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레아(1)

(번역글, 제릴린Jerilyn E. 펠톤Felton 著, ‘스승님의 친구The Master’s Companion’, Saint Mary’s Press, 2007년 * 20년간의 개인 사업, 임종을 앞둔 남편의 간병, 사목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제릴린 펠톤은 ‘거룩한 이름이신 예수님과 마리아의 수녀회(Sisters of the Holy Names of Jesus and Mary)’ 공동체의 평신도 조력자가 되었다. 그녀는 개들과 함께 하는 사목적·영적 사목 모델을 개발했다. 그녀는 이른바 ‘네 발 달린 사목자들의 사목 프로그램’ 창시자이다. 그녀는 평생 아이스 댄싱 운동을 즐기면서 수녀님들의 사목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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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

예수님의 이야기는 끝도 없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하면서, 먼저 해 놓아야 할 말들이 있다.

성경을 두고 수도 없이 많은 학자나 성인들, 교부들이 하고자 했던 것은 앞서 옮겨놓은 요한 21,25에 따라 “이 밖에도” 많이 있는 이야기 중 하나를 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제 그러한 이야기 중 하나인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 당시, 그러니까 1세기의 문화적 상황에서 몇 가지를 짚어놓아야 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유다 사회에는 주로 남성들에 의해 통치되던 여러 종족이나 부족들이 나름대로 색깔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인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어떤 여인이 자기를 돌봐줄 남성을 만나지 못하면 그녀는 공동체가 돌봐주어야 할 책임이 되는 셈이었다. 공동체마저도 그녀를 돌봐주지 못하게 되는 경우 그 여성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죽게 되든지, 자신과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몹시 제한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또 한 가지, 개(犬)들은 오늘날의 개들처럼 지낼 수가 없던 시대였다. 양을 치는 보조견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늘날과 같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개는 이방인들의 종교적 행위와 관련이 되기 때문에 돌팔매를 맞거나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게 마련이었다. 물론, 종교적인 정결례라는 것 때문에 이방인과 관련된 것이면 어느 것이나 진흙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손사래를 쳐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동물을 만지거나 접촉하는 것은 치명적인 병 같은 것을 옮을 수 있다고 보아서 무척 경계했다. 특별히 개는 광견병을 옮기면서, 그런 병에 걸린 개에게 물리는 것은 당시 확실한 죽음을 의미했다. 아무튼 우리가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작은 검정 개, 유독 발 4개가 하얀 암캐의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메레아Merea’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그 말은 히브리 말로 ‘친구companion’라는 뜻이다.

. 하얀 네 발을 가진 검정 개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요한 4,27-28)

무덥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한낮 오후 무렵이었다. 방금 얻어 마신 깊은 샘의 물 한 잔은 가히 다시 한번 생기를 돋우는 생수였다. 물을 건네주던 여인은 방금 떠났다. 그 여인은 물이 가득 든 물동이마저 우물 옆 먼지 낀 바위 옆에 내팽개치고 서둘러 인근 마을로 뛰어갔다. 우물가에서 만났던 어떤 라삐 때문에 몹시 흥분했던 그녀는 얼굴에 둘렀던 얼굴 가리개 천마저 떨어트린 것을 모른 채 뛰어갔다.

그때 개 한 마리가 어디선지 헐떡이며 걸어와 우물가의 뜨거운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녀석의 몰골이라는 게 몰골이랄 것도 없이 엉망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써 회색인지 흰색인지도 모를 털빛이었고 몸은 비쩍 마른 모습이었다. 개도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자는 듯 물끄러미 우물가에 앉은 분을 바라보며 숨을 헐떡이고만 있었다. 필경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봐서 사람을 두려워할 법도 했지만, 기가 죽어 뛸 힘마저도 없어 보였다. “스승님, 주의하십시오. 손을 대지 않으셔야 합니다. 병이 옮을지도 모릅니다.” 하고 옆에 있던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도 스승이라는 분은 몸을 굽혀 개를 쓰다듬더니 옆의 물동이에서 두 손으로 물을 떠다가 자기가 한 모금을 더 마신 뒤 개에게 내밀었다. 개는 손바닥의 물 한 방울까지라도 핥듯이 정신없이 마셔댔다. 그리고 스승이라는 분은 뭔가 상처가 나서 진물이 흐르고 있는 개의 발을 깨끗한 물로 씻어주고 자기 옷자락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 상처들이 곧 나았다. 그리고는 우물가의 여인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요깃거리 빵이라며 건넨 빵에서 한 조각을 떼어 개에게 주었다. 이에 감사라도 하듯 개는 그 빵조각을 허겁지겁 받아먹더니 감사의 눈빛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이내 그분의 손을 혀로 여러 번 핥았다. 먼지 낀 그 녀석의 머리를 몇 번이고 부드럽게 쓰다듬던 스승은 마침내 일행과 함께 다시 한번 길을 나섰다. 잠시 후 유난히 흰, 그러나 먼지가 잔뜩 끼어 그 색을 구별하기도 힘들 만큼 더러워진 네 개의 흰 발을 가졌던 개도 일어나,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마을 쪽으로 향해 먼지를 일으키며 걸어가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배부르게 저녁을 마친 남자들의 일행이 늦은 저녁 살랑거리며 다가오는 저녁나절의 기분 좋은 봄바람을 맞으며 집 밖으로 나왔다. 가끔은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 야고보,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나머지 아홉, 그래서 열둘이나 되는 일행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사라라는 사마리아 여인, 그러니까 예수님이 낮에 우물가에서 만났던 그 여인의 집에서 후한 저녁 대접을 받은 것이었다. 그들은 투박했지만 나름 저녁이 맛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었다고 저마다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나없이 좋았다는 것은 멜론과 함께 내놓은 괜찮은 포도주였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베드로는 사마리아 여인이고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그런 여인네 집에서 이렇게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지 스승이신 예수님께 의아스러움을 표현하였다. 예수님은 너무 염려할 것이 없다고 제자들을 안심시켰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지만 사라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고 설명해 주었다. 사실 그녀에게 뭔가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동거하고 있던 누군가가 예수님의 일행이 도착하기 전 급하게 소지품이라는 것들을 챙겨 떠난 것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 남자의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는 않았다. 잠시 뒤, “스승님께서는 어디로 가신 것이지?” 부드러운 저녁 바람을 즐기던 베드로가 다른 일행에게 물었다. “알잖아, 베드로. 스승님께서는 식사 후에 조용한 곳을 찾으시곤 한다는 것을.” 하고 요한이 대답했다. “나도 그러리라 생각은 했지만…” “맞아. 요한, 스승님께서는 좀 일찍 저녁기도를 하고 싶으신 것일 거야. 틀림없이 저 사라라는 여인이 동네방네 소문을 냈을 것이고,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스승님을 뵙겠다고 몰려오지 않겠어?” 하고 야고보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참. 그렇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우리 기적 선생님을 뵙겠다고 떼로 몰려오는 그 현장에 나는 좀 빠졌으면 좋겠는데…어떡하지?” 베드로가 금세 씩씩거리며 말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 베드로. 우리 스승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곤란한 처지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배려해주시잖아!” 요한이 대답했다.

