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스코의 교육 · 종교

돈 보스코가 말하는 예방교육’의 실천적 3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 ‘이성·종교·사랑’은 청소년들이 올바른 사고(이성), 올바른 판단(종교-양심), 올바른 행동(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방법론으로서, 개별적이라기보다 상호보완을 통해 동시에 어우러져야 하는 청소년기의 교육적 수행과정이고 통합의 과정이다. 마치 솥을 걸기 위해서는 다리가 셋이어야만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여 상형문자인 한자로 ‘솥’을 다리가 셋 달린 ‘정鐤’으로 표기하고, 또한 전설의 새라고 하는 세 발 까마귀 삼족오三足烏의 발이 셋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삼족오三足烏는 우리 민족의 고대 신화에서 태양 속에 살며 천상과 지상을 넘나들며 태양의 영과 뜻을 지상에 전달해주는 전설의 새이다. 태양 숭배와 관련이 깊고,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인 ‘석 삼三’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태양은 양陽이므로 그 안에 사는 새도 양수陽數인 ‘3’을 따라서 셋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를 천天·지地·인人이 서로 하나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고조선 시대의 제기祭器로 사용된 삼족(三足鼎, 즉 ‘세 발 달린 솥’과 연관하여 ‘세 발’이 천계의 사자使者, 군주君主, 천제天帝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돈 보스코의 ‘종교’는 말 그대로 ‘종교인宗敎人’인 돈 보스코의 삶이 지향하는 모든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돈 보스코 교육학의 방법론을 거론할 때 이성·종교·사랑이 그 방법론의 원리라면, 이의 실천을 위한 도구적 방법론이 되는 기초 개념들을 ‘3A’(아씨스텐자·아콤파냐멘토·아니마찌오네)라고 할 수 있다. 돈 보스코의 언어인 이탈리아말로 ‘아씨스텐자assistenza·아콤파냐멘토accompagnamento·아니마찌오네animazione’라고 읽지만 이를 영어로 옮겨 ‘아씨스텐스assistance·아콤패니먼트accompaniment·아니매이션animation’이라고 읽어도 그대로 첫머리에는 A가 반복된다. 살레시오회는 3A를 고유 용어처럼 사용하기 위해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번역하려면 순서대로 ‘함께 하는 현존과 도움·동반 혹은 동행·고무 혹은 책려策勵’라고 할 수 있다,

돈 보스코에게 ‘종교’는 ‘바람직한 천상 시민과 지상 시민’이라는 살레시오 예방 교육의 목표와 관련지을 때 두 날개로 날기 위해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비상하기 위한 균형 잡힌 세 다리 중 하나이다. 이는 가톨릭 국가의 가톨릭 사제였던 돈 보스코에게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구원’을 향해 날아가고자 하는 삶의 모든 것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기에 성모님의 도우심을 입어 성사聖事(특별히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를 통해 나아가는 성화聖化의 여정이다.

돈 보스코의 생애와 “종교”

Pietro Favaro, Ilsogno dei nove anni-Alassio

돈 보스코에게 ‘종교’는 소명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중심 주제이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 소년들의 선두에 서라고 하시면서 “주먹다짐으로 하지 말고 온유와 사랑으로 이들을 네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죄의 더러움과 덕의 고귀함을 곧바로 설명해 주어라.”라고 말했다. 당황하고 놀란 나는 그분께 내가 그 녀석들에게 종교에 대해서 말할 능력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가난하고 무지한 아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소년들은 말다툼과 고함과 불경한 말을 그치고 나와 말하고 있는 분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그분에게 물었다. “제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Confuso e spaventato soggiunsi che io era un povero ed ignorante fanciullo, incapace di parlare di religione a quei giovanetti. In quel momento quei ragazzi cessando dalle risse, dagli schiamazzi e dalle bestemmie, si raccolsero tutti intorno a colui che parlava. Quasi senza sapere che mi dicessi: – Chi siete voi, soggiunsi, che mi comandate cosa impossibile?…)』(E. 체리아 신부 엮음 / 김을순 수녀 옮김, 돈 보스코의 회상, 돈보스코 미디어, 1997년, 43-44쪽)

아홉 살 꿈에 품위 있는 어떤 어른을 만나 자신은 ‘종교’를 전할만한 능력이 없는 이라고 말하는데, 그에 따라 그 남성은 ‘여선생님’을 약속하고 그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듣는다. 이처럼 종교는 돈 보스코의 첫 번째 꿈이었던 아홉 살 꿈으로부터 돈 보스코의 중심 주제이다.

『그 당시에 종교는 교육의 근본 요소 중의 하나였다. 어느 교사가 설사 농담으로라도 상스러운 말이나 반종교적인 말을 하면 즉각 파면되었다. 교사들에게 이런 정도였다면, 규칙을 위반한 학생들에게야 오죽 엄격했겠는가! 아마 여러분은 상상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평일 아침에는 미사를 드렸다. 수업 전후에는 짤막한 기도와 성모송을 바쳤다. 주일에 학생들은 학교 성당에 모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영적 독서를 하고 성모 소일과를 노래했다. 그 후 미사와 강론이 따랐다. 저녁에는 교리와 저녁 기도, 수업이 있었다. 각 사람은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했다. 아무도 이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한 달에 한 번씩 고해성사표가 주어졌으며, 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라도 학년말 시험이 허락되질 않았다.

이 엄격한 규율의 효력은 대단했다. 여러 해가 지나도 불경한 언사나 나쁜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며 학생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온순하고 공손했다. 학생들의 수효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낙제생이 하나도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인문학과 수사학을 배우는 3학년 때는 급우들 모두 진급을 했다.

그해에 나는 키에리 대성당의 의전 사제 말로리아를 고해 신부로 모실 수 있는 큰 행운을 얻었다. 큰 행운이었다. 내가 갈 때마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거나 영성체를 하면 거의 성인처럼 생각했다. 많은 사제가 자주 성사 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리아 신부님만은 달랐다. 그는 성사를 자주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내가 동료들에게 끌려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은 것은 모두 말로리아 신부님의 줄기찬 격려 덕분이었다.(* 각주 32, 소중한 체험이다. 이 체험은 그가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훌륭한 교육 제도의 기둥으로 선언하게 한다. 그 당시에는 얀센파 교리의 영향으로 성사를 자주 보는 것이 권장되질 않았다.)(앞의 책, 88-89쪽)』

