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추/높을 최隹

높이 나는 두루미, 대개 두 마리가 함께 산책하고 괴기하게 깨진 소리를 낸다(*이미지-구글)

미국의 이곳저곳을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았던 플로리다엔 유달리 새들이 많았다. 우리 동요 속에서 그저 노래로만 알았던 부리가 긴 따오기를 비롯하여 독수리, 갈매기, 까마귀, 펠리칸, 솔개, 참새, 로빈, 물새, 여러 모양의 크고 작은 두루미들, 오리들, 이름 모를 다양한 새들이 헤아릴 수 없이 각양각색이다. 기후가 따뜻하고 호수가 많아서 물과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로 새를 나타내는 글자들이 많지만, 흔히 우리가 아는 것은 ‘새 추隹’와 ‘새 조鳥’ 두 글자이다. 똑같은 새들이지만 꼬리 깃털이 짧고 긴 것으로 두 글자가 달라졌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고, 새들을 뜻하는 말에는 새, 특별히 매나 송골매의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새 추隹’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듯하다. ‘새 추隹’를 ‘높을 최’라고도 하는 까닭은 새들이 높이 날기 때문이다. 여기에 높은 산을 뜻하는 ‘뫼 산山’을 올리면 ‘성씨姓氏 최崔’가 되니 정말이지 글자로만 보아서 성씨 중에서 높고 또 높은 성씨가 ‘최崔’임은 분명하다.

수도원 호숫가에서 늘 무리지어 앉아있던 펠리칸들

‘새 추隹’와 함께 만들어진 글자들은 참 많다. ‘입 구口’를 앞에 붙이면 ‘유일唯一(오직 그것 하나)’, ‘유물론唯物論(우주 만물의 실재를 오직 물질로 보는 입장)’ 할 때의 ‘오직 유唯’가 된다. 이는 하늘의 뜻을 전해주는 새가 날아와서 하는 말만이 중요하고 그것만 믿으면 된다는 뜻에서 ‘오직 유唯’이다. ‘새 추隹’ 앞에 ‘마음 심忄’을 더해서 만들어진 ‘생각할 유惟’는 ‘사유思惟하다’라고 할 때의 글자로서, 새가 물어다 준 하늘의 뜻을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이 담겨있고, ‘손 수扌’를 더하면 새가 전해준 신의 뜻에 따라서 손으로 무엇인가를 밀 듯이 밀어붙인다는 의미로 추진推進, 추천推薦, 추산推算, 추측推測, 추대推戴, 추앙推仰과 같은 말을 할 때의 ‘밀 추, 밀 퇴/옮을 추推’가 된다. ‘쉬엄쉬엄 갈/걸어갈 착辶’을 더해 ‘나아갈 진進’이 되면, 새(隹)는 앞으로 날거나 걸을 수 있을 뿐 뒤로 날 수 없고 뒤로 걸을 수 없으므로 말 그대로 ‘나아갈 진進’이다. 류시화씨의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제목도 그런 뜻을 담았을 것이다. 전진만 있을 뿐 후진은 없는 비행기도 그래서 새를 닮았다. 새가 전해준 하늘의 뜻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들이 진행進行, 진전進展, 진보進步, 진입進入, 진출進出, 진척進陟, 촉진促進, 승진昇進, 매진邁進, 약진躍進, 증진增進…등이다.

‘새 추隹’ 앞에 ‘진흙/제비꽃/조금 근菫’이라는 조금 어려운 글자를 더하면 ‘어려울 난難’이 되는데, ‘진흙/제비꽃/조금 근菫’이라는 글자는 맨 밑의 ‘흙 토土’ 위에 사람을 묶어 올려놓은 형상이다. ‘흙 토土’라는 글자는 원래 불(火)의 상형이라고 보아서, 사람을 묶어 불 위에 올려놓고 오랜 가뭄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불사르고 굿하면서 인간사의 어려움을 새를 통해 하늘에 알리고자 하는 글자가 ‘어려울 난難’이다. 인간사는 쉬운 것이 없는 만큼 ‘어려울 난難’이 들어가는 말은 무수히 많다. 논란論難, 비난非難, 곤란困難, 재난災難, 험난險難, 힐난詰難, 고난苦難, 난제難題, 난민難民, 난이도難易度, 난해難解, 난국難局, 난치병難治病, 난관難關…등등이 그렇다. 모양으로 보아 ‘새 추隹’와 어우러져 만든 재미있는 글자도 있는데, 새(隹) 머리 부분에 두리번거리는 두 눈(吅)과 머리 위의 깃털 모습(艹)을 가진 황새의 모습을 본떠 만든 ‘황새 관雚’이라는 글자에 ‘볼 견見’을 붙여서 만든 ‘볼 관觀’이라는 글자는 황새처럼 고개를 높이 들고 여기저기 물속의 먹이를 관찰하듯이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을 말하고, 그저 ‘작을 소小’를 ‘새 추隹’ 위에 올리면 말 그대로 작은 새를 가리키는 ‘참새 작雀’이 된다.

구름이 낮 하늘의 무늬라면 별은 밤 하늘의 무늬이고, 새들은 그 어둠과 밝음의 사이를 노래한다. 새들이 유달리 새벽에 지저귀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새들은 하늘의 소리를 간직하고 낮과 밤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신과 인간 사이를 오간다. 그래서 새를 새라고 하게 된 연유로 ‘하늘과 땅 사이’의 ‘사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새는 땅의 이야기를 하늘로, 그리고 하늘의 이야기를 땅에 전한다. 새들은 그래서 전령이다. 전령은 전하는 말이 혼자만의 말이 아니고 사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대개 무리를 짓는다. 계절이 바뀌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새들은 우리를 떠났다가 다시 찾아오는 조상들의 혼령이기도 하고, 마을에 세우는 솟대 위의 새들은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경계의 상징이기도 하며, 삼족오를 비롯한 많은 새가 민족과 부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성경의 새는 창세기로부터 하느님께서 제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들이요, 땅 위에서 번성하고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니라 명받았으며(창세 1,20-22),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골라 제단 위에서 번제물로 바쳐졌고(창세 8,20), 사람더러 제 길을 찾으라고 안타깝게 호소한 40일의 큰비가 끝났음을 알려준 전령이었으며(창세 8,11), 주님을 찬미하고(다니 3,80), 하늘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시며(마태 6,26), 길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씨들을 먹고(마태 13,4), 하느님의 큰 잔치에 모여오라는 초대를 받는다.(묵시 19,17) 새들이 많은 곳에 사는 이들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담긴 하늘의 소리를 자주 들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또한 매사에 너무 무디어져 있으므로 자주 하늘의 소리를 들어서 자신을 채근해야만 할 처지에 있기도 할 것이다.(201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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