예수님은 마을의 뒷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상쾌한 저녁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그는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있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땀을 훔치면서 또 한편으로 그 손은 허리춤에 매어놓은 테필린tefillin이라 부르는 성구갑(구약 모세오경과 같은 성경 구절을 적어 몸에 매다는 성구 상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성구갑은 기도할 때 이마나 몸의 어떤 부분에 이를 묶어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성구갑은 가죽으로 만든 조그만 상자였다. 이는 어떤 때 몇 개씩 될 때도 있었다. 하나는 팔에 묶기도 하고, 다른 하나는 가슴에 묶기도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머리에, 가슴에, 그리고 손발에 스며들기를 바라시며 기도 준비를 하였다. 유다 전통이기도 했던 이런 방식에 예수님은 매우 충실하였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예수님은 마을에서 벌어질 상황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었다.

예수님은 이미 그날 저녁에 수많은 아픈 사람들과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고, 또 다가오는 며칠 동안 그 사마리아 마을에서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기도하시던 중에 예수님은 자기 뒤편 덤불이 부스럭거리면서 뭔가가 자기를 방해하는 것을 느꼈다. 돌아보니 낮에 우물가에서 만났던 바로 그 개였다. 예수님이 걸어오던 그 먼짓길에 이어 마을 뒷동산의 언덕 위까지 그 개가 따라오고 있었다. 예수님은 조심스럽게 성구갑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고개를 숙여 그 개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내 개는 그에게 다시 만나 반갑다는 듯이 생기가 도는 듯하였고 귀가 쫑긋하고 바로 섰다. 예수님은 그 개가 다시 보니 너무나도 말랐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예수님은 낮에 그 개에게 물을 준 뒤로 그 개에게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지 잠시 의아스러워졌다. 예수님은 개를 다시 만나 반가웠다. 그리고 개는 예수님의 부드러운 손을 느끼면서 잠자코 땅바닥에 엎드려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배가 고프니?” 하고 물으신 예수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낮에 먹었던 사라의 빵 조각은 어땠니?” 하시며 예수님은 문득 자기 보따리에 들어있는 사라가 준 빵에서 남아있던 빵을 꺼내어 개에게 나누어주었다. 개는 말없이 그 빵조각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이제 되었다는 듯이 행복하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예수님은 개의 심신이 다시 생기를 얻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내가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어!” 하고 예수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착한 개야, 아무래도 기도를 나중으로 미루어야 하겠다.” 하신 예수님은 다시 언덕길을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빠르게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그는 이미 마을에 당신의 위로와 치유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다시 사라의 집에 돌아왔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사라는 등잔불을 몇 개 켜서 집 안팎을 비추도록 입구와 여기저기 몇 군데에 놓아두고 있었다. 집이 좁아 집 안에 들어설 수 없는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고,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유일하게 예수님뿐이었다. 집에 들어서던 예수님은 문득 누군가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탈리쓰talith(기도할 때 사용하는 보자기 같은 것)를 움켜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이 돌아보니 어떤 어머니가 안고 있는 조그만 아기였다. 예수님은 안심시키듯 측은히 여기는 눈으로 그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기가 마치 뭔가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옹알이를 하면서 방긋 웃었다. 아기는 이미 오랫동안 열이 나면서 앓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이내 아기가 열이 떨어지면서 다 나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를 보며 옆에 있던 사람들이 감탄하며 놀라워하였다. 최근 몇 주 동안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애처로운 아기와 그 어머니의 사연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분한 아기의 엄마가 깜짝 놀라며 이제는 아기가 죽지 않게 되었다고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라는 이리저리 밀쳐대는 군중에게 제발 좀 차분하게 기다려달라고 사람들을 정돈하려 애쓰고 있었다. 사라는 예수님에게 돌아서서 다른 마을에서 했던 것처럼 이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씀 좀 해 주실 수 있는지를 청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문지방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절반은 집안에, 절반은 집밖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리고 말을 시작하였다.

“하느님 나라는 부상을 당해 앓고 있는 충실한 양치기 개와 함께 하는 목자와 같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치기 개의 상처를 마음 아파하며, 마치 친구가 아플 때 그 친구를 극진하게 간호해주는 것처럼 보살펴줍니다. 목자는 자기 개가 얼마나 오랫동안 성실하게 자기를 도와주었는지 기억하고 무척 외로웠던 광야의 밤을 함께 지내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회상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강아지 때부터 길들고 자라면서 온 가족에게 기쁨을 주었던 그간의 오랜 세월을 기억합니다. 목자는 자기 개를 극진히 간호합니다. 이는 단순히 다시 부려 먹기 위함이 아닙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그 기쁨을 다시 나누기 위함입니다. 저는 진실로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 우정을 나누시며 병들어 아파하는 그 백성을 낫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이 개처럼…양 떼를 돌보는 임무를 지니지 않은 개도, 자기 역할이 있게 마련입니다.…” 마침 예수는 군중들 맨 앞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자기가 만났던 그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는 더욱더 앞으로 나오고 싶었으나 감히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 일원이 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갑자기 군중들은 자기들 가운데 정말 그런 개 한 마리가 엎드려있는 것을 보고 숙연해졌다. 어둠 속에서 살그머니 끼어 들어온 바로 그 개가 예수님이 말한 비유의 주인공이 되어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개를 여느 때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한 채, 그 개가 예수님 앞에 편히 엎드려있도록 간격을 두고 피해 일제히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람들 옆에 너무나도 가까이 온 그 개가 혹시라도 자기들을 물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개는 편안했다. 땅바닥에 늘어져 예수님의 오른쪽 샌들 위에 고개를 젖혀 기대더니 잠이 오는 듯했다.

예수님이 다시 군중을 향해 말씀을 시작하셨다. “진실로 말씀드리거니와 이 사회가 불법자요 나쁜 짓을 했다고 명찰을 붙여놓은 사람들에게도 있을 자리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여러분들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이 사회가 쫓아낸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리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분의 왕국에서는 할 일이 있습니다.”

잠시 후에 예수님이 말을 멈추고 제자들을 항하여 “이제 우리는 마을 뒷산 쪽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자. 여기 있는 우리 친구들이나 사라도 좀 쉬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였다. 그 말을 끝으로 예수님은 일어나 사라의 집에서 나오는 등잔 불빛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더 읽을거리 : 마태 18,10-14 루카 15,1-7 요한 4,1-38;10,1-18

☞생각을 위한 씨앗들 : 예수님과 여인의 만남, 예수님과 개의 만남, 예수님과 군중들의 만남, 예수님과 앓고 있던 아기와의 만남, 개와 군중들의 만남, 제자들의 반응, 내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의 방식, 나의 선입견, 나의 불편, 나의 꺼림, 평판이 그리 좋지 않은 사라의 집에 군중이 몰려든 이유, 사라의 집에 동거하던 이로 보이는 이가 급히 집을 나간 이유, 불법자요 나쁜 짓을 했다는 이들을 위한 자리 등등

. 뒷동산에서 지낸 밤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요한 4,40)

군중들이 떠나간 뒤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아브너라는 마을 지도자 격인 사람이 소유한 마을 뒷동산 쪽에 있는 어느 작은 포도밭으로 들어섰다. 이미 사라가 그분에게 예수님과 그 일행이 머물 수 있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을 해둔 터였다. 사실 그녀는 예수님의 일행을 자기 집에 모시고자 했으나 열세 명이나 되는 남성들을 자기 집에 모신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사라네 집에는 그만한 방이 없었다. 마침 사라가 다가와 어두워진 뒤에 차가워진 밤바람에 자기 옷깃을 여미며 예수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가 제집에 일행을 모실 수 없어 죄송합니다. 여기 작은 등잔은 하나 준비했고요, 추우실 것 같아 장작, 그리고 이것저것을 좀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쪽 담장 같은 곳을 등지고 계시면 짐승들이나 도둑들을 예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쪽엔 여러 번 그런 동물들이나 안 좋은 사람들이 나타난 적이 있거든요. 그러나 이런 모닥불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마침 여기 주인인 아브너씨가 여기에 짚단들도 많이 두어서 불편하시더라도 다소 안락한 잠자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빵과 물도 좀 가져다 놓았습니다. 밤중에 시장하실까 봐서요. 동이 트면 다시 찾아뵐게요.” “사라, 참 마음이 좋은 분이군요. 이 정도면 저희에게 충분하고 또 과분합니다.” 하고 예수는 짚단을 들어 옆에서 잠자리를 만들고 있던 요한에게도 한 단을 건네주며 대답하셨다. 짚에서는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풍겼다.