돈 보스코 시대의 여러 저술과 돈 보스코의 직접 저술을 통해서 본 종교의 개념

돈 보스코 당시 돈 보스코와 밀접한 교분과 우정을 나누었으며 돈 보스코의 협력자였던 것으로 알려진 로베르토 무리알도Roberto Murialdo는 – 아마도 돈 보스코가 발간한 일종의 종교 잡지인 <청소년의 친구Amico della Gioventù>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으로 보이는 – “종교와 교육이 없이는 대중의 복지와 사회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종교는 교육과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윤리적 삶이 영양을 공급받을 곳이 없어진다.”라는 말을 남긴다. 1848년 10월 21일자 <청소년의 친구>는 그리스도인과 문화발전, 종교 교육과 훈육 등이 토리노 일대에 산재한 오라토리오가 가난한 청소년들을 보살피는 데에 유일한 관심사이고 목표라고 기록한다. 로렌조 가스탈디Lorenzo Gastaldi는 1849년 4월 7일자 토리노 교구 회람에서 돈 보스코가 발도코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은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매 주일이나 축일에 아이들을 5,6백 명씩 모아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자녀이자 훌륭한 시민으로 양성하는 열매, 곧 그리스도교 문명의 열매를 맺고 있다.…돈 보스코의 말들은 어린 영혼들에게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교정하며 선으로 이끌고 덕을 가르치며 완전함을 사랑하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당시는 그리스도교 교육과 문명화, 종교 교육과 교육이 가난한 청소년들을 향한 사명의 유일한 목표였던 것이다. 여러 정황과 당대의 교육법이라든가 여러 매체에서 전하는 ‘우리 문명의 종교’, ‘풍부한 그리스도교 문명의 열매’, ‘국가와 개인의 파국은 가톨릭 종교를 온전히 보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라는 식의 표현 등을 볼 때, 가톨릭이라는 종교는 개화된 종교이며 따라서 ‘문명화(개화)’를 위해 ‘종교’가 필수적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곧 개인을 위해서도, 또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다른 말로 이는 교육과 종교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가톨릭 교육 운동의 중요성과 그 사회적 효과에 관한 논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육은 종교 교육을 보완하는 요소로서 이는 19세기 이탈리아 교육 개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였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개화기에 수많은 교육 기관이나 학교는 종교 법인들의 소위 미션 스쿨이었고, 그러한 교육에서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채플시간이나 종교 집회의 참석이 강요되었으며, 이러한 교육이 사회의 개혁을 주도했다.

돈 보스코의 초기 기록에서도 종교는 강력한 교육적 요소로서 도덕성과 사회 질서의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강조된다. 돈 보스코는 1846년 어떤 고위직 경찰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통해 1) 노동에 대한 애착 2) 성사 생활 3) 상위의 권위에 대한 존중 4) 나쁜 친구들을 멀리하기 등의 효과를 얻는다고 기록한다.(참조. G. Bosco, Lettera al marchese Michele Benso di Cavour, Torino 13 marzo 1846, in Id., Epistolario, a cura di F. Motto, vol. I, LAS, Roma 1991, 66쪽)

그런가 하면 1855년 <이탈리아 역사Storia d’Italia>의 결론 부분에서는 “종교는 모든 시대에 걸쳐 인간 사회와 가족을 지탱하는 지주로 여겨졌으며, 종교가 없는 곳에서는 부도덕함과 무질서만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따라서 우리는 종교를 권장하고 사랑하며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사랑하게 해야 하고,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경멸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제안한다.(G. Bosco, La storia d’Italia raccontata alla gioventù da’ suoi primi abitatori sino ai nostri giorni, Paravia e Co., Torino 1855, 525쪽)

1855년의 <착한 교육의 힘La forza della buona educazione>이라는 글에서 돈 보스코는 그리스도교적인 교육과 종교적 실천의 생명력을 강조하며 이를 유년기부터 실행하는 것이 도덕적 및 시민적 덕목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효과적이라 말한다. 마지막 대목에서 돈 보스코는 종교는 강력한 교육적 요소이며 이를 통해 도덕성과 질서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종교적 교육과 종교적 실천이 미래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삶의 가치를 형성하고 긍정적인 도덕성과 시민적 가치를 유도하므로 이를 위해 각 가정에서부터 이러한 종교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부모들 역시 이에 충실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G. Bosco, La forza della buona educazione. Curioso episodio contemporaneo, Paravia e Co., Torino 1855)

돈 보스코는 항상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몇 명의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불평하던 Lanzo Torinese 대학 기숙사의 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쓴다: “뿌리로 가야 합니다. 만약 애들이 신앙을 가지고 현명하게 헌신하겠다고 결심한다면, 모든 것이 곧 개선되기 시작합니다.”(Lettera a don Giovanni Battista Lemoyne, 27 aprile 1871, in Epistolario, vol. III, 326쪽)

이것은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애들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사람의 단순화된 주장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을 분석해보면, 이러한 관점 뒤에는 깊은 내면적 변화 과정이 발동될 때만 달성될 수 있는 복잡한 교육목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851년 12월 20일의 한 회람에서 Oratorio의 젊은이들에게 제공되는 종교 교육의 목적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들의 마음에 가족이나 형제를 향한 애정, 권위에 대한 존중, 받은 은혜와 은인들에 대한 감사, 노고와 수고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들의 정신에 가르쳐야 할 것은 가톨릭의 교의와 도덕적인 가르침, 그들을 잘못된 길에서 끌어내고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을 심어주며, 그들을 시의적절하게 종교적 규율을 준수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것입니다.”(Circolare per una lotteria a favore dell’Oratorio, 20 dicembre 1851, in Epistolario, vol. I, 140쪽)

이러한 인용들은 돈 보스코가 종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종교적 가치와 도덕을 심어주는 교육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돈 보스코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깊은 내면적인 변화 과정이 필요하며, 이는 종교 교육과 실천(성화聖化의 여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2002년 제25차 총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알현에서 말씀하신 <성인이 되십시오!(Siate Santi!)>, 이는 과연 성인이 성인을 알아보시고 꿰뚫어 보신 통찰이었다.(참조. Atti, 379호, 제25차 총회 문헌)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돈 보스코의 사명에서는 ‘착한 신자(그리스도인)와 올바른(정직한) 시민’이라는 이중 목표가 거듭 강조된다. 다른 말로 종교적이면서도 시민적인 통합이고, 차별화된 교육목표이다. P. Braido의 논문 “Buon cristiano e onesto cittadino: una formula dell’umanesimo educativo di don Bosco”(1994)에서는 이러한 돈 보스코의 교육목표 안에서, 그리스도인 양성과 시민 교육이 통합되고 있다고 밝힌다.

궁극적으로 돈 보스코의 교육적 관심과 목표는 구원이고, 종교적인 기능을 위해 파견된 목자로서의 걱정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일상의 성화聖化를 위한 동행이요 동반이다.

