가 당신 귀에는 다 들어갔습니다. 저의 소원은 당신 앞에 펼쳐져 있었고 제 눈의 빛조차 제게 있지 않았습니다.(시편 37,9-11 참조) 빛은 제 안에 있었는데 저는 밖에 있었던 까닭입니다.…그런데도 건방지게도 저는 당신께 대항해서 일어섰고 제 두툼한 목덜미를 방패삼아 주님께 대들었던 것입니다.…저의 종기腫氣로 인해서 저는 당신께로부터 격리되고 말았으며(레위 13,46 참조) 저의 얼굴은 너무도 부어서 저의 눈을 아예 덮어버렸던 것입니다.(오만으로 부풀어 눈꺼풀도 떠지지 않아 피조물로서의 자기 처지를 못 보았노라는 고백)(7-7.11)

3502. 당신 의술의 약손으로 제 부기는 가라앉았고, 제 지성의 흐려지고 어두워진 시력도 건강에 유익한 고통이라는 따가운 안고眼膏로(말씀이 살이 되셔서 우리 사이에 거처하셨다. 그 탄생으로 고약을 만드셨고 그것으로 우리 마음의 눈에 붙여 그분의 겸손을 통해서 그분의 지존하심을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셨다.) 나날이 밝아졌습니다.(7-8.12)

3503. 고상한 학문을 구둣굽 삼아 우쭐해하는 사람들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에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30)라고 하시는 말씀을 못 듣습니다.(7-9.14)

3504.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입니다.)

3505. 에사우가 이집트 음식으로 자기 장자권을 잃어버린 셈이니 당신의 장자인 백성이 당신 대신에 네발 짐승의 머리에다 절을 하였고, 마음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버렸으며(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 발 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 로마 1,23 참조)…그래서 형이 동생을 섬기게 하신 당신은 이방인들을 당신의 상속권에다 불러들이신 까닭입니다.…저 사람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버렸으며, 창조주보다는 피조물을 받들고 섬긴 것입니다.(7-9.15)

3506.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께서 저의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한숨 짓습니다.(하느님의 본질이 존재esse로는 ‘영원aeternitas’, 인식nosse으로는 ‘진리veritas’, 작용velle으로는 ‘사랑caritas’으로 정의되는 유명한 구절이다.)…“나는 다 큰 사람들의 음식이로다. 자라거라! 그러면 나를 먹게 되리라. 네 육신의 음식을 삭히듯이 네가 나를 네 속에서 변화시킬 것이 아니고 네가 내 속에서 변화되리라.” 또한 저는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죄악 때문에 사람을 훈계하셨음을, 저의 영혼을 거미줄처럼 스러지게 만드셨음을.(7-10.16)

3507. 당신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으니 존재합니다. 그 대신 당신이 존재하는 그대로가 아니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7-11.17)

3508. (“누구든지…나에게 등을 돌려 자기 우상을 마음에 품으면…나는 그 사람에게 얼굴을 돌려 그를 속담 거리로 만들겠다.” 에제 14,7-8 참조)

3509. (‘우리가 시간이다.sumus tempora.’라는 명언, 우리가 어떤 인간이냐에 따라 시간도 그런 시간이 된다.)

3510. 건강한 사람에게 맛있는 빵도 건강치 못한 입천장에는 고초요 맑은 눈에는 상쾌한 빛도 앓는 눈에는 귀찮은 것임을.(7-16.22)

3511. (오만은 부풀어 올라 맨 끝에 있는 것으로 나가면서in extima progredi 스스로 빈곤해져서 그 존재가 갈수록 위축된다.minus minusque esse.)

3512.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게로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르기 때문(지혜 9,15 참조) 입니다.(7-17.23)

3513. (추론하는 능력ratiocinans potentia은 보통 이성ratio을 가리킨다. 이보다 상위에 있어 진선미를 직관하는 능력인 오성intellegentia과 구분된다.)

3514. (존재하는 그것ad id quod est – 존재 자체로 번역할 수 있다. ‘생겨나지 않고 그냥 존재하며, 존재했던 대로 존재하고 항상 그대로 존재하는 지혜’) 하지만 제 시선을 거기에 집중할 능력이 없었으니 오히려 허약함이 되몰아치는 바람에(426년경 교부는 ‘그대가 그처럼 어렵사리 본 것을 언어로 충분히 설명을 못 했을 것이고 지금도 못 할 것이다.…그러면 지성의 예봉을 고정하고서도 저 빛을 못 보게 만든 이유는 지성의 취약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죄악이 아니면 무엇이 그대에게 이 취약함을 만들어주었겠는가? – 삼위일체론’이라고 서술한다.)

3515. (교부에게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정신 능력인 ‘기억memoria’은 그 고유한 대상을 선천적으로 ‘사랑하고 있는amans memoria’ 기능이어서 하느님께 ‘당신을 찬미하여 즐기라고 재촉하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하도록 저희를 만드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 라는 고백이 나온다. – 본서 제1권 1.1)

3516. 저는 겸손한 사람으로서 겸손한 예수님을 저의 하느님으로 받아 모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저의 가죽옷을 함께 입으실 만큼 자기들 발 앞에 힘없이 놓여있는 신성神性을 바라보고서 자기들마저 스스로 힘이 파해서 저 신성 앞에 엎드리면 저 신성께서 일어나시면서 그들을 일으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7-18.24)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