“아, 참. 스승님. 제가 잊어버릴 뻔했네요. 아브너씨가 장작이 떨어지면 자기가 소유한 저 장작더미에서도 필요한 만큼 써도 좋다고 하셨어요. 낮에는 그렇게도 뜨겁다가 밤에는 상당히 추워지거든요. 모쪼록 오늘 밤에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살펴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난 사라는 캄캄해진 어둠을 뚫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

“예수님, 여기 나름 괜찮은데요.” 하고 자리를 잡은 베드로가 말을 건넸다. 그는 자기가 걸치고 있던 다소 두꺼운 망토 같은 겉옷을 펴서 짚 더미 위에 깔았다. “이렇게 하면, 이건 완전한 베개가 되겠는걸요. 호화로운 궁전에서 자는 헤로데 왕보다도 틀림없이 우리가 더 편안하게 잘 잘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계속 말을 했다. “타대오, 거기 그 빵 좀 이쪽으로 건네주겠는가?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도 굶주린 강아지처럼 이렇게 금방 배가 고프네그려.” 하고 야고보가 말했다. 빵 한 조각을 떼어 야고보에게 건네준 타대오는 잠자리를 만들고 있는 제자들 곁에서 모닥불가를 왔다 갔다 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사라가 말한 대로 모닥불은 두 발이 달렸건 네 발이 달렸건 그 누구에게라도 반갑지 않은 추위라는 차가운 밤공기로부터 일행을 지켜줄 것이었다. 타대오는 약간 사그라지는 장작불과 약해지는 등잔불을 보며 장작을 몇 개 더 넣었다. 장작들을 세모꼴로 쌓으며 타대오는 밑으로부터 불이 타올라 불꽃들이 넘실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불빛이었다. 어둠 속에 노랑, 혹은 주황이기도 하고 푸른 빛이 감도면서 붉은빛을 내는 아름다운 색이었다. 한 나무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이내 다른 쪽 나무로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면서 커다란 불이 되었다. 누구나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예수님도 불꽃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제자들은 저마다 맨날 그랬던 것처럼 사라네 마당에서 만났던 그 개에 관련된 비유에 대한 숨은 뜻과 내용을 예수님이 풀이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감히 아무도 그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필요하면 예수님이 먼저 그 말을 시작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제자들이 혹시 나름대로 해석해서 잘못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은 그도 바로잡아주실 것이었다. 옆에, 혹은 여기저기에 엉켜있는 지푸라기들처럼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렇게 피곤한 일행의 눈꺼풀 위로 스르르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마을 쪽으로 향한 입구 쪽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개였다. 귀가 축 처지고 꼬리는 뒷다리 사이에 말아 넣은 채 어슬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다정하게 입으로 혀를 차듯 소리를 내자 개가 곧바로 불 가에 앉아 있는 예수님 곁으로 다가와 앞발로 예수님의 가슴을 치듯이 금방 안겼다. 조심스럽게 다가왔지만 확실하게 예수님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래, 그래. 이리 와. 떨지 마.”하는 예수 곁으로 다가왔지만, 불쑥 불 가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다시 몇 발자국을 떨어져 갔다. 순간 멈칫하면서도 추운 밤공기와 배고픔이 사람들에 대한 그의 두려움보다는 더 컸던 모양이었다. 곧 개는 땅바닥에 배를 끌다시피 하며 예수님 곁으로 다시 기어 왔다.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못마땅한 듯이 모였지만, 그래도 선뜻 누구도 예수님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예수님이 손을 내밀자 개는 겸손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예수님의 손을 혀로 핥았다. 개가 마치 예수님 곁에서 불을 좀 쬐고 그렇게 있어도 되는지를 묻는 듯이 보였다. 예수님이 빵이 들어있는 자루에서 조각을 떼어 주시자 개는 예수님의 손에 놓인 그 빵조각들을 먹기 시작했다. 제자들의 못마땅한 듯한 시선을 의식하듯 예수님은 “너희는 나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 오직 인간만을 돌보신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어둠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사실 유다가 제자들의 그룹에서 떨어져 마을에 남았다가 뒤늦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마을의 지도자 격이 되는 분들하고 남아서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이렇게 돌아다니려면 아무래도 돈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며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주십사 하고 청했고 그 결과를 들고 돌아온 것이었다. 유다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동전이 가득 든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유다를 보자 개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발톱을 세우고 뒷덜미의 갈기를 세우더니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급기야 유다가 불가로 다가오자 개는 짖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부드럽게 개를 달래자 개는 곧 조용해졌다. 그래도 개는 경계를 풀지 않고 유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스승님. 이게 뭡니까? 이제 우리 일행에 길거리의 쓰레기를 뒤지는 녀석들까지 끌어들이신 것입니까?” 하고 유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오시게나, 유다. 그런데 이 녀석이 자네를 썩 달가워하지는 않는 것 같군. 아마도 자네에게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든지, 아니면 자네 곁에 어떤 악마가 있나 보네.” 예수님이 이렇게 답하시자, 유다는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스승님. 저는 여기 필립보 옆에서 자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필립보 옆이라는 곳은 개에게서 최대한 떨어지면서 동시에 모닥불의 따뜻함은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자리였다. 개는 여전히 으르렁대면서 유다를 향해 세 번을 더 짖더니 예수님이 자기에게 허락하였다고 여기는 예수님 옆에 먼지를 뒤집어쓴 몸을 눕혀 자리를 잡고 이내 잠이 들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러보며 “이제 우리 모두 쉴 시간이구나. 내가 모닥불을 좀 더 지켜보다가 잘 터이니 먼저들 자게나.” 하였다.