이러한 관점은 18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돈 보스코께서 출판한 <도메니코 사비오, 미켈레 마고네, 그리고 프란체수코 베수코의 생애le Vite di Domenico Savio, Michele Magone e Francesco Besucco>라는 책이나 소위 ‘자유교육’을 주창하던 ‘카사티Casati 법’이라고 불리던 법의 폐해를 비판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려 저술되었던 1866년의 <발렌티노Valentino>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돈 보스코는 종교적 요소를 등한시하는 것이 교육의 효과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고 청소년들을 방탕과 악습에 빠지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며 공부와 윤리적인 생활을 넘어 멸망에 이르게 하고 만다라고 설명한다. <발렌티노>에서 발렌티노가 빠르게 나빠지는 것을 목격한 그의 아버지는 “내 아들을 선량하고 올바른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먼저 착한 그리스도교인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 너무 유행을 쫓는 학교를 선택했고, 슬기로움이나 윤리적인 내용을 전혀 가르치지도 않는 겉치레에 홀려 들고 말았다…불행하게도 종교가 없이는 젊은이를 교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G. Bosco, Valentino o la vocazione impedita. Episodio contemporaneo, Tipografia dell’Oratorio di S. Francesco di Sales, Torino 1866, 4.17쪽)

오직 영혼 구원만을

돈 보스코는 오라토리오 초창기인 1846년에 쓴 편지에서 “귀하는 저희의 갖은 노력이 저희 자신의 그 어떤 이익의 그림자에도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주님께 영혼들을 거두어 드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Lettera al marchese Michele Benso di Cavour, Torino 13 marzo 1846, in Epistolario, vol. I, 66-67쪽)라고 쓴다. 이에 관해서는 돈 보스코가 개인적으로 «da mihi animas, caetera tolle(나에게 영혼들을, 그 외엔 아무것도)»라고 표현했던 내용이 즉시 살레시오회의 공식적인 표어가 된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돈 보스코의 교육학과 영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알려주는 이 문장은 1859년에 돈 보스코가 쓴 <어린 도메니코 사비오의 생애>에 처음 등장한다.

『…도메니코 사비오는 우리 오라토리오에 온 후부터 자주 내 방에 찾아왔는데 이것은 그 자신이 말했듯이, 자기의 영혼에 관한 문제를 온전히 웃어른의 손에 맡기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내 방에 들어온 그는 고개를 숙이고 즉시 책상 위에 약간 굵은 글씨로 써 놓았던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해 읽었습니다. 이 말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늘 즐겨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Da Mihi Animas! Caetera Tolle!(내게 영혼을 다오! 이 외엔 다 가져가라!)

그는 매우 주의 깊게 이 말을 거듭 읽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를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의 뜻을 번역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묵묵히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제 알았어요. 신부님! 알고 보니 여기는 돈을 버는 데가 아니고 영혼을 벌어들이려고, 영혼 장사를 하는 곳이로군요. 저도 이 장사에 한몫 끼었으면 좋겠어요.”…』(G. Bosco, Vita del giovanetto Savio Domenico allievo dell’Oratorio di San Francesco di Sales, Paravia e Co., Torino 1859, 38쪽)

이 대목에서 돈 보스코의 생각이나 사목의 추구가 무엇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돈 보스코와 도메니코 사비오의 첫 만남도 인상적이다. 돈 보스코가 아이들과의 삶을 통해서 지향하고자 했던 바는 처음부터 영혼의 구원이었으며 이를 향한 사목자의 마음이었다.

『…“저 신부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를 토리노로 데리고 가셔서 공부시켜 주시겠어요?” “글쎄, 너는 아주 훌륭한 옷감인 것 같다.” “훌륭한 옷감이라니요? 무엇을 위해서요?” “우리 주님을 위해서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드리려는 좋은 옷감 말이지!” “아! 신부님, 그러니까 저는 옷감이고 신부님은 재봉사시란 말씀이지요? 그럼 꼭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아주 아름다운 옷으로 만들어 주세요.”…』(같은 책, 35.)

이러한 내용은 돈 보스코의 첫 미사를 위한 준비 피정의 결심에서도 잘 드러난다. 돈 보스코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언제나 (기꺼이) 고통을 참아 받으며 (말이 아닌) 실천으로 행하고, 모든 일에 겸손할 것”만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한다.

『1841년 6월 5일 삼위일체 대축일 전날 나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각주 47-그의 여러 전기에서 발췌한 기록으로 내용을 보충해 보면, 피정은 1841년 5월 26일 토리노에 있는 선교사들의 집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 첫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한 피정의 결론 : 사제는 혼자서 천국에 가거나, 혼자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잘하면 그의 좋은 표양으로 구원된 영혼들과 함께 천국에 가고, 악 표양을 주면 그 악 표양으로 저주받은 영혼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결심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1. 중요한 일이 있거나 병자들을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산보를 하지 않겠다. 2. 시간을 엄격하게 잘 쓰겠다. 3.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매사에 언제나 고통하고, 행하고 자신을 낮추겠다. 4.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애덕과 온유가 만사에 나를 인도해 주길! 5. 건강에 해롭지 않은 한 내게 제공되는 음식에 대해서 늘 만족감을 표시하겠다. 6. 단지 치료제처럼, 즉 건강에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물을 탄 포도주를 마시겠다. 7. 일은 영혼의 적에 대한 강한 무기이므로 밤에 5시간 이상 자지 않겠다. 아플 때는 예외를 하겠다. 8. 매일 묵상과 영적 독서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겠다. 하루가 끝나면 성체조배를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성체께 대한 기도를 바치겠다. 미사 준비와 감사기도를 적어도 15분씩 하겠다. 9. 고해소나 어떤 영적인 필요성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여성들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E. 체리아 엮음, 돈 보스코 회상, 김을순 역, 돈보스코미디어, 1998년, 173-174쪽)

『영혼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자신의 일생을 마치는 살레시안이 생길 때, 여러분은 우리 수도회가 위대한 승리를 거두게 되었으며 또 그로 말미암아 천상의 풍성한 축복이 내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성 요한 보스코의 유언서-회헌·회칙 부록, 마지막 문단, 258쪽)

사제 양성소 3년과 쥬셉페 카파쏘 신부

돈 보스코의 영혼만을 구하고자 하는 사제로서의 영원은 처음에 사제양성소에서 3년 여를 지내면서 더욱 굳건해지고 무르익어간다. 돈 보스코는 물질적이고도 영적으로 가난한 청소년들을 길거리에서, 마을 광장에서, 그리고 소년원에서 만나면서, 그뿐만 아니라 카파쏘 신부님의 응원에 힘입어 당시 토리노의 교회 상황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개입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사제양성소와 함께 다진 이상적 사목자의 상, 교육을 통해 보게 된 사회적 상황과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에 관한 개인적인 감수성과 책임감, 외면할 수 없는 여러 섭리적 만남 속에서 돈 보스코의 영혼 구원을 위한 선택과 결심은 그렇게 굳어갔다.