자정이 좀 지났을까 싶었을 때였다. 개가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예수님도 언뜻 잠이 깼다. 일행이 곤하게 잠이 든 뒤였다. 포도밭의 울타리 쪽을 노려보던 개는 선뜻 일어나 앞발을 모두고 약간 뒤쪽으로 체중을 실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더니 낮게 그르렁 소리를 냈다. 예수님은 뭔가 안 좋은 수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였다. 개는 귀를 바짝 세우며 저편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뭔가 어떤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많은 생각들이 일행의 머릿속에 순간 오가고 있었다. 갑자기 개가 신경질적으로 짖기 시작하였다. 몇몇 제자들이 일어나 등잔불을 다시 켜고 모닥불의 빛에 의지하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뛰쳐나간 개는 울타리 쪽으로 뛰어가더니 담장을 넘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담장을 넘지는 못한 채 몇 번이고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지곤 하면서도 뛰어올랐다. 제자들이 가서 담장 밖을 살펴보았으나 너무나도 깜깜한 밤이라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결국 제자들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예수님은 모닥불에 장작을 몇 개 더 집어넣고 있었다. 다시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나무들이 타닥거렸다. 예수님은 불이 잘 붙은 장작을 하나 집어 드시더니 높이 들어 멀리까지 비춰보셨다. “뭘 보셨어요? 스승님!” 베드로가 급하게 묻자, “아니야, 베드로. 개가 아마도 어떤 위협적인 상황을 감지했었나 봐.”하고 스승이 대답하였다. “아마도 사라가 우리에게 얘기해준 대로 도둑들이나 어떤 야생 동물들이 왔었나 봐요.” 하고 야고보가 모닥불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말했다. “뭐가 되었든 네 발을 가진 작은 요 녀석이 우리를 구해준 셈이야!” 하고 예수님이 말했다. 이어 예수님은 “가끔은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닌 본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해내기도 하는 법이지. 기억들 하여라. 사소한 일처럼 보일지라도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하자, “혹시 또 모르니 불침번이라도 세울까요?” 야고보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야고보, 불침번은 필요 없을 것 같아. 우리가 뭐 가진 게 있어? 그리고 여기 절대 잠들지 않는 우리의 ‘친구’, 숙련된 불침번이 있지 않은가? 이제 앞으로는 이 녀석을 ‘메레아Merea’라고 부르기로 하세.” 예수님이 밝은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이제 정말 잠 좀 자도록 하세. 날이 밝아 내일이면, 또 내일 몫의 슬픔과 기쁨이 있지 않겠는가!”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일행은 모두 다시 잠을 청했다. 메레아도 뿌듯한 평화 속에 옆에서 잠드시는 스승을 보며 자기 자리를 지켰다.

해가 뜨고 멀리 동이 트면서 주변이 모습들을 갖춰가면서 다시 생명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 때 새들도 이 나무 저 나무를 바쁘게 옮겨 다니며 아침 기도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제자들도 하나둘씩 잠이 들었던 짚 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강렬한 빛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늘 그랬듯이 제자들은 눈이 떠지면서 거의 기계적으로 스승이 있던 자리에 눈이 갔다. 스승은 거기에 없었다.

“틀림없이 늘 하시던 대로 기도하시러 먼저 일어나셨을 거야.” 하고 베드로가 요한에게 말하였다. “늘 그분이 첫 번째이시잖아!” 야고보가 타대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맞아, 그분은 한 번도 아침, 낮, 저녁기도를 거르는 법이 없으시지.” 하고 필립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면서, “그런데 스승님은 율법에 충실한 분이시면서도 좀 과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해.”하고 덧붙이자, “자네 말이 맞아, 필립보. 스승님은 언제나 율법의 규정을 넘어 그 이상을 하시는 분이시지. 그분은 단순한 율법 조문의 글자들을 넘어 율법의 심장, 그 법의 의미를 새기려고 노력하시는 분이고말고. 나처럼 열성분자였던 놈마저도 어떨 때는 기가 질릴 정도로 하신다니까.” 하고 열혈 당원이었던 시몬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야고보가 되묻자, “생각 좀 해 봐, 야고보. 우리의 착하신 스승님께서는, – 하느님 그분을 축복하소서! – 우리들 안에 길거리의 쓰레기를 뒤지는 녀석까지 끌어들이시고 그에게 이름까지 붙여주시지 않았어? 이름도 참, ‘친구’라니! 나도 내 친척 중에 자기 자녀 중 귀여운 녀석 하나를 ‘양’이라 부르는 것까지는 보았지만 말이야.” 하고 열혈 당원 시몬이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그 녀석 우리 일행에 끼어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해!” “스승님께서 그 녀석을 우리 일행에 끼워주었다고 설마 너 화까지 난 것이야, 시몬? 너 개들을 좋아하지 않아?” 야고보가 물었다. “내 생각엔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율법에도 길거리의 개들은 멀리하고 쫓아버리라 하였잖아. 혹시 병이라도 옮길 수 있어서 말이야. 난 그저 모세의 율법을 따르자고 하는 것뿐이야.” 열혈 당원 시몬이 반대라는 식의 몸짓 손짓을 하며 다소 높아진 억양으로 말했다. “그래도 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봐.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에게도 그들의 기분을 건드리고 심지어는 적대감을 맞으면서까지 솔직하게 당신이 하실 말씀을 다 하시는 분이시잖아.”

유다가 기지개를 켜더니 다소 냉정하신 어투로 대답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하고 덧붙였다. “그 개 녀석은 내가 어젯밤에 돌아왔을 때, 마치 악마라도 보듯 나를 대하고 나하고 싸워보자는 듯이 짖어대며 으르렁대기까지 했지.” 하고 말했다. “그걸 유다 자네에게만 그런 것으로 생각하지는 마.”하고 야고보가 대답했다. “우리 식의 종교에서 보면 어떤 개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 사실 우리는 걔네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잖아!” “아니야, 나에게만 유독 그러는 것 같았어.” 하고 유다가 말하면서, “어쨌든 난 스승님께 좋은 소식 하나를 전하게 되었어. 어젯밤에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모르데카이라는 마을의 관대한 지도자 중 한 분이 우리를 위해 은화를 다섯 개나 주셨거든.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이야.”라고 말했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이라니? 뭘 말하는 거야?” 하고 누군가가 되물을 때, 사라와 예수님을 찾는 몇몇 마을 사람들이 음식과 포도주를 가지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제자들의 토론이 중단되었다. “제 생각에 스승님께서는 보통 때처럼 조용한 곳으로 아침 기도를 하러 가셨을 것입니다. 저희도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하고 베드로가 그들에게 저쪽에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어 “안녕들 하십니까?” 하는 예수의 활기차고 상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벗님네들께서 이런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아침을 함께 드시지요.” 하고 예수가 자리를 잡자 모두 따라서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음식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아, 이 녀석은 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문득 메레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우리 식탁엔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은 우리들의 친구 메레아랍니다. 이 녀석이 여러분들에게는 그 어떤 해도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빵이며 치즈, 물고기들로 푸짐한 아침을 나누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 말하고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메레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졸면서 마치 집에 있는 듯이 만족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읽을거리 : 레위 11,27-28 요한 4,39-45

☞생각을 위한 씨앗들 : 아브너씨의 호의, 사라의 환대와 세심한 배려, 타오르는 장작불의 빛깔, 타오르는 불빛 앞에서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유, 개가 예수님께 선뜻 가까이 오지 못하는 이유, 유다의 역할, 개가 유다를 보고 유별난 행동을 했던 이유, 예수님의 이른 기상과 아침기도 습관, 이미 예수님이 개에게 이름을 붙여준 뒤에 개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제자들의 논란, 푸짐한 아침을 나누는 자리의 주제

. 예수님과 가나안의 부인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22-28)

작은 마을은 한 곳에 모든 것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장터도 그쪽에 있었고, 집들과 가게들, 그리고 흰색 회칠을 해 놓은 회당도 그쪽에 있었다. 다소 소금기를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뜨거운 오후의 햇빛을 가려주고 있던 무화과 나뭇잎들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예수님이 어느 큰 무화과나무 그늘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제자들은 그리 멀지 않은 뒤쪽으로 처져있었다. 예수님 뒤를 따르던 무리도 지쳐갔다. 함께 걷던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늦여름의 태양빛과 선선한 해풍을 즐기며 스승님 주변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가나안 여인 하나가 있었다. 이미 그녀는 나자렛에서 온 라삐 한 분이 많은 병자를 고쳐주고 심지어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까지도 치유해 준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예수님 앞으로 나와 엎드려 도움을 청했었다. 그 가나안 부인의 이름은 라합이었다. 이미 오래전 조상 때부터 갈라진, 결국 이방인 여자였다. 여인은 그녀의 어머니가 필시 옛날 두 명의 유다 정탐꾼을 구했던 여호수아 때의 영웅을 기리면서 그 이름을 붙여주었을 것이었다. 원래 라합의 어머니도 창녀였다. 그런데도 라합은 자기나 자기 친정어머니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나밖에 없는 자기 딸을 잘 키우려고 애썼다. 라합은 자기 딸을 유다 가문에 양녀로라도 들여 보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곤 했었다. 라합의 어머니는 일찍이 티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오아시스 쪽에서 건너온 이상한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래서 혼자가 된 라합은 딸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중병이 걸려 죽어가던 그 딸을 고쳐주신 분이 바로 나자렛의 라삐라는 바로 그분이었다.

그녀는 거지였고,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하고 대가를 얻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있었다. 그녀에게는 음식과 의복, 그리고 잠자리를 얻기 위해서 몸을 파는 것이 그리 나쁜 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었다. 그녀에게 인생은 고달팠다. 특별히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 그런 밤이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이런 처지에서 라합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라삐라는 분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이 그녀의 인생에서 정말이지 뭔가를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합은 그 라삐라는 분이 자기에게도 뭔가를 해 주십사하는 청을 듣게 된다면 이를 기쁘게 들어줄 것으로 믿었다. 그녀는 낡아서 헤지고 더럽기 짝이 없는 갈색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쓴 채 얼굴을 가리고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딸을 고쳐주신 뒤로는 예수님께서 선뜻 나서시어 가련한 당신의 딸에게로 다시 다가오거나 말을 걸어주시지 않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면서는 황금처럼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라합은 군중들의 한쪽 끝에서 조그마한 동물의 그림자를 보았다. 하얀 네 발을 가진 검정 개였다. 라합의 생각에 그 작은 개도 이 젊은 스승과 일행이 되어 같이 동행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것들이 라합이 전에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예수님은 마치 자기 자녀들에게 음식을 주시듯이 그 개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예수는 정해진 규칙 따위를 개의치 않는 분이고, 강도나 창녀들과도 그들이 지내는 곳에서 어울려 시간을 보내신다고도 했었다. 이런 이상한 광경을 보면서 라합은 “나 같은 사람도 저분을 대접할 수 있을지도 몰라. 잘 났다는 사람들이 잘났으면 뭐가 그리 잘 났겠어. 꼭 그런 사람들만 그분께 뭘 해드릴 수가 있담?” 하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 마을 외곽에서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예수님이 축제를 지내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또 누군가는 예수님이 조금 더 북쪽 큰 항구가 있는 마을에도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하러 갈 것이라고 했다. 나자렛에서 오신 라삐라는 분이 뜨거운 여름철의 바람 한 줄기처럼 그렇게 휙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마을의 지도자들은 다른 많은 유다 병자들이 축복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라합의 어린 딸 쉬프라가 완전히 완쾌되어 시장 바닥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노래도 하고 웃고 떠드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우물가는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 곳이었고 온갖 말들이 퍼져나가는 곳이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미리암이라는 여자가 “그 예수라는 분은 좀 이상해. 아니 글쎄 창녀요 악마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년의 딸을 고쳐주다니…” 하고 말했다. 나오미라는 여자는 마을 우물터 한쪽에서 물동이를 머리에 이면서 옆에 있는 다른 여자들에게, “아니 글쎄, 그분이 같이 데리고 다니는 그 개새끼만 봐도 그렇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라삐로 알려진 분이 그렇게 개를 달고 다닌다니, 쯔쯔쯔.” 하며 큰소리로 험담을 했다. “그래, 그래. 나오미, 내가 어디선가 정통한 소식통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이 라삐라는 분은 산헤드린에 있는 권력자들 눈 밖에 나서 적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는 거야.” 이 말은 미리암이 나오미를 만나서 입을 손으로 가리며 낮은 목소리로 전해준 말이었다. “입을 조심해!” 나오미가 말을 받으며, “글쎄 내가 듣기로 자기 고향 나자렛에서는 회당에서는 쫓겨나기도 했다던데?” 하였다. “글쎄 말이야, 나오미. 착한 사람들이 아니고 저렇게 궂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다니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하고 미리암이 한숨을 쉬었다. “쉿, 조용, 조용! 저기 총애를 받는 분이 오시네.” 물을 긷던 여인들 곁으로 라합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님을 만난 뒤로 라합은 과거에 한낮 사람들이 뜸해질 때까지는 감히 물을 길으러 나오지도 못하고 동네 한쪽에 숨어 지내듯이 살았던 때와는 달리 당당해졌다. 보란 듯이 고개를 돌린 다른 여인들에게 라합이 인사를 건넸다. 대꾸 없이 휙 고개를 돌린 여인들의 뒤쪽에서 라합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머릿수건을 쓰고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넣었다. 라합은 그녀들이 자기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더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평생을 두고 두려움 속에서 살았었지만, 예수를 만난 뒤로 더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 라합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예수님이라는 스승이 지역을 떠나기 전 그분께 꼭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하던 그 왕국에 대해서도 뭔가를 더 듣고 알고 싶었다. 아마도 그런 것이 그녀에게는 고상하고도 영예로운 얘기일 것 같았다. 그가 말한 그 왕국이 그녀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곳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나자렛에서 오신 라삐를 수소문하여 헤맨 끝에 라합과 쉬프라 모녀는 갈릴래아 호수 옆으로 난 옛날 길에 이르렀다. 겁먹을만한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서 강도들을 만날지도 모르는 그런 길이었다. 그동안 헤매느라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녀의 빈약한 음식들도 거의 바닥이 나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모녀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약간 진흙 구덩이들이 드문드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호수의 물이 조용히 철썩거리는 인적이 드문 그런 길이었다. 라합과 쉬프라는 계속 걸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났을까, 특별히 어떤 이름이 붙어있는지 모르는 조그만 마을을 지날 때였다. 마침 마을 공동 우물이 있어 물이라도 좀 얻어 마시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여느 때처럼 여인들이 한 무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모녀는 얼마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둘은 배가 무척 고팠다. 라합은 여인네 중에 연세가 지긋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노인 분에게 다가갔다. “혹시 나자렛의 예수라는 분을 어디쯤 가면 뵐 수 있는지 아시는지요?” 하고 겸손하게 물었다. “어이쿠, 젊은 분이신데 무척 피곤해 보이는구려. 우리 집이 그리 멀지 않으니 우리 집에 가서 좀 쉬었다 가시구려.”하고 노인이 말씀하셨다. 반가운 그 말씀에 라합은 딸의 어깨를 감싸 안고 노인을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그 노인네의 자그마한 집으로 들어섰다. 속으로 이것이 마지막 휴식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라합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노인네에게 말씀드렸다. 라합과 쉬프라는 그 집이 시원하고 뒤쪽에 있는 다른 방을 통해 호수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집 뒤편으로 소가 한 마리 있었고 양들도 몇 마리인가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 양이 뒷방에 들어와 있다가 노인이 좀 비켜주라고 하는 바람에 “음매에-” 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인이 따뜻한 우유와 갓 구운 듯한 빵과 올리브, 과자 같은 것을 내놓으며 말씀하셨다. “난 안나라고 해요. 내 남편 요셉은 저쪽 읍내 쪽에서 자기 동생하고 같이 포목 가게를 하고 있다오. 