사제양성소에 있을 때 만났던 쥬셉페 카파쏘Giuseppe Cafasso(1811~1860년) 신부님, 윤리신학 교수이자 고해 사제로서 삶을 살면서 사제 양성에 헌신하고, 돈 보스코에게 1841년 이후 20여년 간 영적 지도자로 살아 훗날 성인이 되신 분, 가난한 이들, 특별히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 사형장으로 가는 죄수들을 68명이나 동반한 것으로 알려져 사형수들을 위한 주보 성인이 되시기도 했던 분이 제시한 사목자 상은 돈 보스코의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을 짐작하게 한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는 것입니다.…사랑은 우리 모든 미덕의 근원이요 원천일 뿐만 아니라…우리의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작은 행동을 위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이웃을 향한 우리 수고에도 효력을 발휘해 줍니다.…친애하는 여러분, 우리 사목이 마음에서 열망하는 열매를 맺기 원하고, 몇몇 영혼만이라도 구원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마음이 사랑의 화로가 되기를 열망합시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말과 숨과 기도가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합시다. 우리 손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지니면 푸르고 푸른 숲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듯이 우리 마음과 혀가 사랑의 불꽃을 내뿜게 되면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이고, 고집스럽고 굳게 얼어붙은 이들에게도 사랑의 불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G. Cafasso, 사제 피정Esercizi spirituali al clero, vol. I, Effatà, Cantalupa 2003, 641-642쪽)

돈 보스코는 열두 살 되던 해인 1827년 10월 둘째 주일에 아직 신학생이었으나 “덕행의 거울이라 불리는 명성”을 이미 지니고 있던 쥬셉페 카파쏘 신부님을 처음 만난다.(참조. 돈 보스코 회상, 71.74쪽) 돈 보스코에게 카파쏘 신부님은 신학교 수업료 면제를 비롯해 오라토리오의 모태가 된 피나르디 집 구매 비용(같은 책, 325쪽)이나 운영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을 주신 분이었으며 첫 미사도 카파쏘 신부가 수석 사제로 있는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성당에서 드린다.(같은 책, 173쪽) 노인이 된 돈 보스코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내가 뭔가 좋은 일을 한 것이 있다면 모두 카파쏘 신부님의 동반 덕분입니다.”(같은 책, 186쪽) 1860년 6월 23일 사망한 카파쏘 신부님의 장례 미사에서 돈 보스코는 집전자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그는 사제생활의 한 모델, 성직자들의 교사, 죽어가는 이들의 위로자, 모든 이의 친구였습니다.”라고 강론한다. 카파쏘 신부님의 시복시성 조사 자료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카파쏘 신부는 돈 보스코가 설립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오라토리오의 공동 창립자요 아버지, 최초 협력자였다.” 카파쏘 신부는 “나는 요한 보스코에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지와 건물, 그리고 5천 리라를 증여합니다. 그리고 내가 죽게 되면 그가 내게 지고 있는 모든 빚을 탕감합니다.”

돈 보스코가 카파쏘 신부의 사목적 모델을 자신의 처지에 적용하고 오라토리오의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갔으리라고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저의 목적은 이것이며, 저의 삶은 목표는 정해졌습니다. 영혼들을 원하며, 영혼들만을 찾습니다. 기도하든, 공부하든, 일하든, 저는 영혼들을 구하기만을 원하며, 영혼들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 어떤 일에든지, 어떤 시간에든지, 어떤 희생에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평판을 잃고, 재물을 잃더라도, 건강을 잃고, 필요하다면 필요하다면 생명을 잃어서라도 한 영혼만이라도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영혼들 말고는 아무것도, 또 그 무엇도 필요 없습니다. 힘이 남아있는 한 저는 그 힘을 영혼들을 위해 사용하고, 혀가 있는 한 저는 그 혀를 영혼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합니다.』(G. Cafasso, Esercizi spirituali, I, 697-698쪽)

* 『나는 여러분을 위해 공부하고, 여러분을 위해 일하며, 여러분을 위해 살고, 여러분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회헌 14조, 돈 루피노, ‘오라토리오 연대기’, 살레시오회 중앙문서고 110, 노트 5권,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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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꿈과 <돈 보스코 회상>

<돈 보스코의 회상>에서 돈 보스코는 자신의 필치로 영감의 원천과 그에 따른 교육 방법론의 동기를 담담히 서술한다. 특별히 돈 보스코는 아홉 살 첫째 꿈에서 자신의 사명과 방법론을 이미 얻는다. 꿈에서 품위 있는 남성은 어린 요한 보스코에게 “Non colle percosse, ma colta mansuetudine e colla carità dovrai guadagnare questi tuoi amici. Mettiti dunque immediatamente a far loro un´istruzione sulla bruttezza del peccato e sulla preziosità della virtù.…tali cose ti sembrano impossibili, devi renderle possibili coll´obbedienza e coll´acquisto della scienza.…si raccolsero tutti intorno a colui che parlava.”(“주먹다짐으로 하지 말고 온유와 사랑으로 이들을 네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죄의 더러움과 덕의 고귀함을 곧바로 설명해 주어라.…네게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일이기 때문에 너는 순명과 지혜의 연마로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소년들은 말다툼과 고함 소리와 불경한 말을 그치고 말하고 있는 남자 주위로 모여들었다.”-김을순 역, 44쪽)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사나운 짐승들이 온순한 양들로 변한다,

벌써 이 꿈에서 돈 보스코의 사명과 교육 방법론, 그리고 청소년을 친구로 얻어 인도해가고자 하는 목표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다. 청소년들의 변화를 위해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고, 죄의 더러움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고상한 윤리적 삶을 밝혀 그들을 인도해가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마침내 ‘그분’ 주위로 모여들 것이다. 이를 위해 약속된 성모님과 성모님의 학교에서 습득하게 될 살레시안의 자질인 “순명과 지혜의 연마”까지, 간단한 꿈의 기록이었으나 후대의 살레시오회를 위해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예언적인 꿈은 가히 돈 보스코와 살레시오회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을 제시한다.

<돈 보스코의 회상> 첫 장면은 간단한 가족 소개로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버지는 한창 나이에 기력이 왕성했고 자식들에게 훌륭한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38쪽)…(이어서 아이 셋 딸린 젊은 어머니에게 청혼이 들어왔다는 이야기와 새 아빠가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어 잘 성장하게 도와줄 것이라는 말에 응답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후견인은 친구지만, 저는 제 자식들의 어미입니다. 온 세상의 금을 다 준다 해도 저는 결코 아이들을 버리지 못합니다.”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고 순종심을 길러 주며 나이에 맞갖는 일들을 마련해 주려고 애썼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친히 내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형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자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나를 그들과 함께 무릎 꿇게 했으며* 우리는 다 같이 일상 기도와 묵주 기도 15단을 바쳤다. 나는 어머니가 내 첫 고해를 준비해 주던 일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성당에 가 먼저 성사를 본 다음에 나를 고해 사제에게 맡겼으며 성사가 끝난 후에는 감사의 기도를 바치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혼자서도 성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도와주었다.(41-42쪽)』