우리가 이쪽 갈릴래아 쪽으로 온 것은……가만있자…벌써 몇 년쯤 됐네.” 갑자기 어떤 생각이라도 났는지 말을 하면서 안나 할머니는 자기 뺨 쪽에 손을 괴듯이 가져다 대었다. “뭐라 감사를 드릴지 모르겠네요. 사실 저와 제 딸은 어제부터 거의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하고 라합이 대답했다. “그래, 네 이름은 뭐니? 우리 꼬마 아가씨!”하고 안나 할머니가 빵을 오물거리고 있는 쉬프라에게 물었다. “저의 이름은 쉬프라이고요, 우리 엄마 이름은 라합이예요. 우리는 티로 쪽에 살아요. 그런데 엄마가 일을 찾지 못하던 참에 제가 많이 아팠었는데, 예수라는 라삐님이 저를 고쳐주셨어요.” 쉬프라가 쫑알대며 빠른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빵을 먹어대고 있었다. “쉬프라, 천천히 말씀드려라. 그리고 친절하신 이분께서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들으실 필요가 없으셔.” 하고 라합이 딸을 약간 제지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매우 재미있네요.” “나도 당신만한 나이에 저런 딸이 하나 있었었죠.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말이죠.” “어휴, 참 죄송합니다. 얘가 괜한 말씀을 드려서요…그런데 혹시 저희가 오늘 여기서 좀 쉬어도 괜찮을까요? 크게 불편을 끼쳐드리지는 않을게요.” 라합이 청을 드리자,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저쪽 구석에 여분의 요가 좀 있을 거예요. 내가 지금은 좀 읍내에 나가 남편 요셉을 보고 와야 할 일이 있지만, 금방 돌아올 거예요. 편안히 쉬어도 돼요.” 하고 안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안나 할머니가 집을 나가고 모녀는 한쪽 구석에 요를 펼쳐 몸을 누이자마자 곧바로 세상모르게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두 모녀 손님들이 아직도 자고 있을 때 안나 할머니가 남편 요셉과 함께 돌아왔다. 요셉이 집 뒤편을 둘러보고 있을 때, 라합은 잠을 깨면서 순간 도대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구별이 안 갈 정도였다. 요셉이 “라합이시라면서요? 잘 주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안나는 아궁이 쪽에서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나는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쉬프라와 함께 라합 쪽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안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고춧가루며 부추, 그리고 마늘과 양파 등을 곁들인 옥수수죽을 끓이고 있었다. “별것은 아니지만, 배가 부르긴 할 거예요.” 안나가 죽을 저으며 말했다. “안나가 말하기를 당신네가 나자렛 출신 라삐를 찾는다더군요. 참 안 됐습니다만, 그분은 바로 요 며칠 전에 이곳에서 떠나셨답니다. 그분께서도 바로 이 집에 며칠 계셨었죠. 사실 지금 라합 당신이 폈던 바로 그 요 위에서 그분도 주무셨답니다.” 요셉이 라합이 깔고 앉아 있던 요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랬군요. 전 그분께서 우리 쉬프라를 고쳐주셔서 감사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분이 자주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나라를 좀 더 찾아보고 제가 뭐든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있으려나 찾아보려던 참이었어요. 그분은 진짜 친절한 분이시므로, 그분께서는 제가 살았던 과거 방식으로 그렇게 살도록 저를 돌려보내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실망하며 라합이 얘기했다. “정말 예수라는 그분은 편파적이시지는 않았어요. 사실 그분께서는 당신 아버지의 집에 있을 방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환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개도 데리고 다니시더라고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개와 라삐라니…제 말은 그 개가 양치기 개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그런 개였어요. 예수라는 분의 나라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이 확실해요.” 요셉이 다소 흥분된 말로 양손으로 눈앞에 여러 제스처를 써가며 자기의 기쁨을 드러낸 채 기쁜 소식들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해야 그분을 찾을 수 있죠? 어디라도 가실 수가 있는 분이니 말입니다.” 실망한 눈치가 더욱 역력한 채로 라합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그때였다. 안나가 “요셉, 여기 좀 잠깐 나와 봐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하고 외쳤다. 요셉은 즉시 이미 어둠이 내려 멀리 마을의 불빛이 몇 개 건너다보이는 아궁이 쪽으로 나갔다. 요셉은 사십 년을 안나와 함께 살아오면서 안나가 그런 소리를 할 때는 뭔가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셉, 우리의 손님들이 예수라는 분을 찾아서 먼 길을 왔는데, 그분이 어디로 가셨는지조차 모른다는 이 상황이 참 안 됐어요.” 안나가 불만이 가득한 말로 툴툴대며 말했다. “나도 알아요, 안나. 우리가 저분들에게 뭘 좀 어떻게 더 해드렸으면 좋을 텐데…” “요셉, 참 잘 생각하셨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내가 계획을 좀 세워놓았는데…내 말대로 해 줄래요?” 안나가 요셉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안나가 귓속말로 뭔가를 요셉에게 말하자 요셉은 “그거 좋아. 당신만 좋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뭐.”하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지금은 저녁을 좀 먹고 오늘 밤은 좀 자야 하지 않겠어?” 하고 말을 이었다.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라합은 운 좋게 지낸 간밤의 환대와 친절이 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하면서, 이미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마당에서 놀고 있는 쉬프란을 바라보았다. 안나도 벌써 몇 시간 전에 일어나 집안을 정리하고 있었다. 라합은 전날 자기가 맸던 보자기 짐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쉬프란을 불러 자고 일어난 요를 개어 원래의 자리로 정리하며 떠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안나와 요셉에게 떠나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때 안나가 말을 시작했다. “이제 요셉과 나는 나이가 많이 들어 늙었다오. 우리들의 딸이 죽었을 때부터 우리는 줄곧 누군가 내 딸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들의 가게를 도와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내 생각했었지. 원래 우리는 아들을 원했었는데, 딸을 주셨고, 생각이 많으신 하느님께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딸을 우리에게서 데려가시고 말았지요.” 안나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혹시 괜찮으면 라합, 당신과 쉬프란이 우리 가족의 빈자리를 메꾸어주었으면 하는데…” 안나의 말을 받아 요셉이 이어가는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진지하고, 슬픔 중에서도 희망을 담은 간절한 그런 목소리였다. “우리와 여기 함께 있어 줄래요? 그리고 우리들의 딸이 되어줄래요? 우리는 언젠가 그 예수라는 스승님이 분명히 여기 다시 돌아오실 것을 알아요. 그러면 그때 감사는 그분에게 하면 될 것이에요. 결국 그분이 맺어준 인연일 것이니 말이죠.” 라합은 감격의 울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포목 가게의 일은 하나도 몰라요. 그러나 배우려고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제가 살아온 과거를 빤히 짐작하시면서도 아무렇지 않다고 하시는 것이에요?” 하자, 요셉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소. 결국 그 예수라는 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우리가 남들에게서 바라는 대로 우리도 남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셨소. 그리고 그분은 과거가 어찌 되었든 그 누구라도 받아들이신 그런 분이었는데 우리가 그분보다 덜 해서야 되겠소?” 하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원하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볼게요.” 감격과 행복의 눈물을 훔치면서 라합이 말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도 만나고 싶었으나 만나지 못했던 스승이었는데,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이미 그분을 생생하게 만난 것만 같았다.