* 각주 13-1940년 1월 31일, 비오 12세는 그리스도교 가정들을 향해 베키 집의 가정적인 정경들을 그려보게 했다. “그곳에 젊은 과부가 세 아들과 함께 아침 저녁 기도를 바치기 위해 무릎 꿇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녀가 옷장에서 정성껏 찾아낸 축일 옷을 입고 모리알도로 미사 드리러 가는 꼬마 천사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오후에 빵 한 조각밖에 없는 검소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 그녀 둘레에 모여 있습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하느님과 교회의 계명, 교리, 건강의 수단들을 기억시킨 뒤에 순수한 마음과 대중적인 상상에서 나오는 섬세한 시로, 온유한 아벨과 악한 카인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어지신 예수님의 고통스런 죽음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어머니의 첫 가르침이 주는 깊은 영향력을 그 누가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제가 된 돈 보스코의 마리아와 성체께 대한 애틋하고 신뢰 깊은 신심은 바로 그 가르침 덕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돈 보스코의 회상은 그의 교육의 중요한 순간마다 교육적 개입을 상세히 기술한다. 어머니 마르게리타, 돈 칼로쏘*, 키에리 신학교의 교수들, 명랑회 친구들과 친구 코몰로, 그리고 돈 카파쏘, 훗날 사제 서품 후의 사제 양성 학교 교수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돈 보스코 생애에 개입했던 이 교육자들의 모범과 삶의 증언들, 물질적인 도움과 영적인 도움들이 돈 보스코를 그리스도교의 교육으로 양성했고, 인생의 방향과 선택을 이끌었으며, 흔들리며 의심이 들 때는 빛이 되어 주었고, 개인적이고도 인간적인 약점을 보강해주는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돈 보스코는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할 수 있었고, 든든한 상호 교감과 교류를 이루었으며, 영적인 성장과 성소의 식별을 해 나갈 수 있었다.

* 돈 보스코는 돈 칼로쏘를 1826년에 처음 만났다고 기록한다. 이어서 그분께로부터 정기적으로 읽고 쓰기와 교양 학습을 하게 되는데, 돈 보스코는 이를 두고 『칼로소 신부님에게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즉시 그분을 무척 신뢰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을 그분에게 활짝 열었다. 내 생각과 말, 행동을 숨김없이 환히 드러냈다. 그분은 그런 내게 물심양면으로 적절한 지도를 베풀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매우 좋아했다. 처음으로 나는 일정한 지도자, 친구를 갖게 되었다는 뿌듯한 안도감을 맛보았다. 그분은 제일 먼저 내게 내 나이에 맞지 않는 고행을 금했다. 그 대신 고해와 영성체를 자주 하라고 격려해 주었으며 매일같이 짤막한 묵상, 더 정확히 말해서 영적 독서를 얼마간 하라고 권유했다. 축일에는 가능한 모든 시간을 그분 곁에서 지냈다. 평일에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미사에 참여하여 그분의 복사 시중을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영적 생활이 무엇인지 음미하기(gustare)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무턱대고 움직이는 기계처럼(무엇을 왜 하는지 알지 못한) 아주 물리적으로 행동해 왔었던 것이다.(62-63쪽)』라고 기록한다.

사제가 되기로 하고 9일 기도 후 착복식을 치르게 된 날, 돈 보스코는 『하느님, 저로 하여금 이 순간 새 인간을 입도록 해주십시오. 이후부터 당신의 거룩한 뜻을 철저히 따르는 새 삶을 살게 해주소서. 정의와 성덕이 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부단한 목표가 되게 해주소서. 오 마리아, 당신은 저의 구원이시나이다.』(132쪽)라고 기도했다.

돈 보스코의 여러 저술을 통한 종교의 통합적 이해여정과 방법

<돈 보스코의 회상>이 지닌 교육적 가치는 1877년의 <예방 교육에 대한 소고>나 1847년의 <준비된 청소년(Il Giovane provveduto)>, 1859년의 <도메니코 사비오>, 1861년의 <미켈레 마고네>, 1864년의 프란체스코 베수코> 등과 같은 돈 보스코의 다른 저술들과 연계하여 읽을 때 더욱 빛을 발하면서 통합적인 얼개를 보여준다.

※ 참고 – https://blog.naver.com/kbenjamin/223011640845

<준비된 청소년>이라는 소책자는 돈 보스코 자신이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G. Bosco, Il giovane provveduto per la pratica de’ suoi doveri…, Paravia e Co. Torino 1847, 5.)라고 밝히듯이 그저 이런저런 신심업의 수집 목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간단하고 쉽지만, 여러분의 부모들에게 위안을 주고, 국가에는 명예가 되며, 땅에서는 착한 시민이 되며, 언젠가 하늘의 시민이 되기에 충분한 삶의 방식입니다.”(같은 책, 7쪽)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덕스러운 청소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 “피해야 할 것들”에 관해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실천 사항들이 수록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교육 현실에서 예방적으로 경계해야 할 내용들로서는 게으름(같은 책, 20-21쪽), 나쁜 친구들과 나쁜 대화들(같은 책, 21-25쪽), 물의를 일으킬만한 행실(같은 책, 25-26쪽), 유혹에 빠짐(같은 책, 26-27쪽), 회개와 덕행의 실천(같은 책, 28-29쪽) 등과 같은 내용을 수록하고 마지막에 “사랑하는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을 섬기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얼마나 흡족할지 보게 될 것입니다.”(같은 책, 29쪽)라는 초대로 마무리된다.

돈 보스코는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창조주 하느님과 창조된 이들의 목적,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 대상인가 등을 알 수 있게 한다.(같은 책, 11쪽) 청소년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흔쾌히 응답하도록 초대받았다. 돈 보스코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십시오. 젊었을 때 좋은 일을 시작하면 나이를 먹어가며 좋은 사람이 될 것이며, 좋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영원한 행복의 시작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악습이 우리를 점령한다면, 그 악습은 죽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고 말 것입니다.”(같은 책, 6-7)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일찍부터 덕스러운 삶에 자신을 바치십시오. 그러면 항상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알게 될 것입니다.”(같은 책, 13쪽)이라 말한다. 돈 보스코는 마음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회개하여 주님께 자신을 ‘드리라(darsi)’고 촉구하면서 덕스러운 추구와 행실을 통해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시편 100,1)하고 촉구한다.(같은 책, 6쪽)

그리고 위에 열거한 청소년들의 전기는 실제 실존 인물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개성 안에서 본인들이 어떻게 매일의 도전을 살아냈는가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동시에 이들 이야기들은 발도코에서 벌어진 복잡한 교육 방법론과 그 풍요로움, 그 안에서 사랑과 존중으로 서로를 대하면서 이 모든 것의 원천과 동력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에서는 돈 보스코가 제안한 그리스도교 종교의 체험에서 빚어지는 교육적 가치, 개인의 일상과 사회적 책임이 어떻게 연결, 의미 있고 분명한 교육목표, 아버지요 스승이며 모범으로 존재하는 선생님의 사랑스러운 현존과 헌신, 총체적인 교육공동체로서 오라토리오의 품격과 스타일의 유지, 개인적인 체험과 관계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 환경, 청소년이 주인공이 되는 적극적인 참여의 현장, 만남의 방식과 서로의 태도나 감정, 열망, 애정이 오가는 현장이 아름답게 묘사된다. 돈 보스코는 합리성과 신앙으로 교육적인 내용을 제시하면서 그 열매가 무르익도록 부추기며, 아이들이 회개와 성숙의 단계를 밟아갈 수 있는 의지를 발휘하여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한다.

특별히 이들 청소년의 전기들 안에서는 돈 보스코가 교육자로서 행동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돈 보스코는 아이들을 대할 때 신뢰와 절대적인 수용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이야기, 개성, 욕구, 필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개별적인 관심을 기울이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조건을 도모한다. 아이들의 민감한 부분을 파악하는 능력, 처세나 겉치레가 아닌 진심 어린 공감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 아이의 관심과 기대를 자극하는 능력, 아이의 내면에서 스스로 시선을 들어 높여 의미 있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 등등, 돈 보스코의 탁월한 교육자적인 능력 발휘를 발견할 때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또한 이들 전기들 안에서는 발토코의 교육적 환경의 통합 방식, 개인과 공동체의 동반 방식, 이성과 청소년들의 종교적 감성과 사랑의 필요성에 기반한 양심과 행동에 대한 호소 방식들이 드러난다. 말 그대로 이 전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돈 보스코가 살아냈던, 또 살아내고자 했던, 생생한 교육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갖은 노력과 함께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우정어린 관계의 깊이를 엿보게 된다.

놀라운 이 전기들은 거룩한 성인聖人 교육자로서 돈 보스코가 대화와 존중을 통해 청소년들의 삶 안에서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순간들을 어떻게 포착하는지, 그리고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덕스러운 가치들을 내면화하여 청소년 스스로 자의식과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도록 하여 성숙과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진하는지를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도움과 동반을 제공하는 형제적인 도움이 되는 교육적 동반의 풍요로움을 체험하게 해준다. 사랑스럽고, 도움과 동반이 되는 교육적 현존(assistenza)이 지니는 무한한 가치, 고백성사와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고백 신부이자 원장이면서도 애정 어린 친구요 아버지로서의 우정, 변화되어가고 성숙 되어가는 청소년의 회심이야말로 살레시안이 살아야 할 이웃 사랑의 모든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기들에서 청소년들은 짧지만 복잡다단한 인생살이 안에서 돈 보스코를 듣고 그의 말을 내면화한다. 대화하고 문제에 직면한다. 교육자들의 관심을 이내 알아보고 이에 의지한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순종적으로 협력한다. 다른 친구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 기쁘고도 즐겁게 투신한다. 자신을 관찰하고 교정한다. 꾸준히 노력하고 해야 할 바에 열중한다. “주님을 위해” 불편과 다른 이들의 불평까지도 감수한다. 약속하고 자신을 봉헌한다. 공동체적인 책임을 떠맡는다.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세례성사의 본 의미를 살려고 노력하며 마침내 영적인 생활의 본질과 하느님을 맛보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린다.

모든 것이 열심과 진심어린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자들의 헌신과 열정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메니코 사비오의 “착한 부모에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교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항상 그들의 소원이기도 하였다.”(G. Bosco, Vita del giovanetto Savio Domenico, 12쪽)라는 도메니코 사비오 전기의 서두, 그리고 프란체스코 베수코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어린 자녀의 마음에 독실한 신심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었다”라는 기록들은 시사하는 바가 참 크다.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기를 바라는 단어는 예수님과 성모님이었다. 부모는 아이의 얼굴을 종종 바라보면서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젊은 시절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들을 생각할 때, 떨리는 목소리로 걱정하며 말하곤 하였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프란치스코야, 나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 너의 육체만이 아니라 너의 영혼을 더 사랑한단다. 그래서 하느님을 노여워하시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네가 죽은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한단다. 오, 너로부터 네가 항상 하느님의 은혜 안에 있는 모습만을 볼 수 있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이와 같은 말이나 비슷한 말들이 그 부모가 어린 아기를 바라보며 그 영혼에 생기를 부어 넣어주고자 하는 일상이었다.』(G. Bosco, Il pastorello delle Alpi ovvero vita del giovane Besucco Francesco d’Argentera, Tipografia dell’Oratorio di S. Francesco di Sales, Torino 1864, 9-10쪽)

돈 보스코는 다른 여러 서술에서도 한결같은 기조를 유지한다. 예시들로서 1855년 어떤 겸손한 농촌의 아낙이 어떻게 예방적인 보살핌을 펼쳤는지에 관한 기록이나(참조. La forza delle buona educazione, 8-9, 15-16, 20-22, 70-72.), 살레시오 기숙학교에서 그 대상을 중산층의 자녀로 확대 개편할 때도 그 계층의 한 어머니가 어떻게 자기 아들에게 굳건한 신심과 그리스도교 교육을 시키고자 했었는지(참조. Valentino, 3-8.), 또한 상업에 종사하는 어떤 아버지가 자녀의 문화·윤리 빛 종교 교육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자 했는지(G. Bosco, Severino, ossia avventure di un giovane alpigiano raccontate da lui medesimo, Tipografia dell’Oratorio di S. Francesco di Sales, Torino 1868, 7-9, 20-23, 27-28쪽) 등을 기록하기도 한다. 1800년대 초기는 이처럼 가톨릭 세계와 자유주의 문화 간에 교육적 이론과 실천에서 점점 더 간격이 뚜렷하게 벌어지는 시기였다. 이러한 내용은 툴롱의 루이 플러리의 가정 교육 묘사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참조. J. Bosco, Biographie du jeune Louis Fleury Antoine Colle, Imprimerie Salésienne, Turin 1882

이처럼 많은 텍스트는 종교적인 의미로 충만한 비전을 바탕으로 한 교육적 실천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은 교육자들이 선생으로서만이 아니라 모델이자 사랑스러운 아버지로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확신에 기초하고 있으며, 단지 제시와 제안자로서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양심에 그 가치를 호소하고 아이들이 느끼기에 실제적인 도움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내면화하도록 하는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제안적이며 긍정적이고, 부추기며 보살피고 깨어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된다.

물론 돈 보스코의 시대나 환경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와는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돈 보스코의 교육 체계와 방식을 통해서 그가 제시하고자 했던 교육적 모델의 주요 특징들을 찾아내면서 동서고금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여전히 돈 보스코의 교육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돈 보스코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확신과 열정적인 응용을 위해 돈 보스코 자신의 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돈 보스코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그가 얘기하고자 했던 모든 ‘시스템’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바로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하는 사랑의 찬가 대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돈 보스코의 예방 교육 시스템은 그리스도인만이 성공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방 교육 시스템에서 선생의 건너편으로서 학생 편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더욱 쉽고, 더욱 만족스러우며, 더욱 유리하다. 반면 선생 편에서는 다소의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지만, 열정과 소명 의식으로 헌신하면서 그러한 어려움은 상당히 감소하고 보람과 기쁨으로 바뀐다. 청소년을 만나는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유익에 헌신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수고에 맞설 준비가 된 사람이자 이를 위해 은총을 기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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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스코의 ‘종교’는 특정 종교의 신앙체계이기 이전에 단순한 인성人性교육을 넘어서서 영적인 혈연까지를 지향하는 영성靈性교육의 추구이고, 특별히 인간 본연의 깊은 심성 안에 절대자와 초월자에 대한 갈망의 충족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영적인 영혼의 감수성을 개발하면서 인간의 영혼에까지 이르는 교육을 추구함이요, 또한 진眞·선善·미美로 청소년들을 안내하고자 하는 지향이다.