☞더 읽을거리 : 신명 24,17-22 여호수아 2,1-24 마태 15,1-31

☞생각을 위한 씨앗들 : 라합이라는 가나안 여인의 딸에 대한 절박함, 라합이라는 이름의 유래, 딸의 치유에 이어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는 라합, 우물가, 여인들의 수다, 라합이 예수가 떠나기 전에 그분을 뵈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들, 예수님을 찾아 라합이 딸 쉬프라를 데리고 떠난 배고프고 험한 길, 우연처럼 만난 안나 할머니의 호의, 요셉과 안나의 계획, 만나지 않았어도 만난 것 같았던 예수님 등등

. 예수님과 바리사이

군중이 예수님을 두고 이렇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바리사이들이 들었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잡아 오라고 성전 경비병들을 보냈다.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32.50-51)

그날 오후 성전 회의실에서 열렸던 논의에서 니코데모의 발언은 다른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를 고발 조치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성전 경비병들조차도 예수의 권위 있는 말에 넘어간 듯싶었다. 바리사이들은 이제 그 누구도 니코데모가 예수의 편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불만스럽게 성전 회의실을 나서면서도 예수를 미워하는 대부분의 바리사이들 마음속엔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단지 몇몇 극소수만이 예수의 입장을 고려하자는 쪽인 것 같았다. 니코데모는 회의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면서 결국 예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의견이 귀결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 편에서 예수와 나누었던 많은 말, 나자렛 출신 라삐인 그와 다시 만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아 마음이 자꾸 편치 않았다.

니코데모는 해가 져 어둑어둑해진 언덕길을 따라 올리브 동산 쪽으로 한참을 올라갔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이미 캄캄해진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던 한 무리의 사내들과 마주쳤다. 작은 개 한 마리가 예수의 곁에 있다가 니코데모를 수상쩍은 듯이 바라보았다. 일어서서 경계의 몸짓으로 목 뒷덜미의 갈기 털을 곧추세웠다. 그리고 갑자기 예수님 곁으로 다가오는 니코데모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댔다. 예수님이 곧 “메레아, 이리 와!” 하며 개를 진정시켰다. 타오르는 장작불이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이의 기분 나쁜 공격성을 담은 얼굴에 진한 흔적을 드리운 것처럼 보였다. 니코데모 역시 큰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하며 접근하고 있었다. 개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혹시라도 저 더러운 개에 물리거나 상처라도 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온통 얼굴에 쓰여 있었다. “선생님, 그저 한두 마디 말씀만 좀 나누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여기 이 녀석 메레아는 그저 낯선 이에게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 저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니코데모라는 사람입니다. 지난번 과월절이 시작된 날 저녁에 제가 찾아왔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날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었었습니다.” 니코데모는 머릿속에서 처음에 예수님과 만났던 때를 상기시키느라 적절한 단어들을 찾고 있었다. “예, 당신을 기억합니다. 니코데모. 우리가 그때 열렬하게 토론하였었지요.” 예수님이 대답했다. “아, 예. 그렇죠. 선생님, 그때 선생께서는 저에게 사람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셨었지요. 그 만남 뒤로 저는 그 말씀을 여러 번 다시 생각해보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 더욱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니코데모는 긴장을 풀면서 겸손하게 말을 이어갔다.

“시간과 자연의 완성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께서만 아시는 것이죠. 사람의 아들을 믿는 자는 그의 말을 믿어야만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말에 따라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하느님께서 생명을 보시듯이 그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하고 예수가 말했다.

“그러나, 선생님.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고통일 뿐, 그래서 ‘인생고人生苦’라 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로마 놈들의 정치적 식민 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전통에 따르면 메시아, 우리들의 무적이신 왕께서 이런 압제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해방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니코데모가 이렇게 물었다. 모닥불이 사그라지면서 밤바람이 파고들자 니코데모는 옷깃을 여몄다. “니코데모, 하느님의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아주 먼 것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우리가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하느님께로 열도록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예스’를 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하고 예수님이 조용히 대답하였다.

“그러나 선생님,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우리를 구해주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그분께서 우리를 압제에서 해방하여주실 날만 고대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탄식하듯 말하는 니코데모의 눈에서는 정의에 대한 갈망과 열정의 불꽃이 일고 있었다.

“니코데모, 내가 보기에 당신은 선량하고 정의로운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람의 아들을 믿지 않습니다. 제 말을 들으십시오, 니코데모.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이 해방의 날을 아십니다. 그 하느님을 믿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예수의 말은 자선을 구걸하는 거지의 애절한 말투와도 같았다. “이러한 믿음이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믿으라고 강요를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 의지로 믿기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선생님, 저는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이 손에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에 당신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을 온전한 투신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저와 제 주변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예수 앞에 앉은 니코데모가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니코데모, 당신은 진실로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과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제자들이 편안한 밤을 지내시길 빕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니코데모는 일어나서 올리브 동산을 빠져나갔다. 하늘에는 봄이라는 계절의 첫 번째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니코데모의 친구 에즈라는 친구 니코데모가 위험스럽게 가지기 시작한 엉뚱한 몽상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도와주기 위해 은밀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니코데모에게 다가온 에즈라가 또 다른 친구 바리사이인 요시아에게 부탁해 놓은 것이 있으니 그를 좀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니코데모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하였고, 회랑의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성전의 끝 쪽으로 가면서 에즈라의 부탁을 들어주느라고 잠시 멈췄던 생각들을 다시 추스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니코데모와 숨바꼭질을 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변에 서성이고 있었다. 그렇게 회랑을 걷는 것이 자신만의 조용한 생각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저녁 희생 제사가 시작되면서 언젠가 나자렛의 라삐라는 사람에게서 들었던 내용이 다시 한번 니코데모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니코데모는 아무래도 그 라삐라는 사람과 그 제자들을 만나서 나누었던 생각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누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니코데모는 어두운 밤에 올리브 동산으로 올라가던 좁다랗고 험한 길을 따라가다가 예수를 만났던 봄날의 어느 밤, 그리고 예수의 곁을 충실하게 지키던 메레아와 인사를 나누던 그 시간을 떠올렸다. 그때 니코데모는 예수가 그렇게 개를 자기 곁에 가까이 두는 것에 당황했었다. 그래서 “선생님, 왜 그렇게 모세의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별 쓸모가 없는 동물을 옆에 두시는 것입니까? 양 떼를 지키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개를 옆에 두는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닙니까?” 하고 물어보았었다. 그러자 예수는 “니코데모, 맞습니다. 네 발 달린 많은 동물은 인간에게 건강상 좋지도 않고 사람을 죽게도 할 수 있으므로 피하라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이라고 하는 것의 조문이나 글자를 넘어 그 법의 정신으로 보자면 동물들도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불쌍히 여겨주라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다만 율법에 그렇게 기록했던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부정한 동물을 먹지 못 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율법의 조문과 율법의 정신 사이에서 공부를 통하여 균형을 잡아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니코데모는 “그러나 선생님, 율법은 이런 동물들이 우리에게 부정不淨하므로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율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 온갖 혼란이 오지 않겠습니까? 나중에는 아무도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할지 모르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진심으로 모세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주변의 나쁜 것들을 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나름대로 준비된 대답을 했었다. 그러자 예수라는 라삐는 “맞습니다, 그러나 니코데모, 생각해보십시오. 율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갈 틀을 제공해 줍니다. 그래서 율법의 조문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우리 인간들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보살피고 불쌍히 여기도록 요구하는 율법의 정신과 심장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은 진실로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니코데모는 옆에서 타오르고 있던 장작불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니코데모는 “이제 떠나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내일 또 여러 가지 임무와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 일들이 있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일어나 예수님께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밝게 빛나는 은빛 달이 니코데모가 돌아가는 오솔길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니코데모가 떠난 뒤에 예수님은 방금 호의를 가지고 찾아왔던 바리사이와 나누었던 대화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몇 마디 말을 더하셨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율법을 지키고 따르려는 사람이 있지만, 율법이라는 글자와 조문을 넘어 그 율법의 정신과 지향을 올바로 파악하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런 것이 니코데모처럼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끔은 매우 어렵다. 나는 니코데모가 율법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그는 가장 좋은 명문 학교를 나왔고, 지금 그는 산헤드린의 의원이기까지 하니 그렇게 영예로운 자리를 얻기까지 열심히 노력도 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 또한 사람들을 올바로 인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는 하느님 나라의 영적인 차원과 법의 정신적인 본성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다고 본다. 아마도 나와 나누었던 토론이 그에게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셨다.