돈 보스코에게 ‘종교’란 가톨릭교회의 신앙이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사제로서 국교가 가톨릭인 나라의 (적어도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았으며, 그의 오라토리오에서는 당연히 가톨릭교회의 신앙생활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시행되었다. 그러한 프로그램 중에 돈 보스코가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은 성체성사(미사)와 성체조배, 화해성사(고백성사), 교리수업, 그리고 ‘저녁말씀(buona notte)’을 통한 훈화 및 생활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보스코에게는 이와 같은 종교적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추구였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 기관에서 특정 종교를 가르치거나 강요할 수 없는 분위기 안에서, 또한 비 가톨릭 국가라는 현실 안에서, 심지어는 종교적 가르침이나 생활교육에 관해서 배타적이거나 적대적이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돈 보스코의 교육학적 방법론으로서 ‘종교’는 가톨릭교회라는 종교의 신앙체계를 드러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교육에 종교적 차원의 중대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종교 재단들이 설립한 학교들이나 사회복지 기관들은 선교와 포교를 위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채 아이들의 전적인 자율적 선택에 의해 부분적으로만 프로그램을 시행하거나, 직접적인 종교의 프로그램들이 아닌 다른 형태들로 소위 간접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아니면 아예 인간 성장과 발달을 위한 1차적 목표가 달성되어야만 선교와 포교가 가능하다는 전제의 변명으로 포기를 담은 자위와 만족에 그친다.

이렇게 제한된 여건 안에서 교육방법론에서 논의하는 돈 보스코의 ‘종교’는 요즈음 ‘영성靈性’ 혹은 ‘영성교육’이라는 말로 대치되기도 하는데, 우선적으로 인간학적인 접근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철학적 인간학의 입장으로서는 아이들에게 인간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영원성을 향해 설정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인생이 죽음으로 모든 것을 마감하고 마는 허무가 아니라 그를 넘어서 초월성에로 방향지워진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현실에서 인간 존재의 깊은 영성과 의미를 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교리문답적인 암기나 교재를 설명하면서 무미건조한 종교적 전수라는 방식으로 종교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종교가 삶의 본보기로 체험되도록 하며, 마침내 종교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도록 이끌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현대 교육의 위기라는 것이 이러한 교육 방법론으로서의 종교를 상실하게 되면서부터라는 생각에 맞닿아 있다. 따라서 근대에 들어 시작된 교육을 위한 많은 개혁적 시도들은 현대 과학의 발달과 물질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주의에 아이들이 함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교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종교를 주입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된 훗날 자발적인 종교적 선택을 하도록 기초를 닦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 1주일에 한두 시간 정도의 정기적인 고유 예식, 고유 신심업, 고유 교리 수업, 기도, 수행, 조물주·나·이웃·자연과의 대화와 성찰, 명상, 묵언, 몸의 자세를 통한 수련, 종교들의 비교를 통한 토론, 종교적 경전이나 고전 강독, 일상을 벗어난 신비주의적 체험 등등의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비교적 최근의 다소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는 내용들은 아이들과 교사가 숙의를 통하여 함께 정한 주제와 토론·협력으로 학기나 연간 종교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 내적 명상을 위한 연습과 초월적 계기를 일상에 구현하기 위한 모임(예를 들어 종파를 초월한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의 기도 모임), 통합학습법이나 프로젝트법에 따른 수업진행(예를 들어 종교적 소재를 세 가지 이상의 상이한 다른 교과목의 영역과 결합하는 형식), 교회나 사찰과 학교 및 지역 사회를 연계하는 학습법, ‘자연’과 관련된 종교체험, 노동과 관련된 종교교육의 이론과 실천, 예술과 연계된 종교교육, 타종교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한 기행紀行과 참여, 옛 전승과 민속 문화를 통한 종교의 이해 등, 개방적이고도 자유로운 다각적 종교교육의 양태들을 살펴볼 수 있다.(참고. 고병헌 외, 교사-대안의 길을 묻다, pp.183-208, 이매진, 2009)

『(돈 보스코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교육은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취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신 서유럽 문화권에서는 훌륭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지 않고서는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돈 보스코의 교육방법의 기초로서 ‘종교’는 교육적인 보강으로서 ‘신심 활동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돈 보스코가 신심 활동이라는 점에 있어서 신앙생활을 매우 중요시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기도와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교육적인 노력을 강화시켜 준다. 그러나 돈 보스코가 교육의 기초로 생각하는 종교는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그는 유일한(절대로 필요한) 그리스도의 중재 속에서 신앙으로 살았으며, 따라서 교회의 유일한 중재 속에서 살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중재와 교회의 중재를 ‘영적인’ 구원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인적이며 사회적인 인간 활동을 위해서도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훌륭한 시민이 된다는 것은 훌륭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라토리오 프로그램을 ‘종교 교육’에 기초를 두고 작성하였으며, 여러 유형의 그의 모든 교육 사업을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전통 위에 구축하였다. 그가 청소년들에게 제공한 기도와 성사의 지속적인 신앙 체험과 더불어, 이러한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은 ‘영성’으로 발전하였다. 이 점에서 교육과 영성 생활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아서 렌티, ‘돈보스코 역사와 정신’, 강연중 옮김, 제3권 pp.189-190, 돈보스코미디어, 2014)』

『…청년에게서 무엇보다도 귀한 것은 종교심이다. 모든 미덕은 고상한 종교적 갈앙渴仰에서 시작되는 것이요, 그 신앙으로 지지, 발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종교적인 것인데 그것의 자각은 청년기에 있다. 위대한 종교가의 회심回心이 거의 다 40 전에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종교의 원숙은 물론 노년에 있다. 브라우닝의 말대로 ‘나와 한가지 늙어가자 가장 귀한 것은 아직도 아니 왔다’다. 그러나 종교의 발효는 청년기에 있다. 새로운 영적 생명이 낡은 깍지를 헤치고 폭발되어 나와 인생의 갈 길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놓는 것은 이때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생명의 종교심을 자극해 깨우는 것은 역시 청년에게서 쉽게 될 것이다. 종교는 인격의 깊은 속의 일, 복잡한 정서를 짝한 것이므로 강한 감격적인 것이 아니고는 그 속에 들어가 인격의 변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영감이 없는 교사, 감격성이 부족한 교사, 그는 도저히 교육적인 지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교육은 청년의 것이다.

…교육을 일신할 필요가 있다. 그 정신과 제도를 다 그 목적이나, 방법이나, 하는 태도나를 온통 싹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새 종교로 가능하다.(함석헌, ‘청년 교사에게 말한다.’ 중에서, 1957년)』

돈 보스코는 그리스도교적 교육계획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육이 충만하게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그의 최종 목적은 교회적·사회적 공동체 안에서 그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의 충만한 실현인 성덕이다. 뼛속 깊이 그리스도교적인 돈 보스코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인 하느님의 은총은 개인의 성숙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다. ‘종교 없이는 청소년을 교육할 수 없다.’ ‘돈 보스코는 너무 종교를 원한다고들 말한다, 사실 나는 종교 없이는 청소년들 가운데에서 좋은 것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 보스코에게 있어 ‘종교’란 하나의 개념이나 철학적인 이념, 또는 신학적인 축조물이 아니고, 단순한 교양적, 도덕적인 실천의 총칭도 아니다. 그의 교육 사업 전체의 바탕이 되는 ‘가톨릭교’를 말한다. 맛볼 수 있는 가장 심원한 체험, 선과 평화, 기쁨의 체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체험이다. (이렇게 말하는) 돈보스코의 ‘종교’ 이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 ① 시대 배경이다. 당시는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유산을 받아들이는 시대였다. ② (이렇게 종교적 신념과 가치체계가 붕괴되는 와중에서) 지혜와 인내로 (종교를) 교육해야만 한다. 신앙은 신앙으로 출산되고, 삶 속에 복음을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신앙이 자나고 서로 대조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③ 청소년 안에는 아직도 신앙의 가치에 자신을 개방할 생각이 남아있다.…(우리가 모시고자 하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파멸시키러 오시는 분이 아니고 구원하시고, 치유하시며, 변화시키고, 행복을 주시러 오신다.…그래서 돈 보스코의 교육학을 ‘성덕의 교육학pedagogia della santità’라고 부른다.(피에라 카발리아Piera Cavaglia,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 살레시오 수녀회, 97-100쪽 *이하 PC)』

『(돈보스코 시대의) 종교학교는 전적으로 오직 종교에 기초하고 있다고들 말하고, 이성적인 가치와 종교적인 가치는 서로 갈등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교회는 종교를 통하여 교육해야 하고, 국가는 과학(이성)을 통하여 교육해야 한다고 여겼다. 오직 국가만이 개인들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브라이도P.Braido는 고전적인 요소인 이성·종교·자애에서 출발하여 예방교육의 종합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공헌은, 3개조가 방법론적인 설비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 내용, 교육프로그램에 관계 지어 생각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열거되었다. ① 종교 : 근본과 영혼이 신앙-(인간은) 근본적으로 초월성에 개방되어 있고 하느님과 통교할 수 있다. ② 이성 : 충만한 인간화-인간은 생각하고 이성적이며, 자유롭고, 책임감이 있으며 진리를 추구한다. ③ 자애 : 애정의 차원-(인간은) 사랑에 목마르고, 사랑할 줄 안다.……(청)소년의 통합적인 성숙에 도움이 될 수 있으려면 그의 인격의 여러 가지 측면들, 육체적·지성적·애정적·도덕적·종교적 측면들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자는 이러한 통합적인 발전에 걸맞은 개입·수단·전략·선택 등을 사용해야 한다.…‘이성·종교·자애라는 이 현실 자체가 서로 다르고 축소할 수 없지만, 개인과 교육에서는 독립적일 수 없고 오히려 밀접히 서로 조종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이것들이 통합되고 발전되면 될수록 개인 안에 균형·조화·성숙·거룩함이 더 많아질 것이다.(PC, pp.134-137)』

『돈 보스코 이전에도 많은 교육자들이 청소년 교육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했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 양성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에 관해 자신만의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교육자는 자신이 하느님과 공익에 직접 봉사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하기에 종교와 이성이라는 동기에 의해 고무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돈 보스코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중심어라고 브라이도 신부와 파시에 신부는 주장한다.

대수도원장 블랑샤르 역시 그의 교육학에 기여했다. ‘아이들에 대해, 하느님에 대한 개념들을 더 잘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중에 준비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종교 교육을 연기해서는 안 된다. 종교 없이는 윤리 생활이 불가능하다. 어렸을 적에 종교를 가르침으로써 훗날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미리 대비시킬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많은 실수들은 경솔함과 변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교사와 학생 모두 이성과 종교의 참다운 원칙에 따라 매일매일 성장해야 한다.’(벤자민 푸토타, ‘예방교육 영성’, 돈보스코미디어, 2001년, 61-63쪽)』

『‘종교宗敎’는 돈 보스코의 교육학이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것임을 말해 준다. 교육학이 내다보는 궁극적 교육목표가 신앙인의 양성이라는 뜻이다. 그가 보기에 교육받고 성숙한 인간은 신앙을 지닌 시민이었다. 그러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포된 새 인간의 이상을 자기 생활의 중심으로 삼으며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용기 있게 증거 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뿌리를 박은 산 신앙, 현존과 친교에서 솟아나는 신앙,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에서, 또 은총에 온순히 응하는 데서 흘러나오는 신앙이다.(청소년의 아버지, 제11항)』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스스로 어떠한 종교 전통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여기지만 진선미를 진심으로 추구하는 이들과 가깝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진·선·미의 원천과 최고의 표현이 바로 하느님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고 민족들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며 피조물을 보호하는 임무에서 그들을 소중한 협력자로 여깁니다.…(복음의 기쁨, 제257항)』

『…안타깝게도 가난한 이가 겪는 최악의 차별은 영적 관심의 부족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상당수의 가난한 이들은 신앙에 특별히 열려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우정과 강복과 말씀, 성사 거행, 그리고 신앙의 성장과 성숙의 여정을 끊임없이 제공하여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리의 우선적 선택은 주로 특별하고 우선적인 종교적 관심으로 드러나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제200항)』

결론적으로, 돈 보스코의 ‘종교’는 그가 가톨릭교회의 사제였기에 가톨릭만을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돈 보스코가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생각하는 종교는 본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타고난 신적神的 존엄성을 지닌 아이들, 그리고 그 존엄성이 갈구하는 영원에 대한 갈망, 그리하여 그 영원에까지 아이들을 이르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그에 대한 돈 보스코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론은 자신이 아는 종교의 범주 내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사聖事에 대한 지극한 신심이었고, 성모님의 도우심 안에 이루어가는 일상의 성화聖化였다. 돈 보스코의 일과 중 중요한 일과이자 오라토리오의 중요 프로그램은 돈 보스코가 바로 이 고백성사를 통하여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또한 성체성사를 통하여 아이들이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으로서 이는 돈 보스코가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내용이 된다. 나아가, 교육자로서 돈 보스코의 ‘종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한 다음,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고 채워주시리라는 깊은 신앙의 확신과 희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교육학이 일정 부분 ‘종교’ 자체와는 무관하게 교육학 자체를 정립하려는 흐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한 인간의 완성이 가능하고 이루어진다고 믿는 교육학적 명제가 허구라는 사실은 아이들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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