“선생님, 니코데모처럼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그렇게 길을 잃는다면 저희는 어떻습니까? 저희는 율법에 대하여 그저 기초적인 교육밖에 받지 못한 가난한 어부들 아닙니까? 그리고 저희는 저희가 알고 있는 것마저도 자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러한 저희는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하고 베드로가 스승에게 여쭈었다.

“베드로, 내가 바로 그 길이다. 나를 따르고 나를 믿어라.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고 율법의 완성이다. 베드로, 너는 율법이라는 것이 그저 안내요 가이드로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율법이 이제 그 법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있다. 그들은 그 법의 정신에 따라 헤아려보지 않은 채 융통성이 없이 그 법들을 해석하고 적용한다. 그 법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율법의 정신과 조문들을 함께 생각하여 안내를 받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매일 인생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데에 따르는 갈등도 겪어야 한다.”

제자들은 그 누구도 감히 예수님의 이 설명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 말씀에 대하여 생각할 점이 많다고 여겼다. 제자들은 각자 스승을 떠나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 올리브 동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잠자리를 마련했다. 편안한 모닥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제는 제자들 모두가 일행을 지키는 충실성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충견 메레아도 그곳에 있었다.

“어이, 니코데모!” 하고 부르는 큰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 요시아!” 니코데모는 돌아서며 문득 저녁 희생 제사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성전 사제들은 야간에 자기 직무와 관련된 문들을 닫을 것이었다. 사제들은 사람들과 동물들을 성전 지역에서 내보내야 한다. 요시아도 거의 자기 일을 마쳐 가고 있었다. “자네,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군. 내가 어떤 생각을 좀 깊이 하고 있었나 봐.”하고 니코데모가 대답하며 자기의 생각 속에서 빠져나오듯이 말했다. “가만, 내가 자네 집에 오늘 밤에 온다고 했던가, 아니면 내일이라고 했던가? 그러니까 나는 안식일 다음다음 날 자네하고 식사를 하기로 한 것 같은데…그렇다면 그게 오늘이지? 맞지?” 하며 요시아는 자기 옷깃을 여미고 니코데모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둘은 이내 성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을 호위하는 보안 요원들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 “아무려면 어때, 우리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날이 설령 오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 하인들이 맛깔스러운 상을 차려 자네를 대접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네, 걱정 말게.” 하고 니코데모는 웃으며 요시아를 안심시켰다. “내가 잊어버리기 전에…, 우리 중에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 그 왜 아아론이라는 사람 말일세, 그는 오늘 자네가 예수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법정에 세우기 전에는 그 누구도 단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때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더군.” 이런 얘기를 하면서 요시아와 니코데모는 성전 계단을 내려가 길거리로 들어섰다. “자네, 아아론이라고 했나? 그러니까 내 기억에 지난봄 돌아가시기 전까지 산헤드린의 의원으로 계셨던 분의 아들 말이로군.” 그러니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회의 새로운 멤버가 되었던 젊은이라고 니코데모는 기억했다. “비록 아아론이 예수를 옹호하는 견해에 서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네의 그 발언이 아아론에게 예수가 왕국에 대하여 했던 말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는 것이야. 이는 결국 자넨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지금 여기에 이미 도래했다고 하는 ‘혁명론자’를 옹호한 셈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지. 예수라는 그자는 그렇게 말해도 아직 우리는 이렇게 여전히 압제를 받으며 살고 있는데…. 우리 모두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우리는 여전히 로마 놈들에게 굽실대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네. 이런 시대엔 차라리 로마의 강아지들 신세가 더 낫지, 안 그래?” 이 말을 하면서 요시아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혹시라도 근처에 염탐꾼들이 있어서 고발이라도 하지 않을까가 두려워서였다.

“우리의 법에 따르면 그 누구도 단죄를 받기 전에 그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의회의 이런 법은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법이라고 봐. 이런 식으로 우리부터 다른 이들을 법에 따라 꼼꼼하게 잘 대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자신이 우리를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보네.” 니코데모는 이런 논리로 자기 입장을 여전히 방어하고 있었다. “아무튼 자네의 그 발언이 있고 난 뒤, 자네가 의회를 떠난 뒤에 아아론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와서는 자네의 그 발언이 산헤드린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의 심경을 불편하게 한 것만은 사실이고, 그래서 한편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는 것이야. 그 예수라는 분은 성전 경비병들에게조차도 감동을 주었나 봐. 자네도 그 얘기를 들었지 않아?” 요시아는 니코데모보다 더 힘차게 걸으면서도 니코데모의 안전이 못내 걱정되는 듯한 얼굴을 했다. “조심하게. 이 구석, 저 구석에 어떤 녀석들이 숨어 자네를 염탐하거나 위해를 가할지 모르네.” 요시아가 니코데모에게 속삭이며 가만히 말했다. “그러니까 예수라는 분에 대해 좋게 얘기했던 그 성전 경비병들조차도 이제는 밤길을 가는 게 조심스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내가 들었어.”

“자, 이제 다 왔네! 드디어 우리 집이네.” 니코데모가 친구 요시아와 대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입구에는 메주자Mezuzah라고 하는 조그만 상자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모세오경에서 뽑은 구절들을 적어 대문 같은 곳에 달아매 놓은 작은 상자였다. 니코데모는 문에 들어서면서 당연히 그 상자를 한 번 건드리면서 문턱을 넘었다. 곧바로 요시아가 뒤를 따랐다. 요시아는 이미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고 있었다.

“이제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세. 요시아.” 뜰에 들어선 니코데모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 에즈라가 찾아왔었지.” 하며 시작한 얘기들이 식사 도중에도 끝없이 이어졌다. 요시아와 니코데모는 이미 잘 차려진 저녁상을 받아 알맞게 구워진 고기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더 읽을거리 : 욥 38,1-39,30 요한 3,1-21;7,10-52

☞생각을 위한 씨앗들 : 니코데모의 예수 변론, 니코데모의 불편한 심사와 혼란,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싶은 동기, 시간과 자연의 완성, 하느님의 방식과 그 요구,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투신하기 어려운 이유, 니코데모의 친구들, 법과 법의 정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유-그리고 그를 알아내는 방법, 범의 정신적인 본성과 법의 지향, 하느님 나라의 영적인 차원, 제자